<?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www.blogger.com/styles/atom.css" type="text/css"?><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ns:openSearch='http://a9.com/-/spec/opensearchrss/1.0/' xmlns:georss='http://www.georss.org/georss' xmlns:gd='http://schemas.google.com/g/2005' xmlns:thr='http://purl.org/syndication/thread/1.0'><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id><updated>2012-02-16T17:12:30.058+09:00</updated><category term='Life'/><category term='interview'/><category term='CCM'/><category term='Column'/><category term='Review'/><title type='text'>jieum's Another Log</title><subtitle type='html'>Archive of My Journal</subtitle><link rel='http://schemas.google.com/g/2005#feed'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posts/default'/><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max-results=10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link rel='hub' href='http://pubsubhubbub.appspot.com/'/><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generator version='7.00' uri='http://www.blogger.com'>Blogger</generator><openSearch:totalResults>35</openSearch:totalResults><openSearch:startIndex>1</openSearch:startIndex><openSearch:itemsPerPage>100</openSearch:itemsPerPage><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2854361747107575434</id><published>2007-07-02T05:06: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2T05:14:22.50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Life'/><title type='text'>글 들을 정리했습니다.</title><content type='html'>지금까지 써왔던 졸필을 한 군데 모아보았습니다.&lt;br /&gt;&lt;br /&gt;별 의미없는 행동일 수도... 아니면 제가 자신의 부끄러움 들을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lt;br /&gt;그냥 삶을 좀 정리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하는 행동일 뿐입니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2854361747107575434?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2854361747107575434/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2854361747107575434&amp;isPopup=true' title='2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854361747107575434'/><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854361747107575434'/><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7/07/blog-post_02.html' title='글 들을 정리했습니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2</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3636670162506163734</id><published>2006-04-24T17:01: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0:51.85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그 때의 그 색체, 좋은 캔버스와 화가를 만나다. [마이클 장 - Captain Michael Chang]</title><content type='html'>예전에 '장철'이라는 이름의 아티스트가 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앨범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제목은 [pop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제목이 주는 생경함이 생각난다. &lt;br /&gt;그 앨범을 들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그 독특한 정서였다. 그 때가 아마 80년대 후반이거나 90년대 초반이었을 텐데, 은혜성가나 복음성가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그렇다고 해서 가요나 팝과도 다른 정서가 흐르는 앨범이었다. 사용된 악기는 다른 앨범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편곡의 구성과 보컬의 질감이 완전히 달랐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한국적인 정서가 뚜렷했는데, 연상되는 것은 신중현을 그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 미8군 밴드 출신들의 사운드라고나 할까... 소박한 구성안에서 최대한 밴드의 사운드를 끌어내고, 보컬 역시 사운드의 일부가 되어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정서가 그 앨범 안에 있었다. &lt;br /&gt;가사의 내용 역시 어떤 교훈에 머무른다거나, 교리적인 내용을 시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그래서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거칠고 투박한 모습 그대로, 자신의 할 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 그대로의 완성도가 분명히 있지만, 그림보다는 재료 자체의 아름다움이 더 드러난다고나 할까. 재료의 원색적인 아름다움이 작품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내 안에 남아있는 '장철'의 앨범에 대한 이미지이다. 이것은 어쩌면 오랜 추억의 빛바랜 질감으로 미화된 것일런지 모르지만, 그 가치에 대해 물러서고 싶진 않다.&lt;br /&gt;&lt;br /&gt;마이클 장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처음 봤을 때, 떠올랐던 것이 장철이었고, 혹시나 하며 들어본 앨범은 오랜동안 묻어두었던 기억속의 이미지들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사실은 몇 해전 우연치 않은 장소에서 그와 조우했었고, 부흥 한국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앨범의 출시에 대해서는 놀라기 보다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lt;br /&gt;앨범을 들으면서, 무엇보다 프로듀스의 촛점에 대해 - 이것을 어떤 척도나 측정을 통해 사실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 내가 앞서 말한 이전 앨범의 미덕이었던 부분들이 잘 살아있는 것이 반가왔다. 마이클 장의 보컬을 단순한 멜로디로 인식하고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음색의 특징을 악기의 일부로 해석하는 것 말이다. 또한 이미 다른 앨범들의 리뷰 몇번에 걸쳐 그 탁월함을 이야기했던 '드림'의 사운드가 마이클 장의 음색과 잘 맞아떨어진다.&lt;br /&gt;마이클 장의 보컬은 조금 허스키한 스타일이고, 기교적으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그의 연배를 고려해보면 상당히 세련된 음색을 지니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몇 몇 곡에서는 구성진 트롯처럼 꺽이는 부분도 있고,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의 방향성이 젊은 세대를 향해 있다기 보다는 조금은 성인들 쪽으로 치우쳐 있는 듯 싶다. 굳이 분류를 해보자면 70년대의 한국 밴드음악을 뿌리로 둔 어덜트 컨템포러리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음반에 들려오는 드럼의 스네어 톤이 역시 최근의 앨범 답지 않게 옛스럽다. 마치 풍선터지는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최근의 드럼 톤은 약간 쏘는 느낌이거나, 스네어 자체의 어쿠스틱을 살려가는게 일반적인데, 만약 이 앨범에서 그랬더라면 보컬의 매력이 상쇄되었을 것 같다. 80년대 음악 같은 분위기를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너무 많지 않은 편곡을 지향한 것인지 잘은 모르지만, 노래 자체와 사운드, 그리고 보컬까지 모든 것이 잘 어울린다.&lt;br /&gt;&lt;br /&gt;앨범에는 예전의 앨범에 있던 곡들이 몇 곡 리메이크 되었다. 앨범에 대한 자료도 거의 없고, 나에게도 앨범이 남아있지 않아서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나는 샤론의 수선화", "변치 않는 주님", "너", "호산나", "나의 사랑하는 자", "믿음을 가지고 달려가는 길" 등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것 역시 편견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 리메이크 된 트랙들이 좀 더 좋게 들린다.&lt;br /&gt;그 중에서 첫곡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는 '마이클 장'과 '드림'의 음악이 만났다는 것을 강하게 알 수 있는 트랙이다. 인트로에서 들려오는 슬라이딩 기타의 연주 부터, 후렴에서 들려오는 남성보컬의 다채로운 코러스, 그리고 트랙 전반을 지배하는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그것을 말해주는데, 개인적으론 이 어우러짐이 상당히 좋게 들린다.&lt;br /&gt;가장 달달하게 들리는 트랙은 아마 "호산나"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가장 교회적인 노래라고도 볼 수 있고, 따라 부르기도 쉬울만한 곡이다. 그러나 그저 귀로 들리는 것과는 달리 직접 부르려면 상당한 집중이 필요하다. 느린 곡이고, 쉬운 코드로 되었지만, 음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나 할까.&lt;br /&gt;한수지와 함께 부른 '나의 사랑하는 자가'는 여러면에서 들리는 것이 많다. 리메이크이지만 오리지널을 완전히 압도한다. 우선은 이 앨범의 트랙 중 가장 독특한 발성을 하고 있는 마이클 장을 들 수 있는데, 자신의 본래 음역 보다 약간 더 높게 불러서 생기는 약간 조이는 듯한 음색은 마치 국악의 창가에서 만날 수 있는 걸쭉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거기다 더해 한수지 역시 본래 자신의 음색 보다 약간 허스키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것 같은데, 이제까지 한수지가 참여한 트랙들 중 가장 독특하고 멋진 것 같다. 또한 밴드 사운드나 편성은 전체적으로 록음악의 것이지만, 2마디씩 끊어지는 독특한 드러밍은 굉장히 한국적인 느낌을 준다.&lt;br /&gt;&lt;br /&gt;앨범은 2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다. 한장은 노래들로, 다른 한장은 마이클 장 자신의 간증이 들어간 오디오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의 간증 제목이 참 재미있다. 바로 "예수 나이트 클럽"이다. 그는 탁월한 설교자도, 참신한 이론으로 무장한 달변가도 아니지만, 그가 살았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조곤 조곤 풀어낸다. 그것을 가만 가만 따라가다보면 그가 선택했던 순간들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하시고 이끌어주셨는지를 조금은 알게된다. 더불어 거의 모든 트랙의 가사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 내지는 의문들이 풀어진다. 위에도 적었지만, 교훈이나 교리에 집중한 것도 아니고, 교회 내의 어떤 필요에 반응한 것도 아닌 그저 하나님에 대한 어느 아티스트의 자연스러운 반응들이 가사에 담기게 된 것이다. 그런 가사들을 교리적으로는 어떻고, 교훈이 어떻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참 좋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그저 반응한 한 사람의 가식없는 태도가 그의 노래들에 드러나기 때문이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3636670162506163734?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3636670162506163734/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3636670162506163734&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636670162506163734'/><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636670162506163734'/><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4/captain-michael-chang.html' title='그 때의 그 색체, 좋은 캔버스와 화가를 만나다. [마이클 장 - Captain Michael Chang]'/><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3595623789610046527</id><published>2006-03-23T09:28: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16+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사역의 기술에는 어떤 전문성이 필요할까?</title><content type='html'>우리가 사는 시대는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으면서, 어떤 측면으로는 전문성의 기준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다.&lt;br /&gt;전승되어진 지식이 전문성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으며, 필요한 것은 학위라던가, 학식이 아니라, 어떤 지식이 어느 곳에 있는 지를 찾아 그것을 단시간 내에 소화하는 기술이 아닐까. 그만큼 끝없이 기술은 발전하면서 다변화 되고 있고, 다양한 분야와 만나고 충돌하면서 또다른 분야를 만들어낸다.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lt;br /&gt;쓰고보니 무슨 SF소설 프롤로그 처럼 되어버렸지만, 하고 싶은 말은 위의 문단과는 다른 이야기가 될듯 하다. 바로 사역의 기술에 있어서의 전문성에 대한 이야기다. 사역에 있어서 과연 전문성이 필요할까?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에 대해 어떤 식으로 추구해야할까.&lt;br /&gt;&lt;br /&gt;개인적으로는 사역에서의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성 자체가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좀더 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포용하고 소통하려면 세심한 배려와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예로 들자면,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깊이 아는 사람들을 함께 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음악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 이것이 배려된다면 수준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소통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좀 더 쉬운 예로 아동용 영화를 들어보자면, 픽사의 [인크레더블]이나 심형래의 [용가리]나 똑같이 아동용영화이긴 하지만, 기술적인 많은 차이 때문에 한쪽은 가족 모두가 만족하게되고, 다른 쪽은 아이들은 만족할 수도 있지만, 같이 간 어른들에겐 난감하고 아까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은 FX나 컴퓨터 그래픽을 다뤄내는 기술의 차이나 제작에 사용된 비용에서의 차이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공감과 소통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풀어내는 기술의 차이라고 본다. 아이의 시선을 고려해서 하향평준화를 하느냐,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하며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냐의 차이말이다.&lt;br /&gt;&lt;br /&gt;사역에도 역시 같은 측면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역의 기술에는 그 사역 분야 자체의 기술 (음악 사역이라면 음악적 소양, 재능, 연습을 통해 습득되어지는 스킬)도 있고, 간접적으로 사역을 풀어내는 균형에 해당되는(대중 앞에서의 예의, 자세, 시간 관리, 어떤 노래와 말을 어떤 순서로 할 것인가 하는 등등의) 것도 있을 것이다.&lt;br /&gt;문제는 이러한 기술들을 그저 기술적인 관점에서 습득할 때이다. 예배사역에서 생길 가능성이 많은 일 중에 하나인데, 좋아하는 앨범이나 트랙에서, 예배인도자의 '거룩'한 멘트를 따라 흉내내어 예배를 인도하다가, 나중에는 예배를 인도할 때만 목소리가 '거룩'해지는 현상이 있다. 또, 어떤 예배사역단체에서는 예배때 박수를 치는 법이라던지, 표정이나, 손을 드는 모양새에 대해 '이렇게 예배해야 한다'며 교육(?)을 했던 적도 있다. 어느 대형교회 찬양팀에서는 싱어들이 예배시에 손을 드는 높이에 대해서도 일종의 규정이 있다. 예배사역만 그럴까? 예배사역이 아닌 다른 음악사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해진 멘트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무대에서의 반응, 누구도 제한하고 규정짓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한계선을 그어버린 기술들은 그것이 '전문화'되어 보일 수록, 어색하다.&lt;br /&gt;&lt;br /&gt;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저 '어색해 보여서'가 아니다. 문제는 관성적인 사역이 이루어질때이다. 사역의 '기술'이 '기술'로서 전문화되다보니, 사역자가 사역에 대한 마음이 없더라도 사역에 무리가 없을 때 말이다. 사역의 '기술'이 사역을 하고, 사역자는 그저 서있을 뿐, (대중이 확인할 수 없는) 속으로는 '일로서의 사역'에 관성적으로 끌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lt;br /&gt;&lt;br /&gt;의지가 아닌 기술이, 창조성이 아닌 익숙해진 전문성이 일하게 놔두어선 안된다. 조립공정의 일부에서 컨베이어 벨트같은 시스템에 놓인 사역이 진정성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기술이 진정성을 뒤덮고, 납득되지 않는 이유들에대해 의지를 접고, 그저 '일로서의 사역'에 충실해질 뿐이라면, 차라리 사역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수 있다.&lt;br /&gt;위에서 예로든 예배사역을 다시 말한다면, 규정되어지고 조율되어진 '반응'은 '반응'이 아니라, '쇼'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이 '쇼맨'이라면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그 안에 '예배자'된 정체성이 있다면 '쇼'를 벗어버리고 진심으로 '반응' 해야 한다. 무엇에? 바로 하나님의 '계시'에.&lt;br /&gt;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고 했다. 단언컨데, 사역 역시 그런 측면의 일부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반응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반응하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것을 사역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역의 본질이다.&lt;br /&gt;기술적인 전문성은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쌓아나가야 한다. 하여 '관성적인 전문성'은 사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역자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오히려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전문성이리라.&lt;br /&gt;&lt;br /&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376&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359562378961004652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359562378961004652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359562378961004652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59562378961004652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59562378961004652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3/blog-post.html' title='사역의 기술에는 어떤 전문성이 필요할까?'/><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2868993469231099706</id><published>2006-03-21T17:01: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16+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두명의 Shane과 함께하는 오붓한 저녁시간 [an evening with Shane&amp;Shane]</title><content type='html'>저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쿠스틱 기타로 예배하고 노래하는 것은, 잘은 못하지만 제 입장에서 즐거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쿠스틱 기타나 혹은 그저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된 앨범이라면 부담없이 편하게 선택하는 편입니다. Shane &amp; Shane의 음반을 처음 들었던 것은 몇년전이었지만, 그 트랙에서 느낄 수 있었던 독특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대한 감동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분명 이들의 앨범을 소개해야겠다는 필연을 느꼈지만, 좀처럼 편한 기회가 닿지 않더군요.&lt;br /&gt;얼마전, Shane&amp;Shane을 처음 소개해준 분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들의 앨범을 하나 빌려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2006년 신보도 아니고, 제가 처음 접한 Shane&amp;Shane도 아니며, 그저 제가 소개하고 싶어서 소개하는 앨범일 뿐입니다.&lt;br /&gt;&lt;br /&gt;[an evening with shane&amp;shane]은 택사스에 있는 그들의 스튜디오 'spaceway studio'에서 조촐하게 만들어진 언플러그드 라이브 앨범 입니다. 이 앨범이 출시된건 지난 가을이니, 신보로 소개한다는 건 말도 안되죠. 그래도 (제가 알기론) 그들의 정규앨범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앨범인 것은 사실입니다. 한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DVD가 첨부된 콤보 앨범으로 출시되었다는 점이죠. 혹시라도 이들의 영상을 웹에서 접했던 분이라면, 선명한 영상의 가치를 아실 테죠. 특히 Shane barnard 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웹의 작은 영상으로만 보기엔 너무 아깝죠. 만약 Shane&amp;Shane을 몰랐다거나, 이들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 앨범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Shane barnard가 Caleb Carruth와 함께 사역하다가 솔로로 앨범을 내고, 다시 또다른 Shane인 everett을 만나 사역하는 동안 만들어진 많은 앨범에서 좋은 곡들을 골라 라이브로 다시 녹음한 앨범이니까요. 게다가, 라이브 영상 DVD도 볼 수 있고, 부가 영상으로 들어가 있는 Lesson B에선 그 주옥같은 어쿠스틱 기타 스킬들을 아낌없이 공개하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Shane&amp;Shane 을 아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이들은 크리스천 음악계의 John Mayer 입니다. 탁월한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와 보컬하모니가 정말 멋지거든요. 처음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도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에 있어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Caleb carruth와 함께 쌍벽을 이루면서 하모니를 이뤄내는 Shane barnard의 연주였어요. 물론... '마이너'인 크리스천 음악계에서도 더욱 '마이너'인 쪽이지만 말이죠.&lt;br /&gt;아마도 우리나라에 Shane&amp;Shane이 처음 소개된 것은 Passion 2005 앨범에 실린 마지막 트랙 'It is well'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들은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Passion 2004 에도 참여했지만, 사정상 트랙에는 실리지 않았다는 코멘트가 Passion 2004 앨범에 들어가 있다는 군요.) Shane의 특징인 '탁월한 스킬'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들의 또다른 면, 사실은 더 중요한 면이 드러나는 트랙이기도 합니다.&lt;br /&gt;&lt;br /&gt;'무슨 무슨 night' 처럼 거창하거나 큰 규모의 느낌이 아닌 제목처럼, [an evening with shane&amp;shane]은 작은 규모의, 그것도 그들의 스튜디오에 조촐하게 자리를 마련해 놓은 공연입니다. 화려한 조명이나, 가사를 알려주는 장치가 있지도 않고, 올스탠딩으로 연신 머리를 흔들며 환호하는 관중도 없는 오붓한 분위기를 DVD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모든 요소의 배치가 어울린다고나 할까. 적당하다고 해야 할까. 튐없이 균형을 이루는 모습이 패키지에서도 느껴집니다.&lt;br /&gt;새롭게 소개되는 곡은 두 곡 뿐이지만, 그것이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이 앨범은 그들의 사역을 소개하고 확인하는 조촐하고 오붓한 정서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뭔가 크게 일이 벌어진다거나, 거창한 사역을 만날 의지나 기대는 없어도 되는 분위기랄까요.&lt;br /&gt;&lt;br /&gt;주요한 몇 곡을 소개해본다면, 우선 첫곡인 'Arise'는 새로운 곡이며, 라이브와 앨범을 열어주는 곡입니다. 경쾌하고 깔끔하지만, 그다지 빠르지 않은 16비트의 기타 스트로크가 돋보이는 곡이죠. 내 영혼아 깨어 일어나서 그의 왕되심을 노래하라는 내용 쯤인 것 같아요.&lt;br /&gt;두번째 곡인 'Yearn'은 미들 비트의 잔잔한 곡입니다. 전작인 Clean에도 실렸었죠. 제목에서처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담긴 곡인데, 개인적으로 이 곡은 한국사람들의 정서에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lt;br /&gt;'Psalm 13'이란 곡은 제가 처음 들었던 Shane의 앨범 [Upstairs]에 실렸던 곡입니다. 나중에 더 살펴보니 제가 들어보지 못한 [psalms]이라는 앨범에도 이미 실렸더군요. 펑키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마이너 멜로디가 멋진 곡이구요. 하나님의 대답없으심에 대해 'I will wait on You'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다가 결국 'I will sing to the Lord'라고 노래하게 되는 곡인데요. 곡 자체의 연주 스킬만큼이나 쉽지않은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편의 많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신비라고 보는데요,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 원망과 실망이 찬양으로 바뀌는 과정이 이 노래에 담겼다고 생각합니다.&lt;br /&gt;'Psalm 118'은 새로운 노래입니다. folk나 country 음악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어쿠스틱 기타의 쓰리핑거 연주와 얼터드베이스가 들어간 곡이지만, 유쾌하다거나, 가볍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후렴부분에선 오히려 이스라엘의 민속찬양의 정서가 느껴지는듯도 싶구요.&lt;br /&gt;'fringes'는 저로서는 조금 어려운 곡이었어요. Clean에서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는 사실 이해 하기 힘들었구요. 나중에 가사를 따로 찾아보고선 이것이 NASB 성경으로 욥기 26:14를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노래라는 걸 알았죠.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나님의 거대함도 그의 옷자락 소리에 불가하다는...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 우리는 그의 일을 다 이해할 수 없고 다만 거대한 그의 은혜를 노래한다는 내용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확신은 없어요. ^^;; 워낙 영어가 약하니.)&lt;br /&gt;'Name Sake'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앨범으로는 못접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본 것은 160*120 사이즈 정도 되는 인터넷 동영상 파일이었거든요. 곡 중간에 나오는 퍼커시브 연주도 놀라왔고, 섬세한 스트로크도 일품이었죠. 사실 앨범으로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Shane만의 독특한 음악적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곡이어서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가사도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얕지 않은 것 같아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의 자비로운 인도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것 같습니다.&lt;br /&gt;한곡만 더 소개할까요. 'you and I'라는 곡인데요. 'you'를 소문자로 쓴 이유는 이 노래에서 'I'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람에게 노래하는 곡이에요. 전작인 Clean의 대주제인 '깨끗케 하심'에 대한 노래인데요. 노래도 좋지만, 가사가 깊이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후렴 쯤에서 죄인인 인간이 스스로의 더러움에 대해 'I am dirty'를 아무리 외쳐도 'you are clean, clean'이라고 끝까지 붙잡아 주는 하나님의 마음이 노래됩니다. 끝내는 하나님인 내가 너와 항상 함께 달려나가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정말 멋진 곡이에요.&lt;br /&gt;&lt;br /&gt;DVD 역시 푸짐합니다. 우선 전곡의 라이브 영상을 볼 수 있는 Main Feature를 dolby digital 5.0나 2.0 stereo 오디오로 선택할 수 있구요.&lt;br /&gt;영상에 대해 조금 언급해보자면, 단 몇대의 카메라가 크게 움직임 없이 조용히 이 '조촐하고 오붓한 라이브'를 비슷한 정서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미니멀하지만, 충분히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lt;br /&gt;오붓한 Main Feature 영상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부가영상이 알짜라고 생각합니다.&lt;br /&gt;우선은 이사야 55:1을 이야기하며 시작되는 Shane barnard의 'Heart of the Music'이 있구요. Shane everett이 안내해주는(아마도 다른 Shane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듯 싶어요.) 'Studio Tour'는 레코딩이 진행된 곳이며, 그들의 사역에 있어서 베이스 캠프라고 할 수 있는 Spaceway Studio의 이곳 저곳을 보여줍니다. 재밌는 것이 여러가지 있는데요. 레코딩을 실제로 진행하는 부스와 라이브 레코딩을 했던 창고 분위기의 공간, 그리고 두명의 Shane이 쓰고있는 애플 노트북인 파워북에 눈길이 가더군요. everett의 부인도 아이북을 사용하고 있구요. (아, 이건 애플 사용자라서 보게된 겁니다. 저한테는 그런 것만 보여요. ㅠ.ㅠ) 이곳 저곳에 이야기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도 재밌었고, DVD를 제작한 미디어주스 스튜디오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도 재밌었어요. 무엇보다 기타들이 잔뜩 걸려있는 벽에 눈길이 가더군요.&lt;br /&gt;&lt;br /&gt;더 재미난 부분은 바로 'Lesson B'입니다. 앨범에 담긴 전곡의 연주 스킬에 대해서 barnard가 직접 자세히 영상을 통해 설명해주거든요. 전신과 손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두개의 화면으로 꼼꼼하게 보여주지만, 상당히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영상이 진행됩니다. 특히나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슬레이트를 손으로 흉내내면서 얼쩡(?)대는 everett의 모습도 유쾌합니다. 문제는 전곡의 스킬을 천천히 여러번 설명해주면서 '하기 쉽다'고 말해주지만... 어렵다는 거죠. ㅜ.ㅜ&lt;br /&gt;&lt;br /&gt;처음 Shane&amp;Shane을 만나거나, 혹은 여러번 접했거나에 상관없이 이번 앨범은 여러면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특히 그들을 좀 더 또렷한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크고, 그들의 스킬을 따라하고 싶었던 저같은 사람에겐 상당히 유용하죠. 우리나라에 수입된적도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들의 사이트인 http://www.shaneandshane.com 으로 가시면, 몇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쿠스틱 사운드를 좋아하신다면 Shane의 음악 사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Caleb Carruth의 웹사이트 http://www.calebcarruth.com 도 확인해보세요. 특히나 Darkness Falls은 꼭 들어보시구요.&lt;br /&gt;참, Shane이 음악을 하게 된 동기를 말했던가요? 음반을 내고 음악을 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barnard 에게 Caleb Carruth가 강력하게 추천을 했다더군요. 음악사역을 해야 한다구요.&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2868993469231099706?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2868993469231099706/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2868993469231099706&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868993469231099706'/><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868993469231099706'/><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3/shane-evening-with-shane.html' title='두명의 Shane과 함께하는 오붓한 저녁시간 [an evening with Shane&amp;Shane]'/><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2196480307830080150</id><published>2006-01-23T19:10: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17+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사역자의 윤리적인 몰락에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title><content type='html'>예시.&lt;br /&gt;사역자의 윤리적인 몰락에 대해, 이미 몇 번에 걸쳐 희자된 것을 예로 다시 드는 건 아무 의미가 없으니,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건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일이다.&lt;br /&gt;&lt;br /&gt;작년 말쯤 앨범을 낸 어느 사역자의 일이다. 목사 안수를 받은 목회자였으며, 어쿠스틱 기타에 일가견을 가진 듯한 그는 어쿠스틱 기타 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 심심치 않게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주 회동을 가져 친구를 만들어가던 그는 두번에 걸쳐 그 사이트에 적지않은 파동을 만들었으며, 덕분에 크리스천도 아닌 그 사이트의 운영자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쳐해졌었다. 한번은 중고 기타의 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팔아서 생긴 일이었으며, 다른 한번은 새로운 기타를 공동구매 형식으로 팔면서 스펙을 속였기 때문이었다. 기타에 일가견이 있다던 사람이 모르고 하기엔 너무도 뻔한 일이었고, 그때마다 생겼던 문제들에서 오갔던 금액은 왠만한 자동차 한대 값 정도이다.&lt;br /&gt;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넌크리스천들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다시 한번 다진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일이다.  이 일은 그 사이트를 드나드는 다른 크리스천들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다.&lt;br /&gt;전혀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아직도 여전히 모크리스천 쇼핑몰에선 그의 앨범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며, 어느 CCM 관련 사이트에선 그를 인터뷰했던 웹라디오 방송의 방송듣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럴 수 밖엔 없는 일이고 그것은 절대로(!) 담당자들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lt;br /&gt;&lt;br /&gt;지난 칼럼이었던 "그 사역자를 용납하자"가 용납의 주체가 사라진 글이었고, 역시 지난 번 "누가 그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가"라는 칼럼을 통해 이전 글에 남아있던 어색함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여전히 궁금한 것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내가 존경했던 사역자가 윤리적인 몰락을 겪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이다. 그와 내가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중간이나 갈 수 있는 길이긴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분명한 갈등이 존재한다. 예배 때 마다 부르는 그의 노래가 부담스럽기만 한데,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lt;br /&gt;&lt;br /&gt;이 글안에 그에 대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있던 글에 연이을만한 텍스트라기 보다는 그 텍스트 들에 반응하면서 그저 답답하고 아쉬운 내 심정을 이야기 하는 것이 될 듯 싶다. 이렇게라도 털어놓지 않는다면 내 안에 있는 아쉬움과 연민을, 그리고 생각할 때마다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리기가 어렵다.&lt;br /&gt;&lt;br /&gt;쉽게, "은혜로운 말"을 하자면 이럴 수도 있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 사역자를 보지 말고 끼쳐진 은혜를 보라."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옳다고 보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기 까지의 과정과 경험이 더 중요할 것 같다.&lt;br /&gt;&lt;br /&gt;우선은 시대 탓을 좀 해보자.&lt;br /&gt;시대가 악한 것일 수 있다. "사역과 사역자"에 대해, 피사역자와 사역자 모두가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역이나 사역자의 외형에 주목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보암직한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가치가 일반화되었고, 그것이 사역자나 사역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동시대를 아우르는 일반적인 가치라고 할찌라도 우리는 그런 가치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양보할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얼짱 사역자, 음악 잘하는 사역자를 찾기에 앞서, 사역자에게 사역의 시작점에 대해 그 진정성을 요구하고 그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lt;br /&gt;&lt;br /&gt;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사역자 스스로도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는 시작점에 대해 깊은 고민과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복하지만, 사역에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바로 사역의 시작점에 대한 진정성 말이다.&lt;br /&gt;사역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역의 힘이 자신으로 부터 시작된다면 그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은혜를 받지 않고 끼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역의 자리에서 가쉽거리나 될 만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무대를 때울 수 있는가.&lt;br /&gt;만약 진정성을 덜어내고 CCM을 보게되면, 지금 이곳은 무슨 연예계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혹시라도 CCM을 연예계 비슷하게 생각한다면, 혹은 그에 대한 대안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상당히 심각한 오해이리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최근 어느 유력한 분의 칼럼에선 CCM에도 대형 스타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것이야말로 경계 대상 1호가 아닐까?&lt;br /&gt;&lt;br /&gt;또한, 항상 사역자 스스로 자신의 속사람을 똑바로 직시해봐야 한다. 특히 죄에 대해서 더욱 더 눈을 부라려야 한다. 만약 윤리적인 문제를 스스로에게서 발견한다면 그것을 해결하려 전력을 다해야 한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할 수록 전심으로 회개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지만, 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것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을 오랫동안 괴롭히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문제가 병적인 수준으로 커진다면, 그것을 부끄럽게만 여기지지 말고 투명하게 열어놓아야 하며, 가능한다면 적당한 치료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만약 공동체에 속해있다면, 그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잠시 사역을 멈추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가능하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몇 달이건, 몇 년이건.&lt;br /&gt;&lt;br /&gt;그렇다면 사역자가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사역자의 윤리적인 몰락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lt;br /&gt;&lt;br /&gt;어떤 상황 한가지로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저 답답하고, 위에 적은 '은혜로운 말'과 똑같은 이야기지만, 은혜의 주체가 하나님인 것을, 그리고 사역자도 역시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lt;br /&gt;그가 끼친 은혜를 통해 얻은 기쁨에 대해 감사하면서, 그 은혜를 주신 것이 하나님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은혜의 중심을 속에서부터 확실하게 잡아나간다면, 그래서 사람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그런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한다면, 존경하던 사역자의 몰락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를 위해 중보하고 그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성숙함도 보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조금은 더 체험할 수 있으리라.&lt;br /&gt;&lt;br /&gt;다시 말해 우리가 사역자와 그의 사역을 바라보는 순간이 중요한데, 과연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정서적으로 동의하는지가 촛점이 되어야 한다.&lt;br /&gt;&lt;br /&gt;사역자의 윤리적인 몰락에 그저 동화 되어 분노하고 비난한다면, 그의 신앙은 그 사역자와 함께 몰락할 수 밖에 없다. 혹은 반대로, 사역자가 끼친 영향력이 굉장히 커서, 혹은 자신이 좋아했기 때문에 용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이 무언지, 혹시 그 사역자의 업적들을 예배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lt;br /&gt;&lt;br /&gt;이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돌을 집을건가. 아니면 돌을 집었던 손에 힘을 뺄 것인가. &lt;br /&gt;옳은 답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이지만, 과연 우리의 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lt;br /&gt;&lt;br /&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319&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2196480307830080150?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2196480307830080150/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2196480307830080150&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19648030783008015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19648030783008015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1/blog-post_2991.html' title='사역자의 윤리적인 몰락에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4241081058290480427</id><published>2006-01-23T18:06: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17+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왜 그렇게 정서가 중요한가.</title><content type='html'>르네상스를 단순한 인본주의로 놓고 보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전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고도 한다. &lt;br /&gt;그렇다면 과연 르네상스 이전은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충만하던 시대'였을까? &lt;br /&gt;&lt;br /&gt;너무 넓게 생각하면 머리 아플테니, 음악만 놓고 보자. &lt;br /&gt;르네상스 이전의 성악곡에 있어 최대의 관심사는 '빠르고 높낮이의 폭이 상상을 뛰어넘으면서 정확하게 음을 연주하는' 기교였다. 왜냐고? 당시의 음악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쉽다. 천동설로 지구를 평평하게 만들었던 기원후 100년경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C. Ptolemaios)가 세워놓은 음악 정의가 대세였는데, 그 내용이 천동설 만큼이나 가관이다.  '음악은 높은 음과 낮은 음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이라고 했던 것인데, 이 정의가 언제까지 이어졌냐 하면, 르네상스를 지나 17, 18세기 까지이다. 이것 보다 좀 더 말되는 정의를 내린건 19세기 벨기에 음악학자 페티스(Francois J. Fetis)에 의해서 겨우 이루어졌는데, '음악은 음의 배합에 의해서 사람의 감정을 감동시키는 예술'이라고 정의했고,  이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그리 낡아보이지 않는다. 또한, 최근 음악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음악은 음을 재료로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정의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lt;br /&gt;여하튼, 음의 높낮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음악의 정의였으니, 노래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 진실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더 빠르고 높게 노래하는 성악 기술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런 기교가 신에게 바쳐지기에 적당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lt;br /&gt;&lt;br /&gt;자,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르네상스 이전이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충만하던 시대'였을까? 물론, 찬양에 대해서만 말이다. 이 질문에는 상대적인 답이 필요하다. 사실 정답은 '그때 그때 달라요'이다. 기교적으로 완성된 성악가가 신앙적으로도 진실하다면 신에 대한 충만한 사랑이 담긴 노래를 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적안에서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신동이라 칭송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인격적으로는 쓰레기였던 것을 기억해본다면 말이다. 여담이지만, 결국 좋은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바탕일텐데, 인격적인 관계를 가꾸는 것보다 천재로서 불멸하며 남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것이 과연 쉬울까? 혹은 관계에 대하여 어떤 것이 좋은 관계이고, 나쁜 관계인지 경험하기 쉬웠을까?&lt;br /&gt;그 당시의 정서나 기준이 옳은가 그른가 역시 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겠지만, 세계사 공부하다 나온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손가락질 하며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이라고 말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면 그러한 크리스천들이야 말로 '고민하는 크리스천 속에 살아 숨쉬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런지. &lt;br /&gt;&lt;br /&gt;감정과 정서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부분을 무시하고 인격 위에 군림하려는 의지를 지닌 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뭐하러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겠는가.&lt;br /&gt;&lt;br /&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314&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424108105829048042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424108105829048042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424108105829048042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24108105829048042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24108105829048042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1/blog-post_23.html' title='왜 그렇게 정서가 중요한가.'/><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378204846210199100</id><published>2006-01-23T16:05: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18+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사역 자체와 진정성이 균형을 잃을 때  [ 많은물소리 워십 vol.1 - 하나님 나라가 오다.]</title><content type='html'>예배 음악에 대해 나는 가끔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lt;br /&gt;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예배 음악전문가 쯤으로 인식되는 일이다.&lt;br /&gt;지면을 통해서 해명하건데,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다. 예배에 관해 나에겐 어떠한 전문성도 없다. 굳이 예배와 예배 음악에 대한 내 위치를 확인해보자면, 평범한 수준내에서의 평범한 고민, 보통의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위해 할 수 있는 고민 - 어떤 노래를, 어떤 음악으로, 어떤 악기들로 흐름을 만들어 갈 것인가. 예배자(회중과 나)와 하나님 사이에 놓인 예배를 방해하지 않고 잘 섬길 수 있을까. - 을 하는 정도이다. 확언하건데 예배 음악에 관해 나는 영원한 엔드유저이고 평범한 소시민이리라. 이것이 예배와 예배음악에 관한 나의 자세이고 태도이다.&lt;br /&gt;&lt;br /&gt;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어질 [많은물소리 워십]에 대한 리뷰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졌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다.&lt;br /&gt;&lt;br /&gt;많은물소리, 혹은 죠이선교회에 대해 나는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악보 사역과 그에 연관된 컨텐츠 들에서 시작해, 방대한 출판 사역까지 차근 차근 해나가는 그들에겐 사역에 대한 진정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음반의 핵심적인 아티스트인 이대귀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깊은 호감이 있다. 그가 만든 [가난한 자가 들어간다] 앨범은 여러면에서 탁월하다. 노래의 흐름과 배치, 곡 하나 하나에 들어간 섬세한 조율과 균형이 참 좋다. 하여, [많은물소리 워십]을 이대귀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을 때는 어느 정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은근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트랙을 지날 수록, 그저 너무 큰 기대에 대한 반동이라고 보기엔 지나칠 정도의 부담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지녔던 호감의 이유들이 점점 사라지고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lt;br /&gt;&lt;br /&gt;외국곡으로 예배를 풀어내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는 작업이다.&lt;br /&gt;특히나 운율을 지켜내는 번역이 불가능하다면 말이다. 또다른 예로는 운율을 지키기 위해 원래의 정서를 희생시키는 것인데, [많은물소리 워십]에 실린 "주이름 찬양" 같은 곡이 그런 예이다.&lt;br /&gt;이 노래의 오리지널은 Matt Redman의 "Blessed Be Your Name" 이다. 출시된지 1년도 채 안된 트랙이지만, Matt Redman의 인지도 때문인지 재빠르게 번역되었고, 그런 번역이 승인이 된 듯 싶다. 마치 '번역 해버린 것'을 '승인 해버려서' 녹음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곡과는 이질감이 많다. 운율이 안맞는 다거나, 악보를 희생한 것은 아니지만, 원곡에 흐르던 정서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오해 된 듯 한 느낌이 심하다. 예를 들자면, "Bless"는 "찬양"의 의미 보다는 "축복"의 의미가 강한 단어이지만, "찬양"으로 번역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를 곰씹어본다면 "찬양"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기 보다는 역시 "송축"으로 번역해야 옳았을 것이다. 오리지널 가사의 내용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는 화자가 하나님의 어떤 부분을 노래하고 있는지, 어떤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는지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태도로 노래하는 가를 바라보아야 한다.&lt;br /&gt;브릿지 쯤의 가사 내용은 '당신은 주시고 취하십니다. 당신은 주시고 취하십니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당신의 이름을 송축할 것입니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마치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상황과는 상관없이 주님을 노래했던 시편 기자들이나, 극심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 조차 하나님을 송축했던 욥의 정서와 통한다고 보는데, 이 부분에서 "찬양"과 "송축"이 얼마나 다른 느낌을 주는지 발견할 수 있다. 상황을 이기고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것은 이 노래의 정서가 굉장히 치열한 정서의 극간을 달린다고 볼 수 있다. 감정과 인격, 그 모든 것의 한계와 싸우는 치열하고 간절한 정서가 오리지널에는 존재한다고 본다. 적어도 맷 래드먼의 음성으로 듣는 "Blessed Be Your Name"은 그렇다.&lt;br /&gt;&lt;br /&gt;이제 [많은물소리 워십]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간절해야할 정서나 치열한 싸움은 어디로 갔는지 증발되어 없고 음악마저도 상당히 '곱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번역이라고 본다. 아까 적었던 브릿지 부분의 가사가 '주님은 주시며 주님은 찾으시네. 내 맘에 하는 말 주 찬양합니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주님은 주시며, 주님은 찾으시네'라는 말은 우리말의 특성 때문에 주님이 주인이시고 주님은 (무엇인가를) 찾으신다는 내용쯤으로 오해되기 쉽다. 게다가 '송축'이 아닌 '찬양'이란 단어를 선택한 번역자의 센스는 정말이지 의심해볼만하다. 그런 번역을 승인한 쪽도 문제이겠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의 문제점은 좋지 않은 번역을 음악안에서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적으로 간절하다면, 음악적으로 좀 더 치열하다면 좋지 않은 번역쯤은 무시해 줄수 있는데 말이다. 마치 욥의 정서를 에녹이 노래하는 것 같다. 이것이 음악적으로 좋은 것인지 나쁜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좋은 음악이란 정서나 사고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lt;br /&gt;&lt;br /&gt;만약 "주이름 찬양" 에서만 이런 부담을 느꼈다면, 이렇게 길게 설명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트랙들에서도 이런 정도의 부담감을 느꼈다.&lt;br /&gt;좀 더 예를 들자면, "어린양 찬양"의 편곡이다. 나의 경우, 이 노래를 따라하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내가 노래를 못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저 흥얼거리는 정도라면 스티비 원더의 음악도 별 무리가 없는데, 늘 알고 있던 "어린양 찬양"을 이렇게 생소하게 만나기는 처음이다. 빠르게 부르는 건 문제가 없는데, 알 수 없는 당김음에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랑의 노래 드리네" 같은 경우, 부르기 편한 예배곡은 절대로 아니다. 내 입장에선 회중예배곡으로의 선곡을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 노래인데, 16분 음표로 잘게 쪼개지는 멜로디 라인이나, 후렴구의 부자연스러운 어순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주의 사-랑 / 의 품에'라고 불러야 하는데, 어절과 상관 없는 곳에서 발음이 끊기고 노래를 지탱하던 맥도 함께 끊긴다. 일전에 다른 앨범을 통해 이 곡을 연주할 때, 인도자나 프로듀서가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세심하게 고민하고 배려했던 것이 기억나고,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 곡 자체에 대한 부담은 줄게 되었다. 그러나 앞 뒤 곡의 흐름을 고려했을 때 자연스러움이 없다면 역시 선곡에서는 뺄 것이다. 여하튼 나름대로 어색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처리했던 전례가 있기에 그 정도의 배려를 최소한으로 기대해봤지만, [많은물소리 워십]에서 해석한 이 곡은 건조해진 리듬과 느끼하게 꺽는 남성보컬의 솔로를 배치한 것이다. R&amp;B를 추구했으나 트롯에 머물렀다고나 할까? 만약 교회에서 이것을 이대로 구현하려 한다면 무척 어렵거나, 어색할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솔로가 없는 문제도 있겠지만, 아까 언급한 뚝뚝끊겨나가는 후렴구의 어색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경배하리" 역시 개인적으로 따라가기 힘든 호흡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보다는 조금 더 느리게 부른 이 트랙은 듣는 것 만으로도 숨이 차다.&lt;br /&gt;예배에서 음악의 역할을 단지 음악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살을 붙여나가면 이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걸까?&lt;br /&gt;&lt;br /&gt;&lt;br /&gt;그럼에도 [많은물소리 워십]은 많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lt;br /&gt;잘 알려진 곡과 새롭게 번역된 곡 등, 선곡의 균형과 조화도 어눌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편곡 역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예배를 음악으로 이해한다면 신선한 느낌도 분명히 존재한다. 앨범의 패키지 역시 이 앨범을 카피해서 연주할 밴드들을 위해 밴드 스코어와 MR을 포함시키는 등, 배려가 넘친다. 그들의 앨범을 소개할 때 사용되는 말처럼 기존의 예배음반들과는 여러 면에서 차별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런지는 의문이다. Worship servant 라는 파일명으로 된 황병구씨의 칼럼 '예배 인도자들을 권력독점의 함정에서 구출하기'도 글 자체는 탁월하다 할만하지만, 이 앨범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배려없는 예배곡들과는 엄청난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 앨범의 트랙들이 패키지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과 이 앨범을 소개하는 텍스트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lt;br /&gt;&lt;br /&gt;모든 예배 음반들이 회중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의 예배를 그린 것이라면 표현의 수위나 선택에 있어 훨씬 더 개인적이 되어도 상관 없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개인예배라면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그런 부분들 만큼은 이대귀 만큼 탁월한 사람도 적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주겠노라고, 회중을 섬기고 예배를 섬기겠노라고 선언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섬김은 섬김의 대상과 자신의 영역에 대해 깊이 이해할 때 가능한 일이다. 만약 당장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방향성 만큼은 그렇게 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이해를 할 의지조차 없다면 섬김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워십 서번트로 규정하는 예배에의 섬김이 패키지로, 또 카피문구로는 표현되지만, 정작 음반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어야할 트랙에서 표현되지 않는다면, 진정성 까지도 의심해 볼 수 있다. 과연 사역의 출발,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진정성을 안고 가는 것인지를 말이다.&lt;br /&gt;&lt;br /&gt;거듭 강조하지만, 이대귀는 좋은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치있게 생각하는 이대귀의 좋은 점은 [가난한 자가 들어간다]에서 찾을 수 있는데, (물론 이 역시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자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견져올린 일상적이면서 소박한 정서로 오히려 절대적인 가치의 영원함을 노래하고 그에 힘을 더하는 그런 모양새 였다. 가난하고 소박한 듯하면서 결코 저열하지 않은 오히려 '참된 가치'를 드러내며 그 자리를 담담히 지켜내는 정서가 그 노래와 음악들 사이에 균형있게 흐르는 것이 참 좋았다.&lt;br /&gt;그러나 이후 이대귀가 보여준 일련의 작업물들은 뭔가 흐트러진 채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듯 하다. 마치 제것이 아닌 양 겉도는 그 느낌이 음반이나 트랙을 통해서 귓바퀴 어디쯤을 흐르고 흩어진다. 아쉬운 것은 이런 느낌이 이번 앨범에서 더 확연해졌다는 것이고, 이것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슬프다.&lt;br /&gt;여전히 이대귀는 기대할 만한 사역자이고, 많은물소리의 사역에는 호감이 간다. 많은물소리의 악보나 다른 미디어가 나올 때, 이제껏 그랬던 것 처럼 주저함 없이 구매할 수 있고, 이대귀의 이름이 들어간 앨범은 여전히 기대감을 안고 살 수 있다. 이번 작업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잘 모르겠지만, 많은 고민을 안고 시작했을 테고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왔을 텐데,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 혹시 안좋은 영향력을 끼칠런지 몰라서 심란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 두달동안이나 - 그것도 마감을 어겨가며 - 고민하고 쓴 이 글을 수정해볼 생각은 아직 없다. &lt;br /&gt;&lt;br /&gt;이 리뷰가 어쩌면 내 오해일 수 있고, 사실 그러길 바란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 앨범에는 많은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미덕이 중요할까? 아니면 앨범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섬김'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할까?&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378204846210199100?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378204846210199100/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378204846210199100&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7820484621019910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7820484621019910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1/vol1.html' title='사역 자체와 진정성이 균형을 잃을 때  [ 많은물소리 워십 vol.1 - 하나님 나라가 오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113769462394887144</id><published>2006-01-20T03:16: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2T01:54:37.156+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Life'/><title type='text'>나의 고장난 iBook</title><content type='html'>iBook이 고장났다.&lt;br /&gt;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장난 상태의 아이북을 꽤나 오랫동안 그냥 써왔다.&lt;br /&gt;고장난 부위들을 열거하자면,&lt;br /&gt;&lt;ol&gt;&lt;br /&gt;&lt;li&gt;LCD - LCD와 본체를 이어주는 경첩(?)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을 잘 조정하면 ... 나온다. ㅠ,ㅠ&lt;/li&gt;&lt;br /&gt;&lt;li&gt;lock - LCD를 닫았을 때, 찰칵하며 걸려서 잠겨야하는데, 이 부분의 걸쇠가 부러졌는지, 잘 안닫힌다. 그래서 슬립모드로 잘 들어가 주질 않는데, 아마 이때 부터 베터리에 문제가 생긴듯&lt;/li&gt;&lt;br /&gt;&lt;li&gt;배터리 - 충전이 뭔지 잊었나 보다. 무조건 어댑터를 끼워줘야 작동한다.&lt;/li&gt;&lt;br /&gt;&lt;li&gt;그리고 어댑터. 치명적이다. 사실 어댑터의 장착 자체도 연결되는 부위를 시온이가 씹은 뒤로는 잘 안되었는데, 어댑터의 수명이 다된 듯,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lt;/li&gt; &lt;br /&gt;&lt;/ol&gt; &lt;br /&gt;&lt;br /&gt;오늘은 CCMER 리뷰를 마감하기 위해 두남이로 부터 어댑터를 빌려왔지만, 어찌됐건 어댑터를 구입해야 될 것 같다.&lt;br /&gt;아이북을 위한 서드파티 어댑터로는 &lt;a href='http://www.albireo.net/powerbook/newspro/viewnews.cgi?newsid1126523925,36468,' target='_blank'&gt;알비레오넷에서 소개된 국산 어댑터&lt;/a&gt;와, 애플포럼 검색에 걸린 &lt;a href='http://www.madsonline.com/index.html?acadapter.html~mainFrame' target=_blank&gt;맷슨온라인(?)의 제품&lt;/a&gt;이 있다.&lt;br /&gt;아무리 퇴물이라해도, 어댑터 쯤은 있어야겠지. ㅡ,ㅡ; 배터리를 다시 사는 건 무리겠지만.&lt;br /&gt;&lt;br /&gt;&lt;br /&gt;추가...&lt;br /&gt;지금 검색해본 결과, 미국에서 맷손온라인 어댑터를 살바에야, 그냥 정품을 사는 것이 옳을 듯 싶다. 생각 보다 가격차이가 별로 없다. (맷손꺼를 왜 사지?)&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113769462394887144?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113769462394887144/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113769462394887144&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13769462394887144'/><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13769462394887144'/><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1/ibook.html' title='나의 고장난 iBook'/><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113769379334317807</id><published>2006-01-20T03:01: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2T01:54:37.156+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Life'/><title type='text'>거친 시온 - 나의 사랑하는 아들</title><content type='html'>&lt;a href="http://photos1.blogger.com/blogger/8117/426/1024/DSC_0121.jpg"&gt;&lt;img style="CLEAR: all; FLOAT: left; MARGIN: 0px 10px 10px 0px; CURSOR: hand" alt="" src="http://photos1.blogger.com/blogger/8117/426/400/DSC_0121.jpg" border="0" /&gt;&lt;/a&gt;  시온이는 거칠다.&lt;br /&gt;장난은 언제나 지나치며&lt;br /&gt;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꺼리들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다.&lt;br /&gt;&lt;br /&gt;시온이는 나의 아들이다.&amp;nbsp;&lt;a href='http://picasa.google.com/' target='ext'&gt;&lt;img src='http://photos1.blogger.com/pbp.gif' alt='Posted by Picasa' style='border: 0px none ; padding: 0px; background: transparent none repeat scroll 0% 50%; -moz-background-clip: initial; -moz-background-origin: initial; -moz-background-inline-policy: initial;' align='middle' border='0' /&gt;&lt;/a&gt; &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11376937933431780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11376937933431780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11376937933431780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1376937933431780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1376937933431780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6/01/blog-post.html' title='거친 시온 - 나의 사랑하는 아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1332349141627029897</id><published>2005-12-21T13:43: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18+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주저함 없이 말할 탁월함의 이유 [By Faith] - 믿음의 유산</title><content type='html'>CCM은 사역이면서 또한 예술이기에, 미적 완성과 사역의 진실성을 함께 요구 받는다. CCM 이기 때문에 미적완성에 많은 초점을 두어야 겠지만, CCM의 주체인 아티스트는 오히려 사역의 진실성에 기대는 것을 많이 본다. 기대는 것 까지는 괜찮은 데, 사역의 진실함으로 음악의 모자람을 덮는 경우도 있다.  과연 그것이 진실한 사역이 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은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음악적으로 탁월해지면 CCM을 하는 것이 아까워 질 수 있겠다.) 양쪽 모두 중요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지만, 대부분의 CCM 사역자 혹은 아티스트가 사역의 자리로부터 출발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 균형이 상대적으로 사역의 진실성에 많이 치우쳐 있는 것 같다. 또한, 미적 완성은 돈이나 시간, 그리고 열정을 쏟아 부어야 겨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기에 양쪽을 균형있게 성장시키기는 상당히 어렵다. &lt;br /&gt;&lt;br /&gt;이런 어려운 균형 잡기를 잘 해나가고 있는 팀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함 없이 믿음의 유산을 든다. 얼른 보기에 그들은 미적 완성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그들의 공연 활동은 교회 안에서 머물고 있는 '사역들'에 비해 실질적으로 사역적인 면이 많다. 또한 그들은 ‘사역의 테크닉’으로 사역 하지 않기에 나는 감히 그들의 사역을 진실하다고 주장한다. 사역의 테크닉이라 할 수 있는 유창하고 미려한 멘트 같은 것을 그들의 공연에서 만나기란 어렵다. 어눌하지만 진솔한 고백과 끝없이 연습하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음악으로 그들의 공연은 채워진다.&lt;br /&gt;&lt;br /&gt;2집 [by Faith]는 그들이 지녔왔던 - 사역자와 아티스트로서의 - 태도와 늘상 해왔던 - 연습과 작업같은 - 일들의 일부이다. 1집이 출시된 지 2년이 조금 넘은 지금, 아마도 수없이 많은 작업과 산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힘든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테고, 수십 번이나 뒤엎으면서 만들어낸 작업물이 분명하다. 이 결과물이 스스로는 아마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선 그들의 분명한 성장을 확인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lt;br /&gt;&lt;br /&gt;"어째서 이들의 탁월함을 주저함 없이 주장하는가. 그들은  카피밴드 아닌가?"&lt;br /&gt;만약, 그들이 '그저 카피밴드에 불가'하다면, 그렇게 다양한 (그들의 공연을 보면 안다.) 블랙가스펠 레파토리를 지닐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장르의 경우, 실력있는 카피밴드라면 다양한 레파토리를 지니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블랙가스펠은 그야말로 연습에 올인을 해야 그런 분위기를 낼까 말까이다. 게다가 연주자의 수준이 도와주지 않으면 연습자체가 불가능하다.&lt;br /&gt;그들이 '카피밴드에 불가'하지 않다는 증거를 하나 더 들어볼까? 그들의 피처링이나 자작곡의 수준을 살펴보면 그들의 레파토리의 수준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조PD와 함께 작업한 트랙 들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믿음의 유산이다. 또한 2집에 수록된 그들의 오리지널들은 어설픈 장르 겉핥기나 트랙 채우기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Kirk Frankiln이나 Fred Hammond 같은 엄청난 아티스트의 뛰어난 레파토리들과 함께 당당히 앨범에 힘을 실어준다. 이들의 오리지널에서 찾을 수 있는 또다른 특징은 이 노래들이 지나치게 '블랙가스펠' 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내가 블랙가스펠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사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블랙가스펠의 좋은 점 - 다채로운 비트와 리듬, 힘있는 보컬에 강한 메시지 - 은 그대로 들고 오면서 정서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순화 시켜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lt;br /&gt;예를 들어, 김효식의 솔로가 돋보이는 "Brand-Nu Day"는 블랙가스펠 같은 후킹이 분명한 비트와 멋진 코드, 그리고 힘있는 백보컬이 존재하지만, 멜로디나 솔로의 느낌은 (내가 알고 있는) 블랙가스펠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콤하다. 어찌보면 탁월하고 세련된 가요를 듣는 느낌도 있다. 그럼 블랙가스펠보다 안좋은 거 아니냐고? 무슨 소리. 더 끝내준다는 말이다.&lt;br /&gt;끝내주는게 하나 더있다. 일취월장이란 말을 붙여야 할 이철규와 김효식의 곡 "Let's Dance"은 개인적으로 꼽는 이 앨범의 백미이다. 이 앨범의 모든 미덕이 다 들어있다. 탁월한 라인과 스타일, 그것을 하나로 엮는 역량, 이것을 글로 표현하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화도 난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비명이라도 적어야 겠다. "들어보시라!"&lt;br /&gt;&lt;br /&gt;기존의 탁월한 레파토리와 이들만의 오리지널의 질적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 다르게 말해 수준은 그대로이되 원래 장르와는 다른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건 그들이 정체성이 바로 '아티스트'라는 것을 말한다. 장르에 귀속되거나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를 아우르며 그들의 오리지널을 스스로 만드는 데 애쓰고 있는 아티스트 말이다.&lt;br /&gt;&lt;br /&gt;이제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믿음의유산 1집은 그들의 역량에 비해 레파토리의 힘이 조금 강한것 같다. 그들이 가진 탁월한 역량에 어울리는 일이겠지만, 명곡이라고도 할 수 있을 대단한 레파토리만으로 이루어진 앨범이었기에 다른 우려가 있어왔다. 이런 곡들이 빠지고 자작곡이 채워지면 어쩌지? 라는... 2집은 그런 우려에 대한 확실한 카운터 펀치이다. 레파토리에만 붙어 늘어지는 믿음의 유산이 아니란 것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분명하게 확인시켜준다.&lt;br /&gt;사실 이 앨범을 1집과 비교할 필요는 별로 없다. 1집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1집의 가치를 너무 작게 만드는 이야기 일수도 있겠지만, 1집이 '블랙가스펠'을 믿음의유산 나름의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또한 대중에게 질문하는 작업이었다면, 2집은 더욱 성장된 모습으로 자신들의 방향성을 검증하는 단계라고 여겨진다. &lt;br /&gt;&lt;br /&gt;아름다움과 진실함, 어느 것에도 여전히 충실한 모습을 다져왔던 그들. 그들의 자유로움이 앨범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의지와 방향성이 반갑고, 그래서 그들의 2집이 반갑다. 이제 첫발자욱이라고 여겨지는 그 걸음이 균형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lt;br /&gt;사역에 대해, 미적 완성에 대해, 그들 자신이 가야할 길이 남겨져 있다. 끝이 어디냐 묻는다면 이미 그것은 지나치게 결과지향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저 하나님께 반응하던대로 계속 해나가면 된다. 어디에 있건 그곳에서 자신들의 예배를 찾아나가면 된다. 보혈에 대해, 그 은혜에 대해 진심으로 반응하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그 길을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지, 믿음의 유산은 이미 노래를 통해 힘주어 말하고 있다.&lt;br /&gt;By Faith! 믿음으로!&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133234914162702989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133234914162702989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133234914162702989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33234914162702989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33234914162702989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12/by-faith.html' title='주저함 없이 말할 탁월함의 이유 [By Faith] - 믿음의 유산'/><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4492243051903909662</id><published>2005-11-21T10:14: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19+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목적을 향해 노래를 밀어낸다면 [전도가]  - 지승진</title><content type='html'>무엇인가가 정형화되기까지에는 언제나 느리고 힘든 과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과정을 함께 한 사람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 객관적일 수는 없겠죠. 또한 그 과정에 함께 있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 올바른 이야기를 하긴 어렵구요. 어쩔 수 없이 저는 앨범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만 말하는 입장이지만, 또한 지난한 그 과정에 대해 약간의 이해와 경험을 지닌 사람의 입장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 앨범을 말하고 싶습니다.&lt;br /&gt;&lt;br /&gt;여러 면에서 [전도가]는 좋은 앨범으로서의 미덕을 많이 갖추고 있어요. 멋진 부클릿 - (시집을 연상시키는 순백색의 하드커버와 에세이(?). 노래 하나 하나 마다 정성스럽게 적은 그 노래의 의미들), 일반적인 시장 유통 구조와는 다른 형태의 앨범 전달 방법, 그것에 비해 안정되고 세련된 편곡과 연주.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론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lt;br /&gt;&lt;br /&gt;어쩌면 제가 지난번 호 20자평에 [전도가]에 대해 쓴 '전도, CCM의 어설픈 전형 안에 갇히다'라는 말은 너무 성급한 판단일는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제가 이 앨범을 들으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을 그대로 써낸 것이기 때문이죠. 버릇처럼, 리뷰 할 앨범을 여러 번 듣는 편인데, [전도가]의 경우는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어요. 음반을 들을 만한 시간적인 여유 자체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어느 면에선 이런 첫인상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그냥 제 문제일 수 있어요. 제가 부담스러워했던 부분들이 사실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말이죠.&lt;br /&gt;그리고 다시 저에게 이 앨범을 리뷰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과연, 저는 조금은 부정적이었던 첫인상을 벗을 수 있을까요?&lt;br /&gt;&lt;br /&gt;이 앨범엔 짧지 않은 강렬한 인트로가 있습니다.&lt;br /&gt;'혹시 최근에 교회에서 전도를 받아보신 적 있으세요?'라는 질문과 그에 답하는 대중의 인터뷰가 들어간 2분 남짓의 트랙이죠.&lt;br /&gt;이 트랙에 담긴 대중의 인터뷰는 사실 조금은 부담스러워요. 교회의 '일방적인 전도'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트랙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그것을 아우를 만한 자신감이 있어서겠거니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회의 '일방적인 전도'에 대해 편견은 없지만, 배려와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기에, CCM 앨범에서 이런 부분들을 다루는 것 자체만큼은 호감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그 호감은 그 이후 계속되는 트랙을 들으면서 난감함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lt;br /&gt;&lt;br /&gt;두 번째 트랙, 그러니까 인트로를 제외한 첫 번째 노래인 "그에게로"는 쉽게 말하자면 전도하는 노래입니다. '나 역시 믿지 못했었죠.'라고 시작되는 가사와 그것을 부연하는 악구,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에게로 돌아오세요.'라는 후렴이 개연성 자체는 약하지만, 노래로서는 나쁘지 않아요. 아니, 여러 면에서 좋은 노래입니다. 편곡도 훌륭하고 멜로디나 보컬도 깔끔하죠. 문제는 이 트랙의 위치입니다. 노래 하나만 떼어놓고 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전도에 대한 불만이 담긴 인터뷰 뒤에 배치된 곡으로 본다면 상당히 이상한 의지의 나열이거든요. 전도에 대해 불쾌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 같은 입장으로 '그에게로 돌아오세요.'라고 말하고 있어요. 가만히 보면 각 트랙의 대상도 무언가 어긋나 있죠. 인트로 트랙은 분명히 저처럼 교회에 오래 다닌 '전도'에 대한 관심을 지닌 사람을 향한 것일텐데. 연이어 나오는 트랙은 '그에게로 돌아오세요.'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만약 인트로가 교회 다니지 않은 사람을 향한 것이라면 그 역시 이상해요. 어째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그런 인터뷰를 들어야 할까요. 전도에 대한 불쾌감을 일깨우기 위해? 아니면 이것이 새로운 스타일의 전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lt;br /&gt;&lt;br /&gt;세 번째 트랙인 "이해"는 '나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오직 주님이 아신다.'는 내용입니다. 이 트랙에서 부터 저는 이 앨범이 '컨셉 앨범'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확신했습니다. 트랙 간의 개연성을 찾기 보다, 그저 트랙 하나하나에 각각 다른 의미와 가치가 있을 거라고 보기 시작했죠. 물론 그런 것 치고는 그 외의 것들 - 공들여 만든 부클릿에서부터 제가 칭찬한 모든 미덕들 - 이 마치 컨셉앨범인양 밀어붙이고 있긴 했고, 심지어는 부클릿에서 노래의 가사와 그 의미들이 정성스레 적혀진 지면마저도 노래 사이사이에 그것을 잇는 글귀들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이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있다고 보기엔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화자와 대상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도 뮤지컬이나 오라토리오가 아닌 솔로의 앨범에선 쉽게 익숙해지지 않더라구요. 그저, '전도'라는 대 목표를 향해 각각의 노래들을 밀어 넣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어요.&lt;br /&gt;&lt;br /&gt;그러나 그런 시각으로 보더라도 해결이 안 되는 트랙도 있습니다. 들뜨고 신나는 분위기로 시작되는 "Hey, man"은 전도의 대상에게, '전도 당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후회하기 전에 얼른 믿으라는 이야기인데, 물론 구도 상으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과연 '전도'가 그런 태도를 지녀야 하는 걸까 싶어요. 이 노래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전도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신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BGM 같은 역할은 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결국 이 노래의 화자와 대상을 기억해본다면, 즉 이 노래를 정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 불러줄 수 있는 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런 상황을 이 노래가 더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싶더라구요.&lt;br /&gt;&lt;br /&gt;또한 "Turn to Jesus" 라는 곡을 들으면서는 '장르를 오해하는 CCM'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것은 [전도가] 뿐만이 아니라 많은 CCM 앨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에 대한 부담은 어쩌면 나한테만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데요. 이 역시 노래를 듣는 사람이 CCM에 호감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조심해야할만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댄스음악을 모르는데 댄스 앨범을 낸 CCM 가수 라든지, 보사노바를 모르는데 보사노바 풍으로 작곡을 한다든지, 메탈을 모르는데 메탈 분위기 나게 해달라고 기타리스트에게 때를 쓰는 편곡자도 '장르를 오해하는 CCM'의 범주 안에 듭니다. 이것은 CCM의 정의를 '오늘의 음악, 그 메시지는 영원한 것'으로만 국한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봅니다. 물론 여러 면에서 이 정의는 옳지만, 이 정의를 방법으로까지 잘못 끌어내리면, 오늘의 음악에 담아야 하니까, 자신이 잘 모르더라도 이런 음악 스타일, 저런 음악 스타일을 해야 된다고 여길 수 있죠. 이것이 강박이 되고, 정서적인 이해가 없는 장르 겉핥기식의 트랙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물론 그렇다고 어느 장르 하나만을 깊게 파야 된다고 우기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정서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라가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말이죠. 장르에 묶일 필요는 없잖아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어제'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고, '오늘'에는 오늘 만나는 음악과 음악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고 또한 줄 수 있으니까,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해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거죠.&lt;br /&gt;길게 이야기했지만, "Turn to Jesus"는 음악적으로 그 균형이 애매합니다. '강한 표현'을 위해 디스토션이 걸린 8비트 일렉기타의 Backing이 있지만, 그와 비슷한 밸런스로 스트링이 자리 잡고 있고, '제이(이)에스유~에스'라는 보컬 리드로 시작되는 엔딩리프는 전체적으론 16비트로 스피디하게 연주되는 리프지만, 그 활기를 보컬이 잡아먹고 있거든요.&lt;br /&gt;&lt;br /&gt;그러나 그 이후의 트랙들은 편안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당신을 향한 주의 손", "9000 마일", 그리고 전작인 [inCh]에 들어갔던 트랙을 리메이크 한 "그 분을 만났네" 같은 트랙에 지승진의 강점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자신이 화자가 되어 그 자리를 담담하게 서술하는 노래들 말이죠. 특히 "그분을 만났네"는 전작보다 오히려 더 많은 악기를 사용했음에도 더 편하게 들립니다. 단순히 키를 낮춰서라기 보단 지승진이 잘 다루어 낼 수 있는 정서가 이 쪽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론 [CCM Big 97]을 통해 처음 알려졌던 "당신을 향한 주의 손"이 가장 편했어요. (그 앨범이 참 좋았다고 생각하는 건 저만 그런 걸까요?) 아마도 이 트랙들에서는 화자의 태도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태도에 대해 왜 이렇게 민감할까요.&lt;br /&gt;그것은 그 사람의 태도가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이와의 소통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소통은 정서적인 공감을 필요로 합니다. 어떠한 공감도 없는 만남을 통해 소통이 일어나기란 어렵다고 봐요. 방송이나, 설교, 음반 같은 일방적인 송출에 해당되는 매체 역시, 정서적인 공감과 소통을 위해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서적인 공감은 화자 상반간의 상대적인 자리에 대해, 그리고 서로 다른 경험에 대해 깊이 이해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봐요.&lt;br /&gt;&lt;br /&gt;[전도가]를 들으며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바로 태도에 대해서 였어요. 소통 없이 교감을 꿈꾸고 있는 태도라고 느껴졌거든요. 물론 이 앨범의 제작 자체는 분명히 옳은 의지로부터 출발했겠지만, 그것이 흘러가야할 방향을 모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특히나 고민이 되었던 것은 인트로인데, 인트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이후에 이루어진 몇 곡의 배치와 그 노래들이 가진 태도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바로 이런 부분들이 제가 음반을 들을 때나 노래를 만들 때 가장 예민하게 바라보는 부분이기에 앨범 자체에 대한 호감으로도 이 불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lt;br /&gt;&lt;br /&gt;위에서도 조금 언급 했지만, 아무리 옳은 의지와 목적이더라도 그것을 흘려내는 방법이나 방향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노래를 들을 대상에 대한 깊은 배려가 없다면, 목적을 향해, 또 목적을 위해, 들으려하지 않는 노래를 그저 밀어내는 모양새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 수 있어요. 계속 하는 이야기지만, 이것에 대한 부담감이 저한테만 있는 건지도 모르구요. 그러나 [전도가]를 이야기 할 때,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부담을 말해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전도가] 스스로, 목적을 향해 맞지 않는 정서를 밀어내는 것은 불쾌한 일이라고 전제하면서 앨범을 시작했기 때문이죠.&lt;br /&gt;&lt;br /&gt;만약, [전도가]가 [전도가]아닌 [지승진 1집]이라던가, 아니면 다른 제목으로, 좀 더 평범한 부클릿으로, 그리고 인트로 없이 출시되었다면 아마 제가 저 위에 적은 모든 이질감이나 부담이 조금은 상쇄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여전히 부담으로 남을 몇몇 트랙이 있겠지만, 옥에도 티는 있기에 부담 없이 내려놓고 좀 더 긍정적으로 리뷰 할 수 있었을 런지 모릅니다. 혹은, [전도가]가 그 모양새 그대로 [전도가]이려면, 부클릿에 들어간 (아마도 전도서인 듯 싶은데) 에세이(?)의 태도를 트랙에 반영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lt;br /&gt;&lt;br /&gt;[전도가]를 만나고 나서 이 리뷰를 쓰기까지 약 2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어요. 끝까지, 저는 이 앨범의 좋은 면들을 찾고 싶었고, 제가 받은 첫인상을 벗어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이 리뷰를 쓰기 위해 꽤 오랫동안 고민했고, 나름대로의 객관과 애정 안에서 앨범 제작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이 글을 썼다는 점입니다. 바라는 것은, 이 앨범에 대한 졸렬한 나의 글 때문에 앨범을 만들었을 때 가졌던 의지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의지의 순전함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고, 다만 CCM 안에서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방법에 있어서의 오해가 조금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뿐이니까요.&lt;br /&gt;하여, 지승진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계속 지니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좋은 아티스트라고 보거든요.&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4492243051903909662?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4492243051903909662/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4492243051903909662&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49224305190390966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49224305190390966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11/blog-post_21.html' title='목적을 향해 노래를 밀어낸다면 [전도가]  - 지승진'/><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3969460030913042843</id><published>2005-10-26T16:19: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1.151+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interview'/><title type='text'>예수에 묶인 레게, 닥터레게를 만나다.</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zB6MVP3I/AAAAAAAAAcg/-sXOtHVZnb0/s1600-h/563078378_03690f05_IMGP1493.jpg"&gt;&lt;img style="display:block; margin:0px auto 10px; text-align:center;cursor:pointer; cursor:hand;"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zB6MVP3I/AAAAAAAAAcg/-sXOtHVZnb0/s400/563078378_03690f05_IMGP1493.jpg" border="0" alt=""id="BLOGGER_PHOTO_ID_5082297918637293426" /&gt;&lt;/a&gt;&lt;br /&gt;닥터레게를 만나고 싶었습니다.&lt;br /&gt;90년대 초, 한국에 레게를 노래했던 그들이 이번엔 레게로 하나님을 노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물론 첫번째 앨범과 두번째 앨범 사이에는 [ONE]이라는 CCM 앨범이 있습니다만, 레게가 가진 정통적인 의지는 메시지를 풀어내는 것이었으니 레게로 CCM을 한다는 건 그냥 다른 음악 장르로 CCM을 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lt;br /&gt;인터뷰에 초보인 저에게는 벅찬일이었지만 제가 만난 닥터레게를, 그들의 노래와 그 이유를 전해봅니다.&lt;br /&gt;&lt;br /&gt;CCMER /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TV에서 뵌 기억이 있어요.&lt;br /&gt;Dr.Reggae /  그게.. 언제적이죠&lt;br /&gt;CCMER /  제가 군대가기 전이니까 90년대 초반이겠죠 아마.&lt;br /&gt;Dr.Reggae /  그럼 이제 서른 ... 셋 쯤&lt;br /&gt;CCMER / 오, 맞추셨어요. (웃음)&lt;br /&gt;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크리스천음악을 주로 들었지만, 양쪽을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었는데 그 때 들었던 닥터레게의 질감이 독특했었어요. 그 당시 한국 레게의 가벼움과는 다른, 밥 말리의 레게와도 어딘가 통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의 가요 속의 레게의 달달함과 가벼움에 대해 답답한 마음이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셨었잖아요. 그 땐 어떠셨어요&lt;br /&gt;Dr.Reggae / 그때는 스물 일곱살 된 레게에 미친 사람이었구요. 지금은 이제 서른 아홉된 레게에 미친 사람이구요. 지금이 좀 안정된 느낌이고 그때는 레게 사랑에 어쩔 수 없던 그런 20대 젊은이였죠. 멤버들하고는 2년 반정도 연습실에서 같이 살면서 토요일날 외박 나가고 월요일날 다시 입소, 아니 입실인가. (웃음) 2년반 정도 같이 살면서 음악하고 그랬죠.&lt;br /&gt;&lt;br /&gt;CCMER /  1집에서도 '사랑 이야기'가 아닌 노래들이 있었죠. 예를 들어서 2집때 리메이크 된 '하나' 라던지. 그 외에도 레게 자체의 즐거움을 노래한 트랙도 있었구요.&lt;br /&gt;Dr.Reggae /  음악에 메시지를 강하게 집어넣어서 할 수 있는 것이 레게라고 생각해서 그런 매력이 컸거든요.&lt;br /&gt;그리고 음악을 시작하면서 음악을 통해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는게 그게 뭐냐하면 그 음악을 들은 사람들,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이 그 음악을 통해서 과거에 묶여있지 않고 현재를 묶여 있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고 싶었어요. 그 목적이에요. 그 전에도 예수님은 몰랐지만 그건 알고 있었어요.&lt;br /&gt;지금도 그것과 동일한 맥락이지만 그 메시지가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안에 어떻게든 메시지로 담아서 대중음악으로 만들고 대중들의 시선을 모아서 어떻게 하면 그 모은 시선을 시온산에 올릴 수 있을 까하는 생각이죠. 그게 이 전과 지금과의 틀린점이죠. 전에는 어떻게든 그 시선을 내가 받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거든요.&lt;br /&gt;그리고 그들 중에는 저희는 잃어버린 양들이 분명히 있을 꺼라고 생각하거든요. 뭐냐하면 교회가 대형화 되고 산업화 되면서 교회에 상처받은 영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lt;br /&gt;그래서 사실 저희 닥터레게가 생각하는 건, 우리 음악과 우리를 바라보는 가운데 삶으로 드려지는 것들과 바라보는 가운데 그들이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사실 누구를 통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동행해서,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같이 동화된 그 테두리 안에서 다시금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 안으로 들어가는 사역이거든요.&lt;br /&gt;&lt;br /&gt;CCMER /  1집 다시 들으면서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물론 밥 말리에게 영향을 받으셨겠지만 다른 사람, 다른 아티스트에게도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았었어요.예를 들어서 제가 "나 혼자" 같은 곡에서 인트로의 스캣 같은 경우에는 이니그마 같은 느낌도 좀 있었거든요.&lt;br /&gt;&lt;br /&gt;Dr.Reggae /  이니그마 보다는... 그 당시 제가 그걸 맨 마지막에 녹음한 건데, 바비한테 시켜서. 바비한테 어떤 느낌을 전달하라고 그랬냐하면 스캣으로 라이온킹의 느낌 (웃음)을 주문했는 데 그게 나온거거든요.&lt;br /&gt;CCMER /  (웃으며) 특이하네요.&lt;br /&gt;Dr.Reggae /  예. 전 바비한테 라이온킹을 좀 하자. 여기는 약간 미스테리한 느낌을 줘서 아프리카 쪽으로 몰고 들어가 보자. 했었죠. &lt;br /&gt;원래 "나 혼자"라는 노래는 중만이 형님(사진작가 김중만)이 저한테 "장윤아 내가 왜 이렇게 됐냐 하면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됐다." 그러시는 거에요. "왜 형?" 그러니까. "생각해보니까 남들은 구슬치기 하고 딱지 치기 하고 놀아야할 때, 나는 아프리카에서 노을 지는 데 막.. 코브라들 놀고있고, 기린 뛰어 지나가고, 코끼리들 막 울고 그런것만 보면서, 그런 거 그림 삼아 자기 혼자 놀았다"고,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서 내가 이 앵글을 잡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lt;br /&gt;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공감이 되었어요. 그래서 아프리카의 느낌을 좀 마지막에 '나 혼자'라는 느낌에 넣었던 거죠.&lt;br /&gt;&lt;br /&gt;CCMER / 그러면 나혼자라는 노래에서의 스캣은 대평원의 느낌이라기 보다는 막막한 광야의 느낌인걸까요?&lt;br /&gt;Dr.Reggae / 그렇죠. 제가 혼자 있을 때 만든 노래라서요. 혼자의 느낌이 강해서 그게 동감이 됐어요. 어디 혼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데에 혼자인 느낌. 그걸 표현하고 싶었었어요. 곡을 만들 때 저는 이스라엘 사막에 있었는데 그런 느낌들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때 만들어 놓고서 어 이거 이니그마 같다고, 그 당시에 시기적으로 이니그마가 나오고 있었던 시기여서 그런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했던 것 같아요.&lt;br /&gt;CCMER / 1집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레게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lt;br /&gt;Dr.Reggae / 저는 레게는 가리지 않고 다 좋아했어요. 근데 그 밥 말리의 레게에서 제가 참 표현하기 힘들었건 뭐냐하면 마이너 스타일이에요. 마이너 스타일의 음악을 제가 하기가 힘들어 했어요. 마이너라는 것은 깊숙한 아픔들이 배어나와야 되니까 덜 아팠었나봐요. (웃음)&lt;br /&gt;그런 거에 비해서 UB40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포근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이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닥터레게가 가지고 있었던 레게의 정서였던 것 같아요. 또 한국 사람이 처음 레게를 접하는 건데 어떻게든 부담스럽지 않게 만들어가자... 해서 1집이 그렇게 나온거에요. (웃음)&lt;br /&gt;&lt;br /&gt;CCMER / 1집하고 ONE사이에 상당히 간극도 크고, 다채로운 일들이 있었다고 들었어요.&lt;br /&gt;Dr.Reggae / 자세한 건 다른 매체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으니까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닥터레게 활동 하다가 마약 때문에 감옥을 가게 되었어요. 제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었거든요. 그 시간이. 그런데 그 시간을 통해서 예수님 을 만나게 되었고, 거기가 세상 끝이라고 해서 끝낼라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끝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찾아오셔서 절 변화 시키셨고, 그리고 제가 뭐 이렇게 이것 저것이 없거든요. 딱 하나 되면 그거 거든요. 그래서..&lt;br /&gt;CCMER /  예수님도 그렇게 믿으셨군요.&lt;br /&gt;Dr.Reggae / 네! 그렇죠.&lt;br /&gt;그리고. 그 다음서 부터는 전부 다 드리고 하나씩 하나씩 주님께 응답받고 어떻게 해나가야 될것인가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천국의 예배자로서 이 육신의 숨이 끊어질 때 끊어지는 순간 바로 천국의 예배자로 들림 받을 수 있는, 그런 예배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거에만 몰두하고 지내고 있었어요.&lt;br /&gt;그러다가 제주도 사명도 받게됐고, 제 아내도 만나게 됐고 제 아내와 결혼하게 됐고 결혼하자 마자 제주도 가서 사명 받아서 이런 귀한 친구도 만나서 같이 이렇게 이제까지도 같이 있었고... 장신대 다니다가 기도원에서 부르심 받고 그냥 제주도로 갔어요. 지금 제주도의 복음화가 7%인데, 그것이 두자리수로 올라가는 데까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고, 제 뼈는 제주도에 묻을 꺼에요.&lt;br /&gt;그리고 ONE은 제주도 내려와서 전도사 생활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독교도소에 대해 부르심이 있었어요.&lt;br /&gt;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아가페라는 단체를 하시고 계시는데요, 여주에서 터를 만들어놓고 계시다는 소식을 제가 이전부터 들었는데, 기도하는데 부르심에 확신을 얻고, 그럼 내가 할 수 있는게 뭐 있을까. 내가 뭘 드릴 수 있을 까 하다가 내가 갖고 있는 것 향유옥합을 주님께 드려야 되겠다 해서 주님께서 주셨던 그 귀한 곡들을 좀 모았어요. 모아서 급하게 서둘러 만들어서 그 앨범 전체를 그냥 기독교도소를 위해 드리게 된거죠. 그렇게 만든 앨범이에요.&lt;br /&gt;내가 닥터레게 묶여 있던 것도 아니고 꼭 레게로만 드려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이번엔 좀 다르게 모던워십이나 락쪽을 좀 해보고 싶었죠.&lt;br /&gt;&lt;br /&gt;CCMER /  ONE을 듣다 보니까 &lt;br /&gt;앞부분에선 워십컴의 모던함이 느껴지고 음악적으로는 좀 달달하고 다채로운 느낌이었구요. 거기에 비해서 뒷부분은 굉장히 옛스럽고 이질적인 느낌. 일단은 앞과도 다르지만 닥터레게와도 다른 애절한 정서이긴 한데 이것이 정말 나이브 하다. 굉장히 거칠고, 날것이다. 이런 느낌이 강했거든요.&lt;br /&gt;그래서 워십컴의 모습이나 예전의 닥터레게도 아닌 어떤 이질적인 것이 혼합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lt;br /&gt;그건 어떤 의도로 집어넣으신 것이었나요. 그 날것같은 감성은.&lt;br /&gt;&lt;br /&gt;Dr.Reggae /  한오백년이나 성령의 열매가 아마 그렇게 느끼셨을 거에요. &lt;br /&gt;한오백년이 본래의 한오백년 가사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한오백년은 김삼환 목사님 사모님 되시는 분께서 번역을 해주시기로 하셨어요. 나중에. 영어로요. 그 곡을 들으시더니 그 곡을 번역해 주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라구요.&lt;br /&gt;그런 거거든요. 뭐냐면.&lt;br /&gt;우리가 우리의 것을 주님께 어떻게 드려야 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앞으로도 닥터레게의 방향성에서 그런 포인트를 보실텐데. 우리의 것. 결국은 닥터레게의 2집도 우리의 것을 한거지만 어떻게든 좀 더 깊숙히 들어가고 싶어요. 원시적이라고 그러면 뭐 옷안걸치고 있고 그런 걸 원시적이라고 생각하잖아요.&lt;br /&gt;그러니까 어떻게든 우리가 우리 것을 표현할 때 관습적으로 젖어 있었던 것을 벗어내면 어려운게 아니라구요. 벗어내면 그러면 우리시대에 맞는 우리것이 나오는 거다 생각했어요.&lt;br /&gt;외국에서 승부할 수 있는 것은 국악기로 국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걔네들의 연주방식안에서 해석해야 된다고 보구요.&lt;br /&gt;그래서 중중모리 리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만들었는데, 대신 그 안에는 절대로 국악기가 없었어요. 그리고 도균이형. 김도균씨의 기타로 가야금 소리를 내서 만들었었거든요. 그거였어요. 저는 어떻게든 우리나라의 귀한 옛것을 우리가 우리 연주를 통해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계속 어느 한 부분에 계속 불어 넣을꺼에요. 언젠가 그것이 인제 좋은 기회가 되서 해외에 나가서 사람들한테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너무 좋겠어요.&lt;br /&gt;&lt;br /&gt;CCMER / 2집이야기를 해볼까요. 첫 곡들으면서 반가왔어요. 마이너리티의 정체성같은게 느껴져서요. CCM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CCM에 대한 어떤 전형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앨범을 만들거나 공연을 하거나 비슷비슷해지는 거죠. 노래도 비슷해지고 보컬 톤도 비슷해지고 그런 전형안에서 그런 식의 메이저리티가 형성이 되는 거에요. CCM도 마이너 인데...  그러면서 뭔가 고무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렵게 되죠. "이게 레게"를 들으면서 처음 느낀 거는 아까 어렵다고 하신 '마이너'의 감성, 그리고 눌리고 속박당하고 사실은 메이저가 아닌 다른 것을 지닌 자의 정체성에서 굉장히 공감 되었거든요.&lt;br /&gt;Dr.Reggae /  그냥... 애드립을 안집어넣은게 되게 아쉬워요. (웃음)&lt;br /&gt;기타 애드립을 좀 넣고 싶었거든요.&lt;br /&gt;CCMER /  라이브 때에 넣으시면 되겠네요. &lt;br /&gt;Dr.Reggae /  네. 그래서 라이브 때는 넣는 데.&lt;br /&gt;&lt;br /&gt;CCMER /  원래 좋은 밴드는, 앨범보다 라이브가 더 좋아요. (웃음)&lt;br /&gt;사실 최근에 대중음악 쪽에선 그루비한 음악이 강세라서 리듬이 강한 쪽이 강세이긴 해요. 그래서 편한 부분도 있겠지만, 돌아온 닥터레게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데, 이것에 대해 대중음악계에서는 그냥 곱게 보지 않을거구요. 그렇다면, 어려운 일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해도 그렇고, 금전적인 부분도 그렇구요.&lt;br /&gt;Dr.Reggae /  (멤버들에게) 다 같이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은데...&lt;br /&gt;우린 내어드림에 대한 기적, 그것을 많이 체험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주께 다 드리고 나면 주께서 다 챙겨주신다. 이것에 대한 엄청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죠. 사실 이렇게 말은 쉽게 하지만 당연히 현실적인 부분들이 늘 많이 생각나고 부딪히고 있어요. 그렇지만 밥 세끼 다 먹고 있구요.&lt;br /&gt;전 그래요. 사실 뭐 (크리스천이라면) 다 똑같은 거지만. 정말 덤으로 사는 삶, 덤으로 사실 받았잖아요. 그 인생에 정말 감사함으로 살고 있는데, 그게 그런 감사함이 안느껴질 때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상적인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밖에 없는 건 그 이상은 진리이기 때문이죠.&lt;br /&gt;생명을 받았잖아요. 그러면 감사해야죠. 그래서 그냥 나가고 있어요. 뭐가 감사하냐 하면 주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내가 주님이 내게 주신 향유옥합을 내가 지금 갖고 있다는 거. &lt;br /&gt;(이전에) 방송같은 거 나갔을 때, 피디님이 크리스천이라고 하세요. 아, 그래요. 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그래도 방송 끝나고 나면 굳어져 있죠.&lt;br /&gt;내가 어떤 영화에서 진실을 위한 희생의 의미를 배운적이 있는데, 그런 상황들을 만날 때 마다  그런 마음들로 해나가면 주께서 오히려 들어쓰시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그런 위치에 나가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주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어떤 쓰임으로라도 쓰이고 있잖아요.&lt;br /&gt;&lt;br /&gt;CCMER /  긴 시간 우문에 현답으로 이야기해주신 것 감사합니다.&lt;br /&gt;&lt;br /&gt;덧.&lt;br /&gt;이 땅에서 진심으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대중음악을 필드로 두고 활동할 때 자신들이 "예수장이"인 것을 본질에서 부터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감이나 '교회에 다닌다'는 정도의 정체성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lt;br /&gt;상황과 상관없이 거친 목소리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신앙 그대로, 예수에 묶인 자신들의 모습을 자신있게 드러내는 닥터레게에게 성원과 지지를 보냅니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3969460030913042843?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3969460030913042843/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3969460030913042843&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969460030913042843'/><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969460030913042843'/><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10/blog-post.html' title='예수에 묶인 레게, 닥터레게를 만나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zB6MVP3I/AAAAAAAAAcg/-sXOtHVZnb0/s72-c/563078378_03690f05_IMGP1493.jpg'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8938258324526051648</id><published>2005-10-25T03:46: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0+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아티스트를 옷입은 원시 사역자 [the Second Coming] - 닥터레게</title><content type='html'>이번 리뷰는 앨범에 대한 리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이 앨범을 만나고 나서 떠오르는 - 이 앨범의 아티스트인 닥터레게와 레게에 관한 - 제 생각들을 정리하는 정도라고 할께요.&lt;br /&gt;&lt;br /&gt;한 10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TV쇼에서 특이한 헤어스타일과 재미난 음악을 들고 나온 닥터레게를 본 것은.&lt;br /&gt;그보다 몇 달 전쯤 밥말리를 처음 들었었고, 레게라는 음악에 내재된 힘과 현실을 반영한 탁월한 가사에 감동했었죠. 당시 한국의 대중음악을 휩쓸던 레게음악은 밥말리의 레게와는 전혀 다른 달달하고 가벼운 댄스 음악일색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등장은 가요를 잘 모르는 내게도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어요.&lt;br /&gt;그러나 몇년 후, 2집을 준비 중이라는 인터뷰를 TV에서 본지 얼마 안되었던 것 같은데, 그들의 리더가 마약사범으로 구속되어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lt;br /&gt;&lt;br /&gt;레게의 왕은 밥 말리입니다. 그는 크리스천이 아니에요. 자마이카의 토속 신앙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죠. 그럼에도 제가 그의 레게에 주목했던 이유는 그가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풀어냈고, 그것을 단순히 노래로만 끝내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촉매로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래를 통해, 공연을 통해 표현된 그의 꿈은 자신의 나라 자마이카를 분쟁없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콘서트 중, 내전 일보 직전이던 자마이카에서 서로 대적하던 정치 지도자들의 손을 잡게한 일은 비록 그것이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까진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의 레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죠. 네. 이것은 자마이카인들에겐 복음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레게는 메시지의 음악이었구요. 아마도 저는 CCM과 레게가 가진 동일한 속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밥 말리의 레게를 들어봤던 제게 김건모가 귀에 들어올리 없죠. 그래서 닥터레게가 더 반가왔던것 같아요.&lt;br /&gt;&lt;br /&gt;그렇다고 레게라는 음악으로 CCM을 하는 것이 무조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하느냐는 그의 정서가 그를 어떻게 이끄느냐에 달려있죠. 자신의 정서도 아닌데 어떤 장르를 애써 흉내내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lt;br /&gt;&lt;br /&gt;뉴스 이후 닥터레게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작년 초쯤 CCM 앨범인 [ONE]의 보도자료에서 그의 이름과 함께 많이 변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사이의 일들에 대해서도 알게되었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겹쳐졌지만, 어떤 그림 같은 게 제일 먼저 떠올랐죠. 그건 '레게'와 'CCM'의 '교집합'에 걸린 닥터레게 였어요. 하지만 [ONE]은 그런 기대감을 채워주기는 힘든 앨범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나름의 완성도와 매력을 지닌 앨범이었죠.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모던한 편곡이었고, "성령의 열매"라던가 개사된 "한오백년" 같은 곡에선 그들 나름의 실험으로 채워져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제가 기대했던 건 닥터레게였어요. 레게와 CCM의 교집합에 들어있는...&lt;br /&gt;&lt;br /&gt;닥터레게의 두번째 앨범,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닥터레게의 이름으로도 두번째이지만,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그들에겐 CCM 앨범인 ONE 이후로 봐도 두번째인 [the Second Coming]의 출시는 상딩히 반가운 일이었나봐요. 오랜만에 갔던 음반 매장에서 그 앨범의 재킷을 보자마자 사버렸으니까요.&lt;br /&gt;&lt;br /&gt;앨범은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lt;br /&gt;첫번째 트랙인 "이게 레게"의 가사는 이런게 레게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같은 마이너리티의 정서를 통해 들을 때는 마치 "이게 CCM"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처럼 느껴졌구요. 1집에서 리메이크된 곡도 꽤 많았는데, 두번째 트랙인 "Sing the Reggae" 가 바로 1집의 첫번째 트랙인 "어느 여름밤의 나"를 리메이크한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하나"라는 곡도 "One" 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트랙은 패닉의 이적이 함께 부른 "아름다운 세상"인데 그 가사가 꽤나 유별난 재미를 줬어요. &lt;br /&gt;&lt;br /&gt;까마귀 검다하되 백로야 백로야 / 까마귀 검다하되 백로야 웃지마라 /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아냐 다 아냐 / 숨겨있는 보물을 찾아 내 보는 거야 / 누구에게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있지 / 해와 달보다 더 높은 곳에 반짝이는 우리의 소망 / 너는 무얼 위해 사는 지 또 무엇을 따라 가야 하는지 / 제각기 다른 서로의 색으로 /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 봐요 만들어 봐요 / 사랑으로 믿고 믿음으로 행하며 / 세상을 이기면서 사는 기쁨을 /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함께 하시고 / 언제나 변하지 않고 항상 행복해 &lt;br /&gt;&lt;br /&gt;이 노래의 가사는 그렇게 보려하지 않아도 상당히 노골적인 CCM으로 보입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마이너리티 아닌 마이너리티 안에서 '보물'을 간직한 자의 기쁨과 정체성이 드러나고 있거든요. 아참, 아직 이야기 하지 않은게 있어요. 이 앨범은 CCM으로 출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긴 해도 이적에게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부르게 한 건 참 신기한 일입니다. 물론 이적 쯤 되는 아티스트가 무언가 휘둘리며 그랬다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 상통하는 면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만. 또한 밥 딜런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 를 개사한 "Walking to Heaven's Door" 도 재치가 넘칩니다. 제목을 바꾼것도 그렇지만 'Mamma take~' 로 시작되는 노래를 'Fa' take ~'로 바꾼 것이라던지 중간에 랩처럼 영어로 말하는 요한복음 11:28 ~ 30 의 말씀도 노래의 가사와 잘 어울려요. 그 외에 다른 곡들 역시 힘없이 트랙을 채우고 있진 않습니다. 곡마다 그곳에 있을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죠.&lt;br /&gt;&lt;br /&gt;한가지 제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앨범의 사운드입니다. 사실 이건 제 취향일 뿐입니다만, 제 편향된 취향 안에서 레게는 조금 빈티지한 사운드라고 생각했거든요. 닥터레게의 사운드는 그보다는 조금 더 말끔합니다. "Sing the reggae"나 "One" 같은 곡은 레게라기 보다는 유로댄스의 사운드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구요. 다른 곡들 역시 정통적인 레게의 사운드나 느낌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거의 10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이 앨범의 사운드는 첫번째 앨범과 비슷해요. 좀 더 재밌는 건 그런 말끔한 사운드와 익히지 않은 날것 같은 느낌의 거친 보컬이 서로를 돕고 있다는 점이죠. 꺽이거나 음정이 불안해지거나 하는 것은 별로 상관 없다는 듯 질러대는 보컬 덕분에  오히려 노래의 내용들이 그 위로 드러나고 있어요. 어렵게 말했지만, 그냥 쉽게 말하자면 가사가 들린다는 거죠. 그게 장점이냐구요? 글쎄요. 적어도 보컬이 노래를 방해하지 않고 한 몸을 이루고 있으니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lt;br /&gt;&lt;br /&gt;그들의 웹사이트 www.drreggae.com에도 이것 저것 볼 것이 많습니다. 앨범 재킷에도 들어간 'Gorillaz'를 연상시키는 멤버들의 일러스트 부터 각 멤버의 소개, 가사등을 볼 수도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게시판에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구요. 무엇보다 그 웹사이트에서 처음 보여주는 문장이 인상에 남습니다.&lt;br /&gt;'음악을 통해 내일을 듣게 할 수 있다'&lt;br /&gt;&lt;br /&gt;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이 앨범은 CCM으로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를 들어보시려면 지금 당장 라디오 프로그램 웹사이트에 신청곡을 남기러 가세요.&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8938258324526051648?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8938258324526051648/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8938258324526051648&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93825832452605164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93825832452605164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10/second-coming.html' title='아티스트를 옷입은 원시 사역자 [the Second Coming] - 닥터레게'/><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6245287675246307765</id><published>2005-10-22T14:32: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1.349+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CCMer가 듣는 대중음악 - 저는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 아닙니다.</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szqMVPzI/AAAAAAAAAcA/Y1tYMJh17y8/s1600-h/1030017725_ce0c6f1b_ccmer.jpg"&gt;&lt;img style="display:block; margin:0px auto 10px; text-align:center;cursor:pointer; cursor:hand;" src="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szqMVPzI/AAAAAAAAAcA/Y1tYMJh17y8/s400/1030017725_ce0c6f1b_ccmer.jpg" border="0" alt=""id="BLOGGER_PHOTO_ID_5082291076754390834" /&gt;&lt;/a&gt;&lt;br /&gt;저는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 아닙니다.&lt;br /&gt;개인적으로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편이고, 같은 업종(결코 칼럼리스트가 아닌 다른 쪽의 노가다입니다.)에 계신 다른 분들은 대부분 음악을 '켜놓고' 일을 하는 데 비해 오히려 저는 듣기 좋은 밸런스로 켜져 있는 음악도 끄는 쪽이죠. 더군다나 CCMer를 시작한 이후로는 대중음악까지 들을 여유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그냥 패스...&lt;br /&gt;&lt;br /&gt;라고 했다간, 다른 필진 분들이 가만두지 않으실 듯 싶어서, 몇년 전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한 (당시 기준으로) 대용량 MP3  플레이어에 꿋꿋이 남아 있는 곡들을 열거해볼께요.&lt;br /&gt;&lt;br /&gt;가장 최근에 플레이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스티비 원더입니다. 82년에 출시된 그의 베스트 앨범인 [Original Musiquarium I, Volume II] (2 Disc 입니다.)를 가장 많이 플레이 했더군요. 스티비 원더는 10년만에 신작이 나왔습니다. 아마 곧 구입을 하게 될텐데, 그렇게 되면 이쪽을 좀 더 듣게 될 것 같군요. 로린 힐도 꽤나 많이 들었군요. 처음 CD를 구입했을 때 부터 (아마 두번은 더 사지 않았나 싶은데) 여태껏 플레이어에서 떠나 본적이 없네요. 물론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을 많이 들어요. 나일론 기타 한개로 2시간이상의 라이브를 했던 [MTV unplugged 2.0]도 좋지만, 그건 영상을 봐야 이해가 좀 되더군요. 두가지 다 로린힐의 진지함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진지한 쪽의 음악으로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예전의 포크가 더 그렇구요. 최근에 선물받은 책 덕분에 한대수의 [고무신]과 [1997 후쿠오카 라이브]를 다시 들어봤는데, 음악의 기쁨보다는 노래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어요. 참고로 한대수씨의 음악은 박스셋이 얼마전 출시되었죠. 그의 후쿠오카 라이브를 백업하는 몇명의 다른 한국인 아티스트들 역시 이전부터 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열정적인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잭리의 동생으로 알려지기 보다는 한국의 독보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로 곧게 선 이우창, (나는 90년대 중반에 출시된 그의 음반에서 느껴진 오리지널티를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말이 필요 없는 이상은.&lt;br /&gt;저는 이상은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공무도하가] 이후의 앨범들은 특히 더 좋아하구요. 사실 근작인 [RomanTopia(2005)]보다는 10년전에 출시된 [공무도하가(1995)]가 더 좋더군요. 또, 정규앨범도 좋지만, 봉자라는 영화의 OST도 좋아요. 영화보다 말이죠. [공무도하가] 이후의 모든 앨범을 샀었습니다만, 한번에 다 잃어버리고 다시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별로 아깝지 않더라구요.&lt;br /&gt;그외에 제가 좋아하는 앨범은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양희은이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로만 만든 [양희은 1991], 비슷한 계열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영원한 Dame - Cleo Laine 와 저명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John WIlliams가 역시 나일론기타와 보컬 위주의 사운드로 익히 알려진 노래들을 다시 부른 달달한 앨범 [Best Friends(1976)]도 너무 좋아요. 영화 [디어 헌터]의 음악 "Cavatina"의 보컬 버전인 "He was Beautiful"로 많이 알려져 있죠. 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트랙은 bread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if"입니다. 예전에 한참 기타에 열을 올릴 때는 앞부분만 조금 카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말이죠.&lt;br /&gt;일본 음악도 몇개 있어요. 물론 아는 아티스트가 많지 않지만요. 그 중 제일 많이 손이 가는 건 시부야계의 피치카토파이브인 것 같습니다. [Made in USA]란 앨범의 "Sweet Soul Revue" 같은 곡이 좋아요. 일본의 (대중적인) R&amp;B 디바 Misia의 "into the light" 처럼 정신없는 브라스도 좋구요. "Black Brid" 같은 올드팝을 리메이크 하기도 했던 Bonnie Pink 가 부른 에니메이션 음악인 바람의 검심 5기 엔딩인 "it's gonna rain" 같은 곡도 좋구요. Bonnie Pink의 음악들은 전반적으로 다 좋아합니다만, 그녀 답지 않은 리믹스 앨범인 [rePink] 라는 앨범도 좋더군요.&lt;br /&gt;이외에도 좋아하는 대중 아티스트가 많습니다. 패닉, 이적, 김동률을 빼놓을 수 없구요. 90년대에 복각된 김민기의 앨범 중, 4번째 앨범. 아소토유니온과 그 배에서 나온 윈드시티도 좋구요. 다른쪽 갈래인 Funkafric Booster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lt;br /&gt;가장 최근의 한국 음반 구입은 닥터레게의 [The Second Coming]과 아직은 인디밴드인 [Vodka Rain]입니다. 닥터레게의 앨범 구입은 리뷰를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1집 부터의 관심이 사게 만들더군요. 가장 최근에 들었던 한국 앨범 중 제일 좋았던 건 '보컬 아티스트' 이소라의 [눈썹달]이구요. &lt;br /&gt;&lt;br /&gt;글머리엔 음악을 잘 안듣는다고 했다가 이렇게나 잡다한 취향의 목록을 줄줄 읊어대는 제 모습이 우습군요.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 아니란건 사실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언가 집중해서 일할 때,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 음악과 그 집중의 대상이 되는 음악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편입니다. 아무리 좋은 곡이라고 하더라도, 일할 때의 배경음악으로  Roy Buchannan의 "The messiah will come again"  같은 곡을 틀어놓을 수는 없잖아요. :)&lt;br /&gt;&lt;br /&gt;덧. 음악을 틀어놓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대신 잔잔한 에니메이션이나 영화를 틀어놓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은하의 물고기]나 [고래의 도약], [곰이 되고 싶어요] 같은 작품들 말이죠. 놀고 있는 컴퓨터에 플레이 시켜두면서 일을 하면서 틈틈히 작품을 바라보죠. 그럼 마치 움직이는 액자를 보는 기분도 들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합니다. 물론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해서 이미 여러번 진지하게 감상을 했었으니까 이렇게 힘빼고 옆에 두는 것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212&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6245287675246307765?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6245287675246307765/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6245287675246307765&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245287675246307765'/><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245287675246307765'/><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10/ccmer.html' title='CCMer가 듣는 대중음악 - 저는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 아닙니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szqMVPzI/AAAAAAAAAcA/Y1tYMJh17y8/s72-c/1030017725_ce0c6f1b_ccmer.jpg'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4065329416898522167</id><published>2005-09-23T09:43: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2+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CCM of My Life - 음치가 감동했던 그 노래들</title><content type='html'>이 코너가 저에게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어요. 한 곡의 노래, 하나의 앨범을 고르는 건 저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lt;br /&gt;그저 어느날 문득 제 주위를 둘러보니, 이전엔 모르던, 그리고 어쩌면 평생 모를 수도 있었던 노래들에 둘러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전 노래가 가진 힘에 대해 관심이 많으니,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거겠죠.&lt;br /&gt;&lt;br /&gt;제가 교회를 '매 주' 나가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 부터였지만, 누군가 나에게 교회에 왜 다니냐고 물었을 때, 나의 '당연한' 대답은 친구를 사귀기 위함이라는 것이었죠. (그렇다고 제가 사교적인 인물이었냐 하면, 전혀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낯을 가리기도 했고, 사교적이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쪽이었으니 친구가 많았을리 없죠.) 크지 않은 교회의 학생회에서 차근 차근 쌓여가는 경험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해, 그와 맺는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차츰 관심이 생기긴 했습니다만 결정적이진 못했어요. 게다가 음악이라뇨. 전 음치였습니다. 음악을 좋아할 리 없잖아요? 작은 교회였기 때문에 문학의 밤의 계절이 돌아오면 억지로라도 음치인 저에게도 성가대 까운을 입을 기회가 생기곤 했죠. 물론 당시의 저에게는 기회라기 보다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부담이었습니다만... 여하튼 그렇게라도 접하지 않으면 아마도 평생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일들이었죠.&lt;br /&gt;&lt;br /&gt;제가 찬송가 이외의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떤 연극에 들어간 노래 때문이었어요. 그것도 제 기억엔 온전한 대본은 아니었었고, 내용이 중학생들에겐 어렵다 싶어 대본 몇 번 읽다가 다른 걸로 바뀌긴 했었습니다만, 분명히 기억하는 건 '얼어붙은 저 하늘'로 시작되는 노래였어요. 악보도 없이 가사만 가지고 중등부 전도사님이 기타로 알려주었던 그 노래는 제가 그때까지 들어보고 불러봤던 노래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가진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금관의 예수'라는 김민기의 노래였죠. (나중에 좀 더 찾아보니 작사가 김지하로 되어 있던데, 사실은 김지하님의 희곡에 김민기씨가 곡을 붙이신 거라더군요. 제가 봤던 대본도 김지하님의 '금관의 예수'였어요) 여하튼 그 노래의 끝 머리가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였는데, 단조로 시작되었던 곡조가 부드럽게 장조로 넘어가면서 가사에 힘을 주는 그 느낌이 어린 저에게 상당히 신선한 감동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뭐, 이후로 김민기의 노래를 찾아 다니며 악보를 구했던 기억이 나요. 그 노래가 가진 무게를 알 수 있던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런 진지함이 어린 저에게는 굉장히 가치있게 보였었죠. 물론 이 노래가 CCM의 어떤 기준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따지자면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 당시의 저에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정서안에서도 '다른 노래', 기존과는 다른 태도로 다른 이야기 - 사실은 좀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동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는 - 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설레임을 느꼈던 것 같아요.&lt;br /&gt;&lt;br /&gt;매주 '가야 했던 교회'는 '가고 싶은 교회'로 바뀌었고, 기타를 어느 정도 치던 한두살 나이가 많은 형님들에게 악보를 들이밀고는 '이 노래 쳐보라, 저 노래 쳐보라'고 귀찮게 굴어대는 동생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스스로는 음악을 못하니까, 직접 노래를 불러본다거나 기타를 칠 수 있게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 즈음이었을 거에요. 주찬양의 노래들을 처음 접한 건. 그 때의 감동은 아마도 다른 분들의 경험과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굉장한 충격이었고, 어디에 또 이런 노래가 없나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작은 카세트 라디오는 항상 주찬양의 앨범과 극동방송에 고정되어 있었죠.&lt;br /&gt;&lt;br /&gt;중학교 3학년 때, 저는 제 인생에 있어서 굉장한 전환점을 만나게 됩니다. 매일같이 갔던 교회의 지하 학생부실이나 청년부실에 언제나 있던 통기타, 늘 곁에 있었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거라고 믿었던 통기타를 처음 제 손에 잡았었거든요. 아마도 10월이나 11월 쯤이었던것 같아요. 그 때도 문학의 밤 준비로 학생부실은 바빴으니까요. 처음엔 그냥 한 곡만 내 손으로 연주해보면 어떨까 싶었을 뿐입니다. 아마도 코드 두어개가 전부인 곡, 그런 곡 중에서도 제일 쉬운 곡으로 골라달라고 교회 형님을 졸라서는 코드를 익혔죠. 문제는 ...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는 겁니다. 결국 나중엔 코드 책을 따로 사고, 기타가 없는 곳에서 코드를 연습하려고 철재필통 뒤에 지판과 줄을 그려서 코드를 익혀갔고, 두 달후엔 주찬양 1집에 있는 곡들을 연주하고 있는 내 모습에 저도 놀라고 말았습니다.&lt;br /&gt;&lt;br /&gt;주찬양 뿐만이 아니었어요. 제가 사는 곳 가까이 있던 기독교서점을 들락거리며 새로운 노래들을 갈망하며 테잎과 LP를 사곤 했었죠. 그 당시 제가 구입했던 앨범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열거해 본다면... 주찬양의 모든 앨범들, 찬양하는사람들, 임마누엘 (3집은 LP로), 최인혁 1, 2 (이건 LP), 박종호 1, 2 (이것도 LP), 하덕규 숲 (LP로 선물 받음), 쉼 (LP로 사지 않을 수 없었음), 이은수 전혜영 찬양드림,  이성균 1 ~, 송정미 1 ~ , 좋은씨앗 1~ , 등이 조금은 메이저였던 것 같구요. 가스펠콘서트 시리즈라던가 HIS찬양 같은 조금은 마이너같은 느낌의 앨범도 있었습니다. 열두선교회에서 나온 앨범들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볼찌어다 같은 형제 듀오는 굉장히 좋아했었어요.&lt;br /&gt;&lt;br /&gt;그러다가 어느 순간, 여러가지 형태로 봤을 때 '변화'라고 생각되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9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아요. 하나의 앨범을 꼽는다면 97년 '드림 2집 - 세상에게' 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굉장히 개인적인 선택이에요. 만약 제가 통기타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때까지의 CCM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거구요. 그러나 이 앨범, 이 노래들은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에 대해 눈뜬 이후 두번째로 만나는 색다른 감동이었어요.&lt;br /&gt;물론 그 이전에도 음악 자체의 세련미라던가 가사의 미적 탁월함이 있었던 앨범은 있어 왔었죠. 명반으로 주저하지 않고 꼽을 수 있는 하덕규의 '숲','쉼' 앨범이라던가... 상황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신선했던 최인혁의 앨범들이 바로 그것이었죠. 그 외에도 '동시대성'에 눈 뜬 많은 노래들이 있었죠.&lt;br /&gt;드림의 세련미는 조금 남달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91년에 출시되었던 1집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도 했었습니다만, 한층 더 노련해지고 독특해진 음악과 좀 더 깊이있게 들어갔지만, 보편적인 소통을 위한 열어둔 아름다운 가사들은 저에게 '새로운 노래'들이 도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드림 2집에 대해서는 다른 매체나 제 웹사이트에 리뷰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드림 2집은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CCM 아티스트에겐 교과서같은 앨범인 것 같아요.&lt;br /&gt;&lt;br /&gt;두서없이 늘어놓았습니다만, 지금 저에게 인생의 한곡을 꼽으라고 하신다면 조금 난감하긴 해요. 물론 위에 적어놓았듯이 '결정적인 한방'들은 있었습니다만, 그 노래들을 그 때의 마음으로 똑같이 좋아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사실 자신이 없거든요.&lt;br /&gt;그 때는 CCM을 좋아는 했어도 그것이 제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한 곡 한 곡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구요. CCM이 거부할 수 없는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금은... 그저 감동만 하고 싶은데, 그러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lt;br /&gt;&lt;br /&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194&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406532941689852216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406532941689852216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406532941689852216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06532941689852216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06532941689852216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9/ccm-of-my-life.html' title='CCM of My Life - 음치가 감동했던 그 노래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7716286117310941465</id><published>2005-09-22T16:40: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1.556+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interview'/><title type='text'>예배의 기쁨에 빠져지내고 있습니다. - GOD CARES 공연과 2집 준비 중인 믿음의유산 리더 정성복</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yGaMVP1I/AAAAAAAAAcQ/0O5tbf3W4sg/s1600-h/743692172_2cb9e7d1_myronjung.JPG"&gt;&lt;img style="float:left; margin:0 10px 10px 0;cursor:pointer; cursor:hand;" src="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yGaMVP1I/AAAAAAAAAcQ/0O5tbf3W4sg/s320/743692172_2cb9e7d1_myronjung.JPG" border="0" alt=""id="BLOGGER_PHOTO_ID_5082296896435076946" /&gt;&lt;/a&gt;&lt;br /&gt;&lt;br /&gt;2003년 9월 첫번째 앨범으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믿음의 유산,&lt;br /&gt;그때까지의 한국 CCM에 굉장한 활력을 불어넣어주었으며,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여러가지 활동과 일반 대중음악 뮤지션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한국 CCM이 가야할 길, 크로스오버에 대한 좀더 새롭고 적극적인 방향과 시각을 보여주었습니다.&lt;br /&gt;1집이 출시된지 벌써 만 2년이나 되었고, 앨범의 출시가 자주 없다면 활동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는 한국 CCM계에서 그런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활발한 활동과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유산.&lt;br /&gt;그들이 있는 지금의 자리가 궁금하기도 하고, 곧 출시될 2집에 대한 소식도 들을 겸, 믿음의 유산 리더인 정성복씨를 만나보았습니다.&lt;br /&gt;&lt;br /&gt;CCMer_ 개인적으론 오랜동안 무대위의 믿음의 유산을 만날 수 없었는데, 근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었으면 합니다.&lt;br /&gt;정성복 (이하 HF)_ 여러가지 계약문제와 멤버교체문제, 2집 준비등으로 어수선하게 보냈죠. 데모작업에 많이 집중을 해왔었구요.&lt;br /&gt;현재는 10월23일 공연과 2집 앨범 작업, 그리고 2집이 나올 줄 알고 미리 잡아놓았던 공연 스케쥴을 소화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CCMer_ 앨범을 낸지 2년이 되었고, 많은 활동과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셨을 텐데, 앨범 이전, 혹은 활동 초반에 비해 입장이나 태도가 바뀐 부분이 있나요?&lt;br /&gt;HF_ 아무것도 모르고 열정하나로만 뛰어들었었죠. 필드를 경험하게 되고, 저희 팀의 특성상 대중음악, 재즈와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 CCM, 예배음악 의 경계를 많이 넘나들게 되었는데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전해야할지, 어떻게 노래해야할지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중이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절대 명제에는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저희 안에 충전이 필요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에 대해 하나님의 관점으로 말씀을 가사로 담는 일에 더욱 많은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도 알게되었구요.. 음악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더 멋진 비트, 더 좋은 톤을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구요. 다만, 요즘은 하나님을 높이는 기쁨이 쏠쏠해서 멤버들 모두 예배의 기쁨에 빠져지냅니다. (웃음)&lt;br /&gt;&lt;br /&gt;CCMer_ 멤버도 조금 바뀌신것 같던데, 어떤 정리가 있었는지.&lt;br /&gt;HF_ 1집 멤버중에 끝까지 같이 가기로했던 5명의 친구들(효식,철규,희영,신희,경선)과 군제대 후 다시 합류하게 된 임효찬군과 올 4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믿음의 유산 Choir School 출신 중에 성량이 풍부한 권희진 양을 수습멤버로 올려서 7명이 활동하고 있죠. 1집 활동시 함께했던 김신군은 현재 K항공 파일럿으로 미국에서 연수받고 있는 중이구요, 워너비를 불렀던 강태우군은 다른 기획사에서 임대로 함께 했던 친구여서, 개인활동을 준비중이죠. 나머지 다른 멤버들은 여러 상황 때문에 팀을 떠나게 되었죠. 워낙 목에 부담이 많이 가는 음악이라 활동하면서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떠난 친구들도 있었죠.&lt;br /&gt;&lt;br /&gt;CCMer_ 밴드의 라인업도 앨범과는 변화가 있는거죠?&lt;br /&gt;HF_ 밴드도 작년 9월 호주투어부터 변화가 있습니다. 밴드 마스터이자 저희 프로듀서인 베이시스트 강상태군과 저희 메인 건반인 정유정양은 그대로 팀의 중심으로 있구요, 드럼에는 박정현, 임재범, 지오디 등의 투어 세션을 맡았던 하형주군이 들어오게 되었구요, 세컨 건반에는 조규찬, 테이, 지오디 투어 및 앨범 세션을 맡았던 이화양이, 기타는 임재범, 팀, 김종국 등의 라이브 세션을 맡았던 박주원군이 함께 호흡을 맞쳐오고 있습니다. 모두 20대 중반의 젊은 뮤지션들로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죠.&lt;br /&gt;&lt;br /&gt;CCMer_ 일반 대중음악 뮤지션들과 많은 소통이 있었죠? 간단하게 나마 소개해 주시겠어요?&lt;br /&gt;HF_ 그렇게 많은 소통이 있었던 것은 아니구요 (웃음) 박효신 4집 "몰랐죠"라는 곡에 Choir 편곡 및 피쳐링으로 참여하구요, 조PD 5집의 "church 2 da street"에 writing 및 Choir 피쳐링 했었구요, 10여 차례 같이 라이브 무대를 가졌죠. 박화요비의 크리스마스 공연과 앨범 발매 공연에 코러스 및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구요, 작년 크리스마스 기념 앨범에 2곡 Choir 편곡과 피쳐링으로 참여했죠. 이땐 김범수, 이수영, 박효신, 브라운아이드소울 등의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녹음을 했죠. 그리고 Ann과는 1집 녹음과 2번의 라이브를 함께 했었구요, 아소토 유니온의 오르가니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임지훈씨와는 여러 번의 공연과 2집 작업을 함께 하고 있죠. 그리고 2집 작업때 또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할 것 같아요.&lt;br /&gt;&lt;br /&gt;CCMer_ 그동안 사역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셨을 텐데 최근에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lt;br /&gt;HF_ 몇 주전인 camp walker에서의 공연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언제나 흑인들 앞에서 공연을 가질때면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을 가지게 되는데, 특히 camp walker는 6차례 정도 저희가 공연을 가져왔던터라 그 누구보다도 저희 레파토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100% 새로운 곡들로 16곡 정도를 준비해 갔었죠. 밴드도 매일같이 밤새고, 보컬들도 정말 목이 터질만큼 연습하구요.. 이전까지는 저희가 메세지를 전하고, 테크닉적으로 완성된 음악을 들려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서 공연을 준비해왔었죠. 음악에.. 음압감에.. 보컬의 테크닉에.. 하모니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나누었지만.. camp walker 에서 신앙의 공동체를 키워가시던 그분들에게는 (음악적인 부분에 촛점을 두는) 저희에게 아쉬움을 많이 가지셨었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엔 저희가 다르게 준비했었죠. 기도로 준비하고, 이 공연 가운데서 온전히 저희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나. 그분의 임재를 노래하는 것에 그분의 보혈의 기쁨을 감사함으로..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죠. 저희가 무엇가 하나님의 메세지를 대언하려는 생각보단 무(!)조건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그분의 임재가 있는 예배에 초점을 맞추어서 초반부에는 노래했죠. 첫곡인 We've Come To Praise Him이라는 곡으로 우리 찬양하러 여기 왔다고 다함께 선포하며 노래하는 순간 말로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함께 간 Choir 멤버와 밴드, 보컬, 흑인교회분들, 스탭들 모두 기쁨으로 찬양했죠. 그 다음은 모든게 너무 쉬워지더라구요. Center Of My Joy를 부를때 흑인들이 하염없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을 저희도 함께 흘리고, 깊은 찬양으로 몰입되면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되었었구요. 특히 교회내 작은 분쟁으로 교회가 재작년에 분리가 되었던 그곳에서 blood song을 불렀더니 모두 가사에 공감하며... 가사 내용이 흑인과 백인, 피부색은 다르지만 피는 붉기 때문에 그 붉은 피로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셨기때문에 그 피가 붉을 동안 우리는 모두 주의 자녀로 희게 되었다는... 매일 다른 곳에서 나누어져 예배드리지만 아버지께서는 아파하신다며... 우리 죄를 씼는 것은 예수의 피밖에 없다는 메세지가 그들과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죠. 진정 예배의 기쁨, 회복,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뜨거운 시간이었었구요. 저희 생각을 바꾸게 하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일을 시키시는 것이고 우리는 도구이기때문에 하나님께 때론 불평도 하곤 했었는데.. 하나님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시더라구요. 그분을 높일 때 한량없는 기쁨과 평안을 선물해 주시더라구요. 저흰 그 기쁨때문에라도 더 노래해야 할 것 같아요. 좋아서... (웃음)&lt;br /&gt;&lt;br /&gt;CCMer_ 2집을 준비 중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간의 진행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lt;br /&gt;HF_ 2집을 저희손으로 다 만들기 위해서 몇달밤을 지새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엎고.. 그러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구요. 쉽지 않은 작업을 하면서... 그래도 이젠 데모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구요, 본 녹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1-2개월 안에 마무리 될 것 같구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블랙가스펠 본연의 찬양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메세지를 함께 담은 앨범으로 준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음악적 스타일도 정통 블랙가스펠에 힙합비트나 올드스쿨 샘플같은 것들을 섞은 음악들을 담고 있구요, 다소 편안한 스타일의 곡들도 담을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으로 돌아가신 Nelson Williams 목사님의 "By Faith"라는 곡을 믿음의 유산을 위해 써주셨는데 저희에겐 그 곡이 힘이 많이 되죠. 우리가 믿음으로 (by faith) 이곳까지 달려왔으며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나가겠다는 목사님의, 저희를 향한 메세지가 담긴 곡이죠. 이번 camp walker 공연에서 초연을 했는데 호응이 뜨겁더군요. 1집과 마찬가지로 좋은 뮤지션, 좋은 스탭들과 최선의 것으로 2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yP6MVP2I/AAAAAAAAAcY/OeB2nyUKRlY/s1600-h/743692172_b5118ff6_hf.jpg"&gt;&lt;img style="float:right; margin:0 0 10px 10px;cursor:pointer; cursor:hand;"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yP6MVP2I/AAAAAAAAAcY/OeB2nyUKRlY/s400/743692172_b5118ff6_hf.jpg" border="0" alt=""id="BLOGGER_PHOTO_ID_5082297059643834210" /&gt;&lt;/a&gt;&lt;br /&gt;CCMer_ 콰이어가 있다고 하시던데 어떤 분들인지 소개해 주시겠어요?&lt;br /&gt;HF_ 블랙 가스펠이 솔로나 연주자들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 높여서 함께 찬양할 때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노래가 형성되어지기에 7명의 멤버로 표현할 수 없는 떼창(^^)의 느낌을 살려 함께 찬양하고 싶어서 예전부터 준비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가, 이번에 양재동으로 스튜디오를 옮기면서 4월부터 1기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1명의 멤버가 있구요, 이분들은 각기 학생,직장인,공익근무요원 등 다양한 분들이지만 찬양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주 뜨거운 분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올 상반기에 믿음의 유산이 여러 모습으로 많이 힘들었을때도 이분들의 기도와 격려로 다시 일어서곤 했어요. 소중한 믿음의 유산 식구분들이죠. 이분들과는 발성부터 시작해서 개인녹음, 파트별 녹음, 밴드 합주, 흑인교회 공연 등 여러 형태로 함께 찬양하는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구요, 이번 2집에서 2곡 참여할 예정이구요, 이미 2번의 라이브 무대를 같이 경험했구요, 섣부른 얘기일 수 있는데 2집 발매 후에 2.5집 형태로 준비할 "Sunday Morning Service"라는 제목의 블랙가스펠 예배 음반에는 거의 주체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올 11월 다시 뽑게될 Choir 2기와 함께 준비할 예정이죠. 그리고 10월23일 God Cares 공연 같은 큰 공연에도 함께 설 예정입니다.&lt;br /&gt;&lt;br /&gt;CCMer_ 준비하고 있는 콘서트는 2집에 관한 것인가요?&lt;br /&gt;HF_ 2집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는 아니구요, 저희 믿음의 유산이 그동안 저희의 살길을 찾아 바쁘게 헤메는 동안 돌아봐야할 것에 대해 너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는 것을 최근에 느끼게 되었어요. 최근에 멤버중 한명의 어머니께서 생사를 넘나드는 병에 걸리셨죠. 여러가지로 돈도 많이 들고, 돈으로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을 핑계로 외면해온 많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죠. 병마와 싸우는 많은 분들을 위해 그분들에게 힘이 되는 의미의 공연을 가지고, 공연 수익금으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이런 작업들이 계속되면서 한분이라도 더 함께 그 분들의 짐을 나눠지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면 그분들이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고, 뜻이 모여서 점점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동참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것을 돌봐주신다는 메세지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 God Cares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lt;br /&gt;이번 공연은 이런 God Cares 프로젝트의 첫번째 공연이고 10월23일 주일 저녁7시 건대입구역 나루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입니다. 조PD, 한상원밴드, 색소포니스트인 손성재씨와 아소토유니온의 오르가니스트 임지훈씨와 베이시스트 김문희씨가 주축이 된 Funkafric Booster도 참여하구요, 그 외에도 유명 뮤지션들이 참여의사를 밝혀오고 있습니다. 즐겁고 신나는 공연이 될 것 같구요, 수익금 전액이 난치병 환우를 위해 쓰이구요, 헌혈증을 기증해주시는 분들에겐 작은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좋은 공연에 멋진 관객분들이 많이 오셔서 God Cares 프로젝트의 시작을 멋지게 가졌으면 합니다.&lt;br /&gt;&lt;br /&gt;CCMer_ 이번 콘서트에는 참여하는 아티스트가 어떤 조건으로 참여하나요?&lt;br /&gt;HF_ 이번 공연은 모든 아티스트 및 전 스태프(음향,조명,디자인 등)가 다 노개런티로 참여하게 됩니다. 아티스트는 음악으로, 스태프는 장비와 자신의 기술들로 모두 뜻을 함께 하는 거죠. 인간이 준비하는 공연이지만 함께 마음을 모아 공연을 하게 되어 많은 관객이 참여하게 된다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지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God Cares All About You 라는 메세지와 함께..&lt;br /&gt;&lt;br /&gt;CCMer_ 믿음의 유산이 나아갈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궁금합니다.&lt;br /&gt;HF_ 저희 생각과 계획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것 같아요. 저희가 하나님 말씀에 귀귀울이지 못한 것일 수 있구요... 저희는 찬양하는 것이 너무 좋더라구요, 그냥 노래하는 것과는 다른 그 한량없는 그 기쁨... 이렇게 계속 찬양하게 하시면 찬양할 것이구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노래해야 하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길 원하시면 그 길에서 노래해야죠. 지난 여름, 국내 유명 재즈레스토랑에서 믿음의 유산이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지기를 원하더라구요. 그 곳에서의 페이 시스템으론 저희에게 계속 손해가 날 수 밖에 없는 공연이지만, 술 먹고 담배연기가 자욱한 그 자리에서 "주의 은혜로"를 경청하고 "My My My God Is Good"을 함께 외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곳이 저희가 품어야할 곳인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열어주시는대로.. 가려고 합니다. 대중가요든 블랙가스펠 워쉽이든 재즈 공연장이든 어디든...&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7716286117310941465?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7716286117310941465/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7716286117310941465&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7716286117310941465'/><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7716286117310941465'/><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9/god-cares-2.html' title='예배의 기쁨에 빠져지내고 있습니다. - GOD CARES 공연과 2집 준비 중인 믿음의유산 리더 정성복'/><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yGaMVP1I/AAAAAAAAAcQ/0O5tbf3W4sg/s72-c/743692172_2cb9e7d1_myronjung.JPG'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8625462959144775148</id><published>2005-08-26T09:24: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2+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그녀의 Turning Point, 아니 우리의 Turning Point [Turning Point] - 송영주</title><content type='html'>송영주의 'Turning Point'는 재즈 앨범입니다.&lt;br /&gt;그녀는 재즈에 있어 불모지라 해야 할 이 나라에서 얼마 안되는 인정받는 재즈 뮤지션입니다.&lt;br /&gt;그녀의 앨범을 두고 재즈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음악적인 것을 비평하거나 그에 관해 무언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실상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 앨범의 리뷰를 하겠다 해놓고, 스스로 얼마나 두려운 짐을 진건지 깨닫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구요. 비겁한 변명일런지 모르지만, 나는 이 앨범에 대해 음악적인 어떠한 평가도 내릴 수 없습니다. 네, 좋은 앨범이거든요. 하여, 내가 이 앨범에 대해 조금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 물론 이것 역시 크게 자신 있는 것은 아니지만 - 태도 에 관한 생각을 짧게 풀어볼까 합니다.&lt;br /&gt;&lt;br /&gt;&lt;b&gt;2005년, 가장 궁금한 송영주의 마음속 &lt;/b&gt;&lt;br /&gt;&lt;br /&gt;사실, 그녀의 태도에 관한 것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송영주씨를 잘 알지 못하거든요.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대해 겉핧기 식으로 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즉, 제가, 혹은 대중이 알던 송영주, 그리고 새롭게 다시 만난 송영주를 통해 그녀의 마음속의 변화에 대해 유추해 볼 뿐입니다.&lt;br /&gt;&lt;br /&gt;밖에서 볼 때, 그녀는 얌전한 반주자였습니다. 물론 탁월한 실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반주자였습니다. 그녀는 그냥 송영주가 아니었고, '주찬양'의 송영주 였으며, '푸른 초장'의 송영주였습니다. 탁월함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렇게 비추어졌던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가진 소박함과 겸허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lt;br /&gt;&lt;br /&gt;지금의 그녀는 더이상 얌전한 반주자로만은 보이질 않아요. 그녀의 무게감이 상승한 이유도 있을 테고, 그 작업 영역이 CCM에서 대중음악 - 그것도 조금은 하이 클래스의 - 으로 넓어진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수련의 기간 동안 걸어온 녹녹치 않은 정도(正道)의 길과 음악을 도와왔던 입장에서 주도하는 입장으로 바뀐 그녀의 입장은 그녀에게서 느껴져 왔던 '탁월함'이 프로듀서나 작곡자에 의해 조율된 것이 아닌 그녀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합니다.&lt;br /&gt;&lt;br /&gt;그렇다면 그녀의 태도도 변화했을까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조금 더 알려지고 알아주면 조금 더 느끼해지는 거. 다행스럽게도,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저의 시각으로는 그런 느끼함을 그녀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유명세 - 사실 그것은 음악을 '한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유명세이긴 합니다만 - 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그녀는 겸허하며 소탈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에게 감동할 줄 알고, 자신이 걷는 길이 온전히 그의 섭리 안에서 주어지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잠깐의 만남과 그녀를 깊이 아는 다른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추린 정도에서 정리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은 제 주관적인 시각이고, 견해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겠어요. 그러나 그녀의 태도나 자세에 대해서는 왜인지 모를 신뢰하는 마음이 듭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gt;송영주의 'Turning Point'&lt;/b&gt;&lt;br /&gt;&lt;br /&gt;한국의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개인 앨범은 참 독특한 것 같아요. 너무 일반화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곽윤찬의 앨범에서도 그랬던 거 같은데, 스탠다드 넘버(기존에 있던 잘 알려진 곡)와 오리지널(자작곡)의 비율 중 오리지널의 비중이 조금 더 많은 경우가 자주 보이거든요. 제 짧은 지식 안에서 대부분의 재즈 피아니스트의 앨범은 스탠다드 넘버가 조금 더 많았던 것 같구요. 클래식이 그러하듯, 대가의 작업물들이 그 수준이나 양에 있어서 높고 많을 때, 오리지널 보다는 스탠다드를 그대로 담거나 재해석을 해서 담아내는 것이 좀 더 안전하고 쉬울 수 있습니다.&lt;br /&gt;물론 이것은 한국의 재즈 음반 시장이 굉장히 작기 때문이기도 해요. 시장이 작아서 생기는 자유로움이랄까...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앨범을 지향한다고 해도 음반의 판매량 등에 아주 크게는 구속받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lt;br /&gt;&lt;br /&gt;앨범이나 음악에 대한 부분은 글머리에서도 피한다고 했던 부분이긴 한데... 재즈의 문외한인 제가 들어도 좋은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들이 있어서 조금 적어봅니다.&lt;br /&gt;모두 10곡으로 채워진 그녀의 'Turning Point'에서 그녀의 오리지널은 7곡에 달합니다. 나머지 세곡 역시 새로운 해석으로 가득하구요. 그 중에서 저같은 일반 대중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곡은 한 곡 - 시네마 천국을 아시죠? -  뿐입니다.&lt;br /&gt;그녀의 앨범은 전체적으로 스탠더드의 느낌이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전형을 만들어냈던 사람들의 감성들과 어느 정도는 일치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타이틀이나 재킷없이 트랙만 들었다면 과연 한국 사람이 연주한 것을 알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 이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전형을 가감없이 그대로 배껴낸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이질감이 전혀 없이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lt;br /&gt;앨범 전체에서 어둡거나 무겁지 않게 드러나는 드럼과 베이스의 '여유'와 피아노의 적절한 '조화'는 애써 장르를 흉내낸다거나 어설픈 감성을 연주로 포장하려는 몇몇 '재즈 뮤지션'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대가의 앨범에서 흔히 느껴지는 자유로운 정서가 베어나와서 참 반가웠어요.&lt;br /&gt;언젠가의 인터뷰에서 '감동'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앨범을 통해 그녀가 전하려는 감동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했는데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음악의 스코어에서 만나게 되는 감정적 과잉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모양새는 전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역시 영화 속의 재즈에서 만나는 조금 느끼한... 감정을 한없이 잡아 끌어내리는 정서도 아닌 것 같구요.&lt;br /&gt;오히려 그녀의 성격이나 걸어왔던 길과 일맥상통하는 감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근 차근 밟아가며 일상적인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절제하지만 그안에 베어있는 맛을 조금씩 곰씹다보면 나도 모르게 화선지에 먹물이 번져가듯 번져오는 감동이랄까요.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를 표현한 Prayer in the Day's End 라는 곡을 듣다 보면 그런 감동이 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씩, 노트 한개 한개씩에 그런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거든요.&lt;br /&gt;아... 트랙 이야기를 하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lt;b&gt;조금 벗어난 이야기들.&lt;/b&gt;&lt;br /&gt;&lt;br /&gt;내가 만난 몇몇 CCM 아티스트 중에는 크로스 오버, 그것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대중음악을 '향해' 시도하는 크로스오버에 관해 오해하는 사람이 많았던것 같아요.&lt;br /&gt;조금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어떤 이들은 대중음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에 비해 부족한 실력이나 외적인 요소들로 인해 CCM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고, 끝없이 대중음악계를 동경하며 자신이 하는 작업에 '사역의 가치'를 일부러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 순수성 같은 건 바라지도 않지만, 기초적인 자연스러움마저도 잃는 경우도 허다했죠. 심지어 어떤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1년을 못 버티고 실패해서 문을 닫자 마자, 그 장소만 빌려서 마치 자신이 그곳에서 초청받은 대단한 뮤지션인양 포장하는 경우도 있었어요.&lt;br /&gt;그것을 보아왔던 제 짧은 시각으로 정리 아닌 정리를 해본다면, 일부러 의식하고 시작한 크로스오버가 (의미적인 영역에 있어서)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듯 싶어요. 특히 양쪽에 대해 올바른 정서적인 이해 없는 작업은 특히나 더욱 더 그러한 듯 싶습니다.&lt;br /&gt;&lt;br /&gt;송영주의 작업을 '크로스오버'로 분리해내는 것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세계관'과  '그것과는 다른 가치'들에 대해 크게 부딪히게 놔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정서적으로는 전혀 이질감이 없이 말이죠. 이게 당연한 거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만 공유될 수 있는 정서'로 크로스오버를 일부러 하는게 이상한거죠.&lt;br /&gt;&lt;br /&gt;&lt;b&gt;다시 Turning Point&lt;/b&gt;&lt;br /&gt;&lt;br /&gt;그렇다면 송영주의 'Turning Point'는 송영주에게 있어서 'Turning Point'가 되어 줄까요?&lt;br /&gt;저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위에도 언급했듯 주찬양의 송영주, 푸른 초장의 송영주, 아니 CCM의 송영주에서 '송영주'가 될 수 있거든요. 계속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이 앨범 이전에는 그런 식으로 묶여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를 보는 타인의 시각들이 자유롭지 않았던 거죠. 우선 저부터 그래왔으니까요.&lt;br /&gt;네, 맞아요. 그녀의 앨범 'Turning Point'는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전환시켜주는 좋은 전환점입니다. 그녀의 소탈하고 겸허한 모습이나 자세는 거기 그대로 있는 거구요.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나,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열정도 그대로 거기 있는 겁니다.&lt;br /&gt;&lt;br /&gt;이젠, 기대할 일만 남았겠죠? 그녀와 그녀 안의 하나님이 하게 될 멋진 일들을.&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8625462959144775148?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8625462959144775148/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8625462959144775148&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62546295914477514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62546295914477514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8/turning-point-turning-point-turning.html' title='그녀의 Turning Point, 아니 우리의 Turning Point [Turning Point] - 송영주'/><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3866553189397379088</id><published>2005-07-18T02:58: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3+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리메이크는 중독(重毒)이다.</title><content type='html'>- 아마도 열심히 앨범을 만들고 있을 어떤 분들에게 딴지 걸기.&lt;br /&gt;&lt;br /&gt;아, 현기증 납니다. 제가 들었던 이 노래들은 대체 뭐죠? 방금 산 새로 나온 CD인데... 혹시 이거 제가 예전에 샀던 건가요?&lt;br /&gt;자신의 기존 히트송을 새로운 정규앨범에 한 번더 (그것도 별 부끄러움이나 변화 없이) 집어 넣기도 하고, 혹은 별다른 해석이나 재창조 없이 다른 사람의 '히트한' (혹은 히트하지 않았으나 후킹이 분명한) 노래들을 앨범에 집어넣고, 심지어는!! 다른 나라의 탁월한 MR을 그대로 가져다가 노래만 (그 역시 오리지널만 못한 수위의 노래로 ) 새로 부른 이 앨범들은 뭔가요.&lt;br /&gt;혹시, 개그 아닙니까? 아니라구요? 그렇다면 심각하군요. 앨범을 만들고 있는 당신은 지금 중독(重毒)에 중독(中毒)되었습니다. 그 앨범이 컴필레이션이 아니라면 과연 컴필레이션 음반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구요, 그 앨범이 컴필레이션이라면, 아직도 못끊으신건가요? 아니면 끊을 생각도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이런 식이라면 리메이크는 음반을 만드는 당신에겐 헤어나기 어려운 무거운 독인건지도 몰라요.&lt;br /&gt;대중음악 - 국내건 해외건 - 에서 만날 수 있는 REMix 앨범은 그나마 듣는 재미라도 있는데 이런 작업은 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 의도가 궁금합니다. 물론 리믹스이건 베스트이건 아티스트의 갈길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다시 만든 것이 새로운 형태의 반가움을 전해준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물론 새로울 때 말입니다.&lt;br /&gt;&lt;br /&gt;&lt;b&gt;Oldies But Goodies라구요?&lt;/b&gt;&lt;br /&gt;물론 좋은 Oldies가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저역시 80년대부터 한국의 가스펠에 푹빠져서 수도 없이 TAPE를 사댄 장본인이니까요. 제가 산것 중 어떤 앨범은 11번이나 샀어요. 한가지 TAPE를 11번이나 말이죠. 악보요? 물론 샀어요. 3번 씩이나. CD로 넘어와서는 그렇게 까지 사대진 못했습니다만 정말 탁월하다고 인정할만한 앨범들이면 한번씩은 더 사서 다른 이에게 선물했죠. 네, 맞아요. 좋은 Oldies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Oldies 들은 그냥 그 자리에다가 놔두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정서는 새로 포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마치 그건 오래된 포도주와 같아요. 낡은 가죽 부대의 유연함과 함께 어울리는 깊은 맛같은 거죠. 그런 맛이 생기기도 전에 포장만 새로 해서 황급히 출시하는 것은 이유를 모르겠어요. 특히 그런 좋은 맛이 자기 것도 아닌데 자기 것인양 으스대는 모습은 보기도 별로 좋지 않아요.&lt;br /&gt;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한가지 키워드가 있는 데, 그것은 '상인의 눈과 마음'입니다. 상인의 눈으로 판단하고 그 마음으로 움직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거라고 봐요. 좋은게 좋을 뿐인 사업가들에겐 리메이크는 분명 효자겠죠. 이미 검증된 노래를 좀 더 다듬고 포장 새로 해서 만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lt;br /&gt;부탁하건데, 하나님을 걸고 그러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상인의 눈과 마음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 뒤에 숨기는 게 나쁘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해요. 크리스천이라면 말이죠. 민감해야 하구요. 좋은게 다 좋은 건 아니니까요.&lt;br /&gt;&lt;br /&gt;&lt;b&gt;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냐구요?&lt;/b&gt;&lt;br /&gt;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리메이크된 트랙을 들을 때 별다른 위화감 없이, 아니 사실은 새로운 감동을 느꼈던 적도 있는데요. 그런 케이스들을 좀 적어볼까요?&lt;br /&gt;제가 아는 상식 안에서 좋은 리메이크란 이미 알려진 노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lt;br /&gt;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는데 좋은 아티스트의 작품들은 거의 예외없이 그런 생명력을 가진 것 같아요. 창조적인 생명력 쯤으로 이야기 하면 조금 과장일까요? 그러나 그렇게 말해도 아깝지 않을 만한 리메이크 작품들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lt;br /&gt;특히 노래 자체의 감추어진 탁월함을 드러내려 애쓰는 리메이크를 만나면 기존의 곡에 대한 깊은 존경을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들죠.&lt;br /&gt;아, 또 한가지 생각나는 건데요. 어떤 스타일이나 장르를 바꿔 해석하는 정도로는 좋은 리메이크가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산업의 측면에서 안전벨트 같은 것 쯤으로 리메이크를 생각하고 예전의 그 노래를 요즘의 스타일로 다시 부르는 정도로만 트랙을 제작한다면 이미 시작부터 의도가 빗나가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건 단순한 모방이지 리메이크라고 할 수 없어요.&lt;br /&gt;좋은 리메이크는 좋은 아티스트의 재해석을 통해 그 탁월함을 다시 발견하게 해주는 것일 겁니다. 아마도 재해석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lt;br /&gt;&lt;br /&gt;&lt;b&gt;이런 딴지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구요&lt;/b&gt;&lt;br /&gt;이봐요. 나는 앨범을 아직도 사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CD로요. 대체 내가 앨범을 살 때 들인 돈을 아까와하지 않고 '새로운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인건가요?&lt;br /&gt;&lt;br /&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121&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3866553189397379088?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3866553189397379088/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3866553189397379088&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866553189397379088'/><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866553189397379088'/><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7/blog-post.html' title='리메이크는 중독(重毒)이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2710767936084857402</id><published>2005-06-24T05:10: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3+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CCM 아티스트가 예배를 말할 때</title><content type='html'>&lt;span class="ct lh"&gt;크리스천 뮤지션이자 엄청나게 유명한 아티스트인 그가 등장하자, 수많은 군중들은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의 수많은 히트 레퍼토리 중 예배와 관련이 있을 만한 몇개의 수직적인 노래들과 최근 유행하는 몇개의 예배곡들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편곡되어서 울려퍼졌고, 군중은 그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구요. 준비된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나는 옆에 서있던 친구에게 물었습니다.&lt;br /&gt;"예배는... 언제 시작해?"&lt;br /&gt;&lt;br /&gt;물론 위의 상황은 가상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몇몇 아티스트들의 앨범 중에서 "예배"라던가 "워십"이란 타이틀이 붙은 앨범을 만나게 되면 저로서는 위와 같은 가상의 상황에서나 있을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되곤 하죠.&lt;br /&gt;개인적인 눈으로 보기엔 무언가 균형이 무너져 있는데,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도, 그것을 따라부르거나 방관하는 사람도 어찌 할 수 없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 무너진 균형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lt;br /&gt;예배인지 공연인지 조차 불분명한 이런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회중으로서의 제가 가지게 되는 고민들에 대해, 그리고 그런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은 좀 고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글을 열어볼까 합니다.&lt;br /&gt;&lt;br /&gt;무엇이 문제일까?&lt;br /&gt;&lt;br /&gt;최근, CCM 아티스트가 '예배'라는 타이틀이 담긴 앨범을 내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 앨범을 만날 때 떠오르는 미안한 선입견 하나는 '이 사람도 워십 붐에 편승하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입니다.&lt;br /&gt;&lt;br /&gt;혹시, 예배의 붐이라는 이 말에 대해 반감을 가지실런지 모르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비록, 미국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합법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음악을 구매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인 애플의 온라인뮤직스토어에서 북미와 유럽 쪽에서 잘 알려진 PASSION05의 트랙이 잠시나마 TOP10 (가스펠만 따로 분류한 적이 없는 차트이죠.) 안에 들어간 적이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PASSION은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예배 사역 그 자체이죠.&lt;br /&gt;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예배에 대한 관심의 집중으로 예배 사역 단체들이 점점 더 그 사역들을 넓혀갈 수 있게 되었고, 산업적으로 많이 어려워진 크리스천 마켓에서도 그나마 예배 관련 매체들 - 악보, 음반, DVD, 악기 등등 - 은 '팔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두운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쏟아져 나오는 앨범들 중 어떤 앨범들은 예배와 관련이 별로 없더라도 예배라는 제목을 달거나, 예배곡을 수록곡으로 담아서 출시하고 있는 경우도 있죠.&lt;br /&gt;&lt;br /&gt;CCM 아티스트가 예배인도자가 되는 순간.&lt;br /&gt;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이 맞춤에 대해, 제가 느끼는 이질감은 위와 같은 상황을 통해 만나는 부조화와 불균형에서 출발합니다. &lt;br /&gt;&lt;br /&gt;물론, CCM 아티스트이건 예배인도자이건 기본적인 정체성은 한가지죠.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한 명의 크리스천 일 것이고 그의 예술적인 재능대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사람일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의 담넘기' 자체가 옳지 않은 것은 아닐 겁니다. CCM 아티스트이건 예배인도자이건 하나님과 교제하고 반응할 때, 그들은 당연하게도 예배자이니까요.&lt;br /&gt;그러나, 같은 정체성 내에서 라도 사역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것을 표현하고 풀어내는 방법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그 사역의 영역을 넘어 선다면, 정체성의 본질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lt;br /&gt;&lt;br /&gt;또한 그러한 영역의 담넘기가 그저 단발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특히나 CCM 아티스트에서 예배인도자로의 전환이 앨범이나 행사를 위한 일회적인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일회용 이벤트일 수 있죠. 아쉽게도 CCM 아티스트가 만든 '예배' 컨셉의 앨범들은 말 그대로 컨셉으로의 '예배'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lt;br /&gt;이런 말 하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앨범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산업적인 욕구'를 함의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티스트로서, 혹은 크리스천으로서 그가 아무리 순전한 사람일찌라도, 또 훌륭한 예배자이더라도 그의 예배는 거기서 이미 예배가 아닌 것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미 정체성의 본질 - 예배자, 크리스천, CCM 아티스트 등등 - 을 흔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거죠.&lt;br /&gt;&lt;br /&gt;이러한 부조화를 본인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봐요. 역설적인 말이 되겠지만, 그런 부조리함 안에서 CCM 아티스트가 그의 순전함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보진 않구요. 왜냐하면 그런 부분들은 사실 개인적인 신앙의 영역이거든요. 또한 그들 나름대로 그렇게 돈버는 것에 대해 떳떳하다면 그저 떳떳한 것이 될 수도 있어요.&lt;br /&gt;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더이상 고민없는 아티스트의 고민없는 예배앨범 - 위에서 말한대로 예배에 대한 깊은 접근 없이, 그야말로 예배가 컨셉일 뿐인 앨범- 은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lt;br /&gt;&lt;br /&gt;어떻게 하면 CCM 아티스트가 온전히 예배를 말할 수 있을까?&lt;br /&gt;&lt;br /&gt;앞서도 이야기 했듯, 이러한 '영역의 담넘기' 자체가 옳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다가선다면 균형잡힌 접근이 가능할 것 같아요. 아니, 오히려 재능이 있는 아티스트라면 예배인도자로서 필연적으로 지고 갈 고민들 중 많은 것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기도 하구요.&lt;br /&gt;&lt;br /&gt;우선... 지금까지 나온 앨범들 가운데 CCM 아티스트가 예배를 말하는 케이스를 조금 살펴본다면 제 생각에는 한 세가지 정도의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CCM 아티스트 자신이 예배인도자로 회중예배를 인도하는 예배 실황 앨범이 있을 수 있어요.&lt;br /&gt;만일 그가 회중을 잘 배려하고 있는 예배인도자이고, 그러한 마음을 예배의 흐름에 적용하며, 그 흐름을 통해 깊은 예배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것은 상당히 좋은 케이스 입니다. 또, 예배인도자의 가장 큰 고민 중에는 예배를 음악적인 것으로 표현할 때에 생기는 기술적인 어려움과 관성적인 전형들 - 비슷 비슷한 곡의 진행과 사운드, 형식적으로 흐르기 쉬운 곡간의 연결 등 - 에 대한 것이 있는데, 전문적이고 창조적인 CCM 아티스트라면 그런 부분들에 대해 오히려 좀더 자유로울 수도 있구요.&lt;br /&gt;&lt;br /&gt;또다른 케이스는 자신의 고백과 묵상으로 노래하는 개인 예배 앨범입니다. 이러한 경우, 앨범 타이틀이나 재킷, 그리고 카피 등에 예배라는 단어가 없을 수 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를 만나고, 친밀한 교제 안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묵상과 고백들이 그의 재능을 통해 노래로 만들어질 때, 이것은 분명한 예배입니다. 이러한 앨범은 실황 앨범과는 다른 방향으로의 깊이있는 묵상과 접근이 가능한 것 같아요. 깊이 있는 묵상과 그의 창조성이 균형을 잡아 갈 때, 우리는 탁월한 앨범을 만날 수 있죠.&lt;br /&gt;&lt;br /&gt;마지막으로는 기존의 예배곡을 아티스트 개인의 앨범에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추어 리메이크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자리 찾기가 애매할 수 있죠. 아티스트로서의 창조적인 고민이나 도전이 표현되기도 어렵고, 오히려 고민없이 앨범을 만든다는 생각을 들게하기도 합니다. 특히 자주 불리워지는 곡일 수록 오해가 생기기 쉽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은 아티스트가 고민하지 않는 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대중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 별개의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오랫동안 감춰진 보석같은 노래 안에서 그 안에 내제된 가치를 재발견하게 만드는 작업은 위와는 다른, 정말 귀하고 가치 있는 작업입니다.&lt;br /&gt;&lt;br /&gt;그렇다면 CCM 아티스트가 예배자로, 혹은 예배인도자로 예배를 말할 때, 어떤 방향성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글을 쓰는 저에게 온전한 답이 있지는 않지만, 엔드 유저로서 위에서의 부조화에 대한 아쉬움의 반향으로 '이러 이러 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이 있긴합니다. 이것이 답은 아니겠지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부분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나눠보고 싶습니다.&lt;br /&gt;&lt;br /&gt;앞서도 이야기 한 부분이지만, 우선은 산업에의 욕구에서 출발하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lt;br /&gt;사실 이것은 비단 예배관련 앨범에 대한 이야기 만은 아닙니다. CCM 아티스트가 자신의 영역안에서 앨범을 제작할 때 역시 산업적인 욕심으로 출발하려 한다면 이미 그는 사역자라기 보다는 사역을 통해 사업을 하는 사업가일 것입니다. 출발이 그렇지 않더라도 앨범 제작의 영역들 - 부를 노래를 결정해야 할 때라던가, 세션에게 정해진 페이를 지급할 때 - 에서 산업적인 욕심을 부리는 것도 옳은 것은 분명히 아니겠죠. 재능안에서 정서적인 자유로움을 누리며 사역은 사업이 아닌 사역으로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 물론 이 말은 다른 영역에서 좀 더 고민해 볼만 합니다만...&lt;br /&gt;여하튼 CCM 아티스트가 앨범으로, 혹은 사역으로 예배를 말할 때 역시 산업적인 욕구로 출발을 하거나 그런 기준으로 무언가를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예배인 척 해도 예배일 수 없게 되어 버릴찌도 몰라요. 물론 올바른 방향성 안에서도 사업적인 성공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것에 정체성이 휩쓸려서는 안됩니다.&lt;br /&gt;&lt;br /&gt;이또한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사소한 것이기도 한 부분인데, 예배에는 일상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CCM 아티스트가 그의 예배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예배가 일상이지 않기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구요.&lt;br /&gt;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일상에 대해 예배자의 눈으로 해석하고 접근하고, 그안에 담긴 하나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이것을 또한 예배로 풀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아티스트라면 당연히 고민하게되는 '삶과 노래의 일치'는, 예배자의 정체성안에서는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와도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lt;br /&gt;&lt;br /&gt;이 영역의 담넘기에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통의 방향과 방법일 것입니다.&lt;br /&gt;제가 예전에 썼던 다른 글을 읽은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친구 또 이걸 들고 나왔군.' 이라고 생각하실런 모르겠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자주 말하게 되는 단어이기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거든요.) CCM 아티스트이건, 예배인도자이건 소통 -  하나님과의, 사람과의 - 은 굉장히 중요한 고민거리입니다. 특히 소통의 방법과 방향성이 어떻게 흐르느냐에 따라 어떤 예배는 예배가 아닌 콘서트 일 수 있고, 어떤 콘서트는 그대로 예배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lt;br /&gt;예배인도자는 함께 예배할 예배자들 - 회중들과 연주자들 - 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준으로 놓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콘서트라면 회중석의 조명은 끄고 무대에 조명을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겠지만 예배에서는 자칫하면 이러한 조명은 회중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 있어요. 또한 콘서트라면 더많은 - 수천, 수만명의 - 회중이 있을 수록 좋겠지만, 예배에 있어서는 그보다는 좀 적은 규모의 회중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이 회중들과의 소통에 있어 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lt;br /&gt;&lt;br /&gt;글이 서툴러서 좀 더 깊이 다뤄내지 못했습니다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훌륭한 CCM 아티스트라면 또한 훌륭한 예배 인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아티스트일찌라도 예배의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가지 않는다면, 예배자가 되는 것 조차 어려울 수 있어요.&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2710767936084857402?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2710767936084857402/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2710767936084857402&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71076793608485740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271076793608485740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6/ccm.html' title='CCM 아티스트가 예배를 말할 때'/><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8253241794253371513</id><published>2005-04-05T23:26: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3+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예배자의 정체성을 말없이 말하는 美學 [예배자] - 손유나</title><content type='html'>이 앨범. 무척이나. 불공평합니다.&lt;br /&gt;음반을 받아들고 알게 된거지만, 이 앨범에 내가 꺼리는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사실 내가 좋아라 하는 것만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박하지만 완성도 있는 여성 보컬과 그녀가 직접 만들어 낸 아름다운 곡들, 그리고 오영진과 최성규의 어쿠스틱한 사운드의 멋진 편곡이라니. 혹시 내 취향을 누군가가 분석해서 만들어낸 거 아닐까 하는 착각이 잠시 엄습하는 군요. 물론, 착각입니다만.&lt;br /&gt;&lt;br /&gt;나는 싱어송라이터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추구합니다.&lt;br /&gt;좀 거창한건지 모르겠는데, 내 머릿 속에서 싱어송라이터는 이 바닥의 마지막 답변이거든요. 컴필과 기획음반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계속해서 히트치고 있는 이 마당, 이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부담을 이기고 우리앞에 나서는 싱어송라이터는 그 존재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죠. 하여, 이 리뷰에는 과도한 칭찬이 느끼하게 흐를 예정이니 이런 거 싫어하시는 분들은 얼른 다음글로 넘어가시길 부탁드립니다.&lt;br /&gt;&lt;br /&gt;예배 음악이기 때문에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배라서 그저 용서되는 영역들이 있다는 거죠. 음악성, 창조성, 미적 균형 들... 이런 부분들의 완성도를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음악에 담긴 예배에 집중하기 때문에 - 혹은 예배 음악에서 음악을 따지게 되면 동시에 그 자신의 예배자 됨의 저열함을 드러내게 될까 싶어 - 보통은 못만든 음악일찌라도 예배에 초점을 많이 맞추고 용서하게 되구요. 사실 이것은 만드는 사람들이 못해서라기 보다는 안해서라고 봅니다. 특히 그 음반이 회중에게 맞추어져 있다면 정서적인 모험을 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거든요.&lt;br /&gt;그러나 개인 앨범이고 예배앨범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오는 경우, 일부러 기존의 회중 예배곡을 레파토리로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또, 음악적으로 평준화된 -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 음악으로 그 레파토리를 다뤄낼 필요도 없죠. 만약 개인 예배 음반에서 그런 식으로 앨범을 만든다면 이유는 한가지 라고 봅니다. 교회 집회에서 예배같은 콘서트 - 말이 안되는 것 같지 않나? - 를 만들기 위해서죠. 왜 그... 있잖아요. CCM 아티스트의 (보통의 경우, MR로만 하는) 회중 예배 콘서트.&lt;br /&gt;&lt;br /&gt;손유나의 '예배자'는 개인 예배 음반입니다. 영어로 적자면 퍼스널 워십 앨범이죠. 그렇다고해서 이 앨범에 기존의 예배곡이 있는가 하면, 한 곡도 없군요. 한 곡 빼고는 손유나의 작곡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노래들이고, 그 한 곡 역시 손유나가 몸담고 있는 부흥 한국 고형원 선교사의 새로운 곡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왜 이것이 대단하냐 하면, 상업적인 의지나 집회문의에 대한 대응으로 만든 앨범이 아니라는 점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죠. 그러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그러한 교회에서 개인 사역자를 초대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교회의 행사 때입니다. 즉, 더더욱 화려하고 잘 알려진 사역자를 추구하는 거죠. 교회에 널리 알려진 노래를 했던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이고 오리지널리티가 없더라도 그 노래를 자신의 앨범에 수록했었다면 그저 OK. 그러한 사역자와 노래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 감정적인 감동이라면 진실성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니 한참 뒤로 미뤄둡니다. 즉 익숙한 감동에 길들여진 한국의 교회에서 새로운 노래들로 앨범을 만든다는 것은 왠만큼의 진실성 만으로는 어려운 부분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앨범을 통해 예배를 말한다는 것, 예배자를 말한다는 것은 (이제는 꺼져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예배음악의 붐에 편승하려는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lt;br /&gt;&lt;br /&gt;그렇다고 해서 손유나의 앨범이 감동을 전달하는 데 익숙치 않다거나 일반적인 회중과 너무 먼 아티클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친근감이 느껴지거든요. 그 친근함은 흔해서 만나는 친근함이라기 보다는 조곤 조곤 이야기 하듯 노래하는 스타일에서 나오는 것이라 보는데,  어찌 들으면 힘없이 풀어낸 듯 하지만 그녀의 보컬엔 허튼 숨이 들어가 있지 않아요. 앨범 전반을 통해 조금은 자신 없는 듯, 그러나 분명하게 그녀 자신의 노래를 해내고 있습니다.&lt;br /&gt;게다가 이 앨범에서 만나는 노래들의 모든 고백들은 그리 유별나지 않아요. 식상할 만한 주제의 고백도 있구요. 그러나 그러한 특별하지도 유별나지도 않은 이 고백들을 담담하게 자신의 것으로 풀어내면서 오히려 진실함이 더해지는 듯 보입니다. 그 고백들은 대단한 수식이 있지도 일부러 꾸며 두터운 화장으로 치장하지도 않은 그녀 자신인 것 처럼 보이거든요.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은 힘주지 않고도 그녀의 예배자 됨을 말해주고 있구요. 앨범의 타이틀로 쓰인 '예배자'라는 단어 역시, 앨범 전반에서 한반도 만나지 못하게 될 단어입니다. 가사나 제목에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것이 오히려 그녀의 예배자 됨을 더욱 진실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끊지 못할 관계성을 토대로 한 든든한 정체성인 것 같아요.&lt;br /&gt;&lt;br /&gt;이 앨범의 기초가 된 관계성에는 하나님과 맺은 관계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사역해왔던 - 아마도 계속해서 함께 사역해 나갈 - 부흥 한국과의 관계성 역시 이 앨범의 단단한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드림을 거쳐 부흥한국에 있는 최성규와 오랜 동안 각개전투를 해오다 역시 부흥한국에 있는 오영진은 단순한 편곡자와 프로듀서 이상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오랜동안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져진 동역자들이 비슷한 정서를 지니게 되는 것처럼, 정서적인 충돌 없이 앨범 전체를 디자인하고 풀어낸 것 같거든요. 그래서인지 앨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의 색체는 최성규의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부흥'도 '드림'도 아닌 또다른 전형인 것 같습니다.&lt;br /&gt;만약, 손유나가 부흥한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저 세션이나 앨범 편곡자로 최성규나 오영진을 만났더라도 이런 새로운 전형이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요? 오랜 사역을 함께 해오면서 엮어낸 튼튼한 교제의 끈이 앨범에 좋은 힘을 더한 것 같아요. 사역 안에서의 소통이란, 그리고 그것의 좋은 결과란 건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닐런지.&lt;br /&gt;&lt;br /&gt;물론 이런 작품을 대중들이 모두 좋아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화려하고 느끼한 음식에 길들여지면, 거친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게되는 게 사람의 정서라는 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런 음반이 너무 반갑습니다. 뮤지션과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 없이 돈으로만 만드는 유명한 사역자의 앨범보다는 백배쯤, 아니 백만 스물한배쯤 좋습니다. 소박하지만 색체가 분명한 편곡과 그다지 많지 않은 악기 편성이면서도 어느 악기 하나 소홀하지 않은 편성, 분명한 개인의 고민과 고백이 담겨진 노래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의 정서적인 웰빙을 위해 이 음반을 사고 섭취하실 것을 권장합니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8253241794253371513?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8253241794253371513/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8253241794253371513&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253241794253371513'/><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253241794253371513'/><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4/blog-post.html' title='예배자의 정체성을 말없이 말하는 美學 [예배자] - 손유나'/><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806548056149768696</id><published>2005-04-05T21:29: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3+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현재 진행형으로 예배를 풀어내다. [그 놀라운 사랑] - 다윗의 장막 9</title><content type='html'>정직하게 말해본다면 '다윗의 장막'이나 '스캇 브래너'라는 이름에 그다지 잘 집중해왔던 편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예배음악을 음악적인 객관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일부러 노력하는 쪽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사게 되는 음반들에는 예배음반 보다  다른 장르의 음반들이 더 많은 편이기도 하거든요.&lt;br /&gt;그러면서도 이번 호에서 리뷰하게 될 음반을 정할 때 이 앨범을 일부러 지목했던 이유는 내게 있어 어떤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9집을 리뷰하기 위해서 1집부터 시작된 그들의 모든 앨범을 다시 모두 들어보았으니 색다른 경험인 것은 사실인 듯 싶습니다. 뭐랄까... 급하고 짧은 일정을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보아야 하는 패키지 관광 같은 경험이었어요.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내가 여행한 곳들이 어디선가 본 듯 싶다는 기시감 정도랄까...&lt;br /&gt;&lt;br /&gt;1집 부터 3집까지는 회중에 초점을 두고 주로 예배의 정서적인 것들을 흘려보내는 데 집중했다면, 4집부터는 어쩌면 좀 더 스캇 브래너 적이고 (혹은 다른 눈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고 믿어지는) 좀 더 음악적인 것에 많은 비중을 두고 예배의 형태적인 것들을 더 보여주고 있는 듯 싶습니다. 그 차이를 보다 쉽게 만나려면 2집에서의 '성령의 불로'와 6집에서의 '성령의 불로'를 들어보면 알 수 있겠네요. 따져 말한다면 세션 부터가 다르고, 외국인 보컬리스트의 참여도가 다르고, 믹싱이나 프로듀싱의 방향성이 많이 다릅니다. 물론, 그 분기점을 3집과 4집 사이로 말할 수 있다는 정도이지 이전이 더 좋다거나 이후가 더 좋다거나 할 바는 아닌 듯 싶네요. 다만 최근작인 9집의 경우, 이전 작에 비해 스튜디오 보컬의 더빙이 더 두드러지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믹싱의 방향성은 조금 아쉽군요. 아마도 한국인으로 제가 경험해왔고 기대하는 '예배 앨범'의 전형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일텐데, 그냥 그런 눈으로 바라 본다면 오히려 이전 앨범들에서 회중의 생생한 소리와 스튜디오 보컬의 균형을 잘 잡아낸 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푸른눈과 금발을 지닌 채, 한국의 교회에서 회중을 인도하는 예배자인 스캇 브래너에게선 (그가 어쩌지 못할) 상황과의 이질감이 존재합니다. 영어권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던 사람에게 유창한 한국어 발음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테고, 그가 한국인과 한국의 교회에 흐르는 예배의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소화할 수 도 없는 노릇일테죠. 만약 그가 억지로라도 한국어 위주로만 예배를 인도하거나 한국어로 된 노래만으로 회중 예배를 진행했다면 이질감은 더 커지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예배를 풀어내는 것 같지는 않아보여서 다행입니다. 오히려 북미 어느 지역의 WASP 교회의 예배를 그대로 들고 온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이외로 한국인의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거든요.&lt;br /&gt;&lt;br /&gt;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일부러 실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위험한 실험을 할 이유나 필요가 한국 교회에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정서적인 독립이나 변화를 너무 진지하게 - 사실은 심각하게 -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위에 적은 '다윗의 장막'의 특질들은 정서적인 독립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구요. 즉, 영동제일교회의 '어디에도 섞이지 않는' 예배의 정서가 위와 같은 이질감을 나름대로 균형 잡게 하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실험에 가까운 저런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정서의 독립'을 통해 짧은 기간 사이 9개의 앨범이 출시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lt;br /&gt;&lt;br /&gt;'다윗의 장막'에게 이러한 '정서의 독립'은 그들의 예배 사역에 있어 좋은 기반과 촉매가 되어주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역의 지경을 넓히는 데 방해가 될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서적인 독립을 통해 나름대로는 이질감을 균형잡게도 할 수 있겠지만, 이질감을 그냥 흘려보내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할테니까요. 특히 예배 중간 중간에 만나게 되는 '동시 통역'은 아무리 들어봐도 친해지기가 쉽지 않군요. 마치 영어 설교를 약간의 감정 과잉을 섞어서 동시 통역하듯 외치는 번역자에게서는 아찔한 이질감 마저 듭니다. 이것이 과잉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동시 통역을 하는 목소리 자체이기도 하지만 할 필요 없는 말까지 번역을 하는 - '할렐루야'를 '할렐루야'로 번역한다던지 - 것을 통해, 마치 번역자가 또다른 예배인도자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의 감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예배가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이고, 예배인도자의 자리가 그 소통을 돕는 것이라고 한다면, 감격이 아닌 감정으로 자신의 자리를 잊어버리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독립된 정서'는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것이 감정의 과잉과 섞여 버리면 모든 것의 균형을 흐트려놓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lt;br /&gt;&lt;br /&gt;우려섞인 말을 늘어놓긴 했는데 어쩌면 이 우려들은 그저 기우일런지도 모릅니다. 또, 사실 그러길 바라구요. 글을 통해 저런 우려들을 표현해낸 이유는 나 역시 다윗의 장막이 계속 좋은 예배 사역을 통해 좋은 열매들을 많이 보여주길 바라기 때문이거든요.&lt;br /&gt;&lt;br /&gt;글을 적다보니 9집 앨범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들의 앨범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된 듯 싶은데, 9집 앨범이 탁월함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그들의 꾸준함이 만들어 낸 이 여정 전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lt;br /&gt;큰 걸음으로 먼저 앞서나가는 것 보다는 한발 한발 밟아내며 걸어나가는 그들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여정을 다지는 앨범을 통해 다시 한번 그들의 꾸준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앨범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싶군요.&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806548056149768696?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806548056149768696/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806548056149768696&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06548056149768696'/><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806548056149768696'/><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4/9.html' title='현재 진행형으로 예배를 풀어내다. [그 놀라운 사랑] - 다윗의 장막 9'/><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4574907128092369392</id><published>2005-03-04T09:29: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4+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몇개의 앨범에 대한 리뷰를 포기하며</title><content type='html'>&lt;span class="ct lh"&gt;CCMER는 인쇄물이 나오기 약 한달 쯤 전, 편집회의를 하게됩니다. 그때 특집기사의 방향이라던가, 20자평이나 리뷰를 할 앨범들을 추스려서 서로 나누게 되지요. 이번 호의 경우 편집이나 탈고가 많이 늦어지긴 했습니다만, 마찬가지로 편집회의는 일찌감치 할 수 있었습니다.&lt;br /&gt;&lt;br /&gt;저의 경우, 이번 편집회의를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었습니다만, 편집회의에서 나왔던 의견과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존중하고 있고, 제가 써야할 분량의 원고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호는 그럴수가 없었네요.&lt;br /&gt;&lt;br /&gt;왜 그랬는지는 여러가지로 변명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여러가지니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2월에는 개인적인 - 무거운 - 사정이 조금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보다 더 무거운 이유는 앨범을 아무리 들어봐도 리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lt;br /&gt;&lt;br /&gt;앨범을 리뷰할 때 보통 열번에서 스무번쯤 앨범을 듣게됩니다. 초반에 몇번은 가사와 크레딧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듣고 나중 몇번은 '꼼꼼하게' 듣기 때문에 놓칠수도 있는 전체적인 음반의 흐름들을 잡아내려고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 평론가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갖지는 않습니다만, - 그래서 글을 쓴다는 작업에 대해 상당히 큰 부담을 늘 안고 있습니다. - 노래를 만드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음반을 기획하고 풀어내는 사람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고 그에 따른 스킬에 대해서도 약간의 지식이 있기 때문에 저 정도로 앨범을 들어두면 나중에는 음악을 듣지 않고도 악보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태가 됩니다. 물론 어려운 곡은 빼구요.&lt;br /&gt;이번의 경우, 저에게 나누어진 앨범에 대해 열번은 커녕 다섯번 이상 듣지 못했습니다. 인내심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제가 교만해서일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앨범을 낼 수 있었던 사람 들에 대해서는 뭐가 어찌되었건 존경하는 마음을 지닌 저로서는 제 스스로 생각에 쳐 놓은 벽에 막혀 허우적대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해 불쌍한 생각마저 들더군요.&lt;br /&gt;&lt;br /&gt;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에게 있어 평론가의 정체성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정체성 사이에 눈곱만큼 끼인 정도의 크기라고나 할까요. 그런 제가 음반을 리뷰하는 것에는 언제나 큰 부담을 동반합니다. 그러면서도 리뷰쓰기를 아예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좌표 찾기에 대한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확보하고 찾아먹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외줄타기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지금 CCM의 자리, 나의 자리가 어디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표현이라는 거죠. 이런 고민이 없었다면 제가 글을 쓰게되는 초유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저에게 음반 리뷰란 만만치 않은 숙제입니다.&lt;br /&gt;&lt;br /&gt;리뷰는 평론의 다른 이름입니다. 저에게 있어 평론이라는 것의 정의를 말한다면, '나름의 언어로 무엇인가를 표현한 작가의 작품에 대해 반응하는 텍스트' 정도라고 봅니다. 개괄적인 내용- 크래딧과 송리스트 같은... - 을 설명하거나, 관념에 머문 감정적인 감상을 말하거나 아티스트 계보를 디스코그래피와 함께 제공하는 것도 리뷰에 있어 한 요소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 앨범에 대한 반응이 없다면, 그것을 또다시 나름의 텍스트로 풀어내지 못했다면 좋은 평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항상 좋은 리뷰, 평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제가 가지고 있는 평론에 대한 의지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lt;br /&gt;&lt;br /&gt;좋은 평론이란 작품에 대한 분명한 시선으로 반응하며 그것을 또 다른 창조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런 모든 작업 안에는 작품에 대한 애정과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본 바탕이 되어야 겠죠. 그래야만 일방적이거나 감정적인 비평으로 흐르지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작품이 작가의 대중에게 대한 단방향의 텍스트라고 한다면 평론은 적어도 양방향의 텍스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방향은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또 다른 방향은 작품을 만나게 될 대중에게 또 다른 방향은 글을 적는 평론가 자신에게 던져질 수 있다는 거죠.&lt;br /&gt;&lt;br /&gt;문제는 리뷰를 해야 할 대상에게 텍스트가 없을 때입니다. 반응할 만한 언어나 표현이 없을 때, '대략 난감' 합니다. 할 말이 사라지는 거죠. 어떤 말을 해야 할건지 이유를 찾다가 지쳐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들어보고 끌리는 앨범에 대해서만 리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끌리지 않는 다면, 다시 말해 앨범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면 양방향의 텍스트가 되어야 할 리뷰가 리뷰어 혼자 반응하려 애쓰다 마는 방향을 잃어버린 텍스트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작품이 작품이란 단어를 붙이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범작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졸작이거나, 앨범을 만든 의지 자체에 대해 의심이 생기는 작업물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lt;br /&gt;&lt;br /&gt;탁월한 작품에 대해 어떤 것이 탁월한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만, 해서는 안될 잘못같은 앨범에 대해 무엇이 잘못인지 이야기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존중할 자신은 있습니다만, 가끔 평론을 평론이 아닌 다른 것으로 과대해석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거든요.&lt;br /&gt;&lt;br /&gt;CCMER는 무가지이지만, 광고지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무가지가 광고를 먹고 살아야 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시작하고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하여 '홍보성 기사'에 집착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느낀 그대로를 말할 수 있는 자유'가 태생에서 부터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럴 수는 없습니다.&lt;br /&gt;기본적으로 스스로 느낀 그대로를 거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 제한과 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리뷰나 기사, 칼럼 전반에 걸친 보이지 않는 외압들이 CCMER를 만드는 사람들을 끝없이 괴롭히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굉장히 작은 텍스트 하나에도 감정적으로 민감하게 대처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그런 사람들 가운데 CCMER의 필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다른 필자들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려야합니다.&lt;br /&gt;&lt;br /&gt;개인적으로는 '앨범을 만든 사람'이라면 그 앨범이 평가되어지는 것에 대해 자유로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꽉막힌 장사꾼이 아닌 이상, 더나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런 평가에 대해 의연해야 하고 할말이 있다면 역시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통의 의지가 있다면 그래야 합니다.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의지가 있는 작가라면 이에 대해 이견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통의 의지가 없거나 나름의 언어도 텍스트도 없다면, 그래서 무엇을 위해 앨범 작업을 했는지 조차 스스로에게도 불분명한 그런 작가라면 과연 작가일까요? 그런 분들이 '저 아티스트 아니에요. 저 사역자에요.' 라던가 '저 작가 아니에요. 저 사역자에요.' 라고 말 한다면,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집니다. 그럼 사역자에게는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습니까?&lt;br /&gt;&lt;br /&gt;저는 이번 호에서는 리뷰를 포기했습니다. 리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라이센스된 몇 개의 해외 앨범에 대해서도 출시된 몇개의 국내 앨범에 대해서도 할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언가가 특별하게 싫은 것이 있다거나 심각한 문제의식을 새롭게 느꼈기 때문은 아닙니다. 단순하게 리뷰하고 싶은 앨범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가 음반을 리뷰하게 된 처음 마음들을 다시 돌아 보아야 했습니다. CCMER에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쓰기 시작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lt;br /&gt;&lt;br /&gt;변명이 되어버린 긴 글을 적으면서 두서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제 심정을 큰 가감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생각에 가로놓인 - 그것도 제 손으로 쌓아놓은 - 벽을 바라보면서 드는 막연한 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거든요. 여전히 글쓰기가 어려워서 이렇게 길게 써놓았을 뿐이구요. 내일 부터는 이 벽을 어떻게 해봐야 겠습니다. 옮기거나 무너뜨리거나...&lt;br /&gt;여하튼, 지금의 저에게 있어 CCMER는 CCM에 대한 저의 '최소한의 애정'을 풀어내는 자리인것 같습니다.&lt;br /&gt;&lt;br /&gt;&lt;a href="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84"&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84&lt;/a&gt;&lt;br /&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4574907128092369392?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4574907128092369392/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4574907128092369392&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57490712809236939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57490712809236939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3/blog-post.html' title='몇개의 앨범에 대한 리뷰를 포기하며'/><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6624596260627544383</id><published>2005-02-14T05:22: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4+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감성의 소통을 고민하고 있습니까?</title><content type='html'>&lt;span class="ct lh"&gt;- 동시대적 크리스천 음악에서 동시대성은 어디로 흐르고 있나.&lt;br /&gt;&lt;br /&gt;해가 바뀌는 몇 달 사이,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전유였던 전송권을 저작인접권자에게도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안이 시행되었기 때문이죠. 덕분에 KOMCA에 등록된 작곡자들이라면 자기 맘대로 자기 홈피에 자기 음악을 올리는 것도 한번 더 고민해야 하겠죠. KOMCA나 음반제작자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lt;br /&gt;이 논란의 아쉬운 점은 현실적인 소비자에 대한 존중도 없고 그들의 요구를 알아내고 채우려는 의지는 사라졌다는 겁니다. 심하게 말한다면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나 할까요. 투자를 불리거나 회수하는 건 그들의 문제이긴 합니다만, 노래를 만드는 이와 듣는이 사이에 존재해야할 감성의 소통 따위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네요.&lt;br /&gt;실제로 일반 대중음악계의 음반시장이 90년대 후반 대비 5분의 1정도로 축소되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수치적인 거구요. 체감상 10분의 1로 축소되었다고 말해도 수긍이 됩니다.&lt;br /&gt;&lt;br /&gt;CCM 음반 시장이 아무리 독립적인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지만, 전체적인  음반시장이 축소되는 이런 흐름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에요. 그러나 어려운 현실에 비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수준의 앨범들이 CCM 시장에서 많이 출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문제라면 90년대 출시된 앨범들과 수준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다는 점이죠. 그 당시의 음악이 '좋았다.'라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뭔가 거꾸로 흘러간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군요.&lt;br /&gt;&lt;br /&gt;제가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CCM은 동시대성을 안고 가야 합니다.&lt;br /&gt;CCM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정의되어 있지 않던가요? 만약 CCM이라는 이름을 들어내고 현대적 크리스천 음악이니 하는 정의를 가져다 쓴다 하더라도, 역시나 '동시대성'이 언급되지 않을 수는 없겠죠. 동시대성을 지닌 기독교 음악은 어떤 방향성으로라도 접근되어야 할 부분일 테니까요. (오히려 기독교 음악에 '동시대성'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을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lt;br /&gt;&lt;br /&gt;제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이 계열의 아티스트들이 음악적 향상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질책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다양한 악기를 편성에 집어 넣는다던가, 여러가지 독특한 음악적인 시도들을 해내는 일은 아주 많아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근사해졌어요. 그러나 그런 근사한 겉모습으로는 도저히 대신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요.&lt;br /&gt;&lt;br /&gt;최근 나온 어떤 앨범들은 마치 90년대 중반 정도로 회귀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거든요. 가사의 내용이나 표현 방법도 그때 이후로 별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구요. 특히나 예전의 CCM 앨범들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장르 흉내 같은 것 - 하나의 앨범에 여러가지 장르의 노래들을 섞어내는 것 - 은 뭐랄까. 흉내 자체는 굉장히 매끈해졌지만, 그게 다 세션빨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과연 이런 앨범들을 만든 사람들이 동시대성의 정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lt;br /&gt;&lt;br /&gt;동시대성은 껍데기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내적정서의 측면에서 표현되어지는 동질감이라고 보구요. 이것은 '시대적' '지역적' 특징을 가집니다. 물론 이것은 예술을 표현하는 기술 속에 담겨지게 되겠죠. 정서를 특징하는 모든 요소들 - 선택되어진 '가사'와 선율, 화성, 스타일, 악기 편성, 지향하는 사운드의 방향 등 - 을 통해 나타내어 지는게 자연스러운 것일텐데요, 만약에 아티스트가 (혹시나 사역자라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창조적인 고민을 하지 않고 이전의 해오던 방법들을 답습한다면 겉으로는 어떨른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스스로 '정서의 벽'을 쌓게 되는 겁니다. 아마도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번복되기 쉬운데 그런 현상은 이런 벽을 허물기도 어렵게 만들겠죠.&lt;br /&gt;&lt;br /&gt;만약 CCM 아티스트가 '사역자'라고 하더라도 이런 현상은 말이 안됩니다. 그가 사역의 프로를 자칭한다면, 혹은 그가 전문적인 사역자를 지향한다면 더더욱 '동시대적'이 되어야 겠죠. 정서적인 측면 까지도 말이죠. 단순하게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형태의 의지는 더더욱 '정서의 벽'을 돈독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 의지 자체가 이미 '동시대적인 정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죠.&lt;br /&gt;&lt;br /&gt;동시대적인 감성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것. &lt;br /&gt;결코 쉬운 일은 아니리라 봅니다만, CCM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고민이라고 봅니다.&lt;br /&gt;&lt;br /&gt;&lt;br /&gt;&lt;a href="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88"&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88&lt;/a&gt;&lt;br /&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6624596260627544383?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6624596260627544383/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6624596260627544383&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624596260627544383'/><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624596260627544383'/><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2/blog-post.html' title='감성의 소통을 고민하고 있습니까?'/><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6397479725048244005</id><published>2005-01-27T01:35: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2.084+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interview'/><title type='text'>숭실대 CCM과 졸업생들을 만나다.</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xSKMVP0I/AAAAAAAAAcI/95yYHwh_TKs/s1600-h/226d3bac_interview_200501.jpg"&gt;&lt;img style="display:block; margin:0px auto 10px; text-align:center;cursor:pointer; cursor:hand;"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xSKMVP0I/AAAAAAAAAcI/95yYHwh_TKs/s400/226d3bac_interview_200501.jpg" border="0" alt=""id="BLOGGER_PHOTO_ID_5082295998786912066" /&gt;&lt;/a&gt;&lt;br /&gt;지난 12월 중순 정도에 마음 맞는 몇몇이 모여 목동 근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분이 내게 CD를 주셨는데, 선물 포장 같은 디자인과 2CD로 구성된 숭실대 CCM과의 졸업작품앨범이었죠. (이 앨범은 시중에서 만날 수는 없습니다.) 몇해전인가에는 서울예전 (지금은 서울예대)의 졸업작품앨범을 아는 후배가 준적이 있었고, 심심치 않게 이런 앨범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CCM 쪽의 학교 졸업앨범을 만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다른 곳의 졸업앨범을 받긴 했습니다만.)&lt;br /&gt;편견일런지 모르지만, 졸업작품에 들어간 망가진 힘의 균형이라던가 배웠던 테크닉 총동원 같은 치기어림을 그리 반기지 않는 편이라 큰 기대감은 없었죠. 그런 것들을 자세히 듣다 보면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일일 수 있기에...&lt;br /&gt;그러나 그 앨범을 건네준 사람에 대한 신뢰 - 아무 앨범이나 주는 사람은 절대 아니기에 - 로 두말없이 앨범을 받아들었고, 그날 저녁 집에서 그 앨범을 들으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10년전 쯤 CCM 앨범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던 시기에 만났던 좋은 앨범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 거든요. 연주나 구성, 믹싱이 탁월해서라기 보다는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좋은 노래를 만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고나 할까... 그 수준이 최고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펙트럼의 다양성과 나름의 깊이를 동시에 지닌 것 같았습니다. &lt;br /&gt;사실 대단하고 요란한 이벤트와 선전을 동반하고 등장한 기름기 번드르르한 몇몇 앨범들의 손 보다는 어쩌면 조금 어설프지만 진지한 이들의 손을 맞잡고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밥이라도 한끼 사주면서 가능하다면 이들의 등이라도 두들겨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만났습니다.&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이지음 안은주&lt;br /&gt;SSccm_김태경 안호창 김혜라 고은주 전현정&lt;br /&gt;&lt;br /&gt;&lt;b&gt;1. 꿈 이야기&lt;/b&gt;&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학교 들어올 때 가졌던 생각이나 꿈이 있으셨을 테고, 그런 생각들과  졸업한 지금의 생각들... 마음들, 앞으로 나갈 사역의 방향 같은 것이 있으실 텐데 조금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저는 98학번입니다. 학교가 처음 생겼을 때 온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학번과는 조금 다를 수 있어요. 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위해 준비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홍해 갈라질찌 모르고 발내렸던 상황이었거든요. 혼자 사역에 대한 꿈을 품고 나름대로 이것 저것 공부하다가 그 전부터 조금 알고 있던 송정미 교수님이 알려주셔서 이 곳을 알게 되었구요. 당연히 이것이 하나님이 만들어진 길이라고 믿고 학교에 들어왔습니다.&lt;br /&gt;사역의 방향은 입학때도 완전히 정하고 오진 않았어요. 가능성들을 다 열어놓고 시작했기 때문에... 뭐라도 시켜주시면 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있었고, 변한게 있다면... 좀 좁아진게 있다면 팀사역에 대한 마음과 그런 영향력에 대한 기대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 외에 다른 가능성들을 많이 보여주셨어요. 졸업 음반 만들면서도 기술적인 영역들 - 엔지니어나 프로듀서, 기획이나 유통 이런 것들에 대한 길이 좀 더 좁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lt;br /&gt;마인드에 대한 것이나 길을 선택한 것에 있어서는 후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진로에 대해서는 계속 기도하고 고민하고 추진도 하고 있지만 좀 더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저는 중학교 때 막연하게 '나는 크면 복음성가 가수가 되야지'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어요. 작곡 공부를 하다가 어머니의 권유로 성악을 전공으로 준비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CCM을 향한 열정으로 막연하게 타오르고 있었어요. (성악)전공으로 학교에 합격하고 나서 CCM 학과에 대한 소식을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때 '이곳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냥 마음을 접어두고 전공으로 간 학교에서도 선배들과의 관계문제나 그외 여러가지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휴학을 하고 이 곳 준비를 다시 했고 이 곳으로 와서는 동기나 선배, 선생님들 과의 관계도 너무 좋았어요.&lt;br /&gt;어렸을 때 마음 품은 거랑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어렸을 때는 현실적인 것, 경제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하나님을 노래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가 먹어가고 졸업이 다가오면서 점점 경제적인 것에 떨려하는 나를 보게 되었어요. 그런 것들도 하나님이 많이 가라앉혀 주셨고 그리고 지금은 막연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혜라 : 저는 원래 음악 아니구요, 미술로 대학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인터넷에 CCM 동호회를 가입을 했었어요. 근데 거기서 가입회원 중에 한분이 여기 학교 선배님이셨어요. 그 분 통해 이 학교에 CCM과가 있다는 걸 알았구요. 제 생각으로는 미술을 전공으로 준비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피아노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찬양 사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이나 부르심,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이 안된 상태에서 CCM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들어왔던거 같아요.&lt;br /&gt;들어와서 1학년 때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했어요. 왜냐하면 엄마 아빠가 반대하셨거든요. 학부도 아니고, 음대도 아니고... 그래서 1학년 때는 저도 잘 적응못했고... 2학년 때, 말씀에 대한 깨달음도 얻고 이러면서 그 때 부터 생각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사역에 대한 생각들,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3학년때 말씀으로 들었거든요. 결국에는 내가 해야하는 일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겠구나. 이게 너무 분명해서 그때부터 조금씩 준비하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lt;br /&gt;지금은 팀사역을 하려고 준비 중이구요. 꼭 뮤지션이 아니어도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달란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답이 여러개인게 아니라 내가 섬길 수 있는 분야가 많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꼭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음악을 하지 않아도, - 그것도 같이 하면서 다른 부분에 섬길 수 있는 사역이 있겠구나 싶어서 팀사역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중에 있어요.&lt;br /&gt;&lt;br /&gt;&lt;br /&gt;SSccm_고은주 : 저는 중학교 때 온누리 교회 경배와 찬양팀을 보면서 나도 저런 팀의 한 명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lt;br /&gt;이 학교가 있는 거는 몰랐었어요. 교회에서 이 학교를 준비하던 애가 있었는데, 누나 이런 학교가 있는데 나랑 같이 시험보지 않겠냐구 하는거에요.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시험을 봤었거든요. 노래 연습도 일주일 밖에 안했었는데... 그 친구는 떨어지고  저는 붙었거든요. (웃음)&lt;br /&gt;1학년 때는 막 놀았아요. 소망이 없이 그냥 들어와서 그랬는지... 2학기 때 영성훈련 때 그 때 영접을 했거든요. 말씀을 새롭게 접하게되었고 거듭남에 대한 경험도 생겼어요. 그리고나서 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게 많았어요. 그래서 계획을 많이 세웠는데 결국 제 생각으로 하려고 했던 그런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지금은 그런 것들 다 내려놨구요. 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돈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먼저 생각하고 그러고 있었는데 그것도 다 내려놓게 되었고 저도 해라 처럼 팀 사역을 생각하게 됐고 저는 이제 솔로가 아니고 팀사역만이 제가 할 사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SSccm_전현정 : 저는요, 원래는 음향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학교를 봤는데 떨어지고, 스무살에 거듭이 나고요. 교회는 전부터 다니고 있었어요. 여기 학교를 알게 된 거는 제 한 학번 선배님이 보컬로 이 학교에 시험을 보셨는데 그 때 반주를 하게 되어서 알았고요. 저는 거듭나고 나서 그 혈기 왕성함에 뭔가 최고가 되야 겠다. 서울대를 가야겠다. 이런 마음에 음악 이론을 하려고 계속 준비하고 있었는데, 경쟁하는 일이 별로 저한테 맞지 않아서 좀 많이 부대꼈던것 같아요. 그래서 도망을 친 곳이 숭실대 CCM과이구요. 제대로 도망을 친 것 같아요.&lt;br /&gt;4년 있으면서 초반에는 잘난척도 많이하고 교만도 제대로 해보고 그러다가 지금 졸업하면서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하나님이 원래 태초에 만드신 대로 사람 답고 싶은 거구요. 그렇게 사람답고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할 꺼 같구... 네 그래서...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다운 일. (웃음)&lt;br /&gt;&lt;br /&gt;&lt;b&gt;2. 음반 이야기&lt;/b&gt;&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음반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하자면... 음반 좋더라구요. 퀄리티에 대한 부분들이 탁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기존 앨범들의 아쉬움들에 대해 좋은 답을 주고 있는 것 같았고, 여러가지 좋은 가능성들을 보여주고 있고, 다양한 스펙트럼과 나름의 깊이를 함께 지닌 앨범으로 보입니다. 연주곡에서 부터 일반적인 보컬곡, 소박한 구성의 노래 등, 상당히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다양성은 그냥 해서 나오는 것 같지는 않고요. 프로듀싱이라던가 이런 부분에 대해 각자의 곡에 대한 기여도라던가 이런 부분들이 좀 달랐던건지 궁금합니다.&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저도 앨범을 진행 하면서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팀사역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느끼는 게 뭐냐하면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테크닉... 나한테 없는게 이 친구한테 있고, 이 친구한테 없는게 또 다른 친구한테 있고, 그런 것들을 앨범 작업하면서 많이 봐왔어요. 가능성들을 본거죠. 그래서 제가 만약에 혼자 프로듀싱을 하고 곡을 쓰고 앨범을 만들었으면 이렇게 다양한 음악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고 시도 자체도 어떤 한계가 있었을 텐데 대부분 작곡을 하거나 가사를 직접 쓰거나 자기 생각들을 넣어서 작업을 할 수 있게끔 열어 두었어요. 곡을 뽑는 과정에서 부터 미리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게끔 시간을 많이 줬죠. 여름방학 지나고 부터 본격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곡 선택하는 문제 부터도 개개인이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예를 들면 입학부터 졸업까지, 하나님이 인도해 주심이나 아니면 자기가 변화된 것들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이야기나 아니면 복음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그런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선곡을 하라고 요청을 했고, 선곡해 온 곡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자기의사 라던가 개인의 생각이 반영이 된 상태에서 악기 설정이나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기도 했어요. 여러 선생님들이나 여러분들이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자기 생각이 반영이 됐고 그런 앨범이어서 저도 하면서도 참 다양해서 좋다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lt;br /&gt;트랙이 많아서 힘든 부분이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2CD 로 제작해야 되면 재정이 아무래도 두배가 드니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각자가 준비한 곡 하나 하나가 그들을 많이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요. 각자의 하나님이 많이 드러나는 것 같구요. 또 그런 방향으로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진행됐던 앨범이라고 생각해요&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아까 여름방학 부터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럼 준비기간이 여름방학 부터였나요? 아니면 언제부터 준비해오셨나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lt;br /&gt;저희는 졸업논문 대신에 졸업음반을 만들어야 졸업이 가능하구요, 그래서 제가 4학년 대표로 됐을 때, 1학기때는 졸업 여행이 있고 2학기 때는 졸업연주도 있고...  그래서 좀 여유를 두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려면 준비기간이 아무래도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미리미리 준비를 하자는 생각에 사실은 4학년 올라오자 마자 부터 1년동안의 스케쥴을 나름대로 짰어요. 언제는 졸업여행이고 언제는 졸업음반을 만들기 위한 어떤 어떤 작업들을 해야 겠다는 식으로 아이들한테 브리핑을 했구요. 사실 그대로만 됐어도 더 좋은 앨범이 나왔을 꺼라고 생각해요. 근데 저희안에 게으름이 있죠. 게으름 때문에 많이 지체됐구요. 그리고 이런 작업에 함께 하는 사람이 한 네다섯명만 해도 작업이 빨리 될텐데, 스물네명이라는 사람을 다 데리고 개인 개인의 의견을 반영해가면서 진행하기에는 정말 쉽지 않았아요. 제가 강제로 일정을 잡아서 이 날 까지만 소스를 다 받는다고 딱 못박고 이런 식으로 억지로 억지로 겨우 겨우 끌고 갔던 그런 앨범인데, 사실 좀 부끄러운 부분이 많아요. 음반에 대해서.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 아시거든요. 이게 얼만큼 성실하게 만들어진 앨범인지 듣는 사람은 모를 수 있어도... 우리 학년들은 다 잘알아요 이게 얼만큼 불성실하게 만들어진 앨범인지. 하나님에게 좀 죄송스럽고 더 잘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우리의 게으름이나 잘 하지 못한 부분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lt;br /&gt;그래서.정확하게 시작한 건 9월 정도부터 곡을 선곡을 했구요.  제가 10월 30일 까지만 소스를 받겠다 이렇게 엄포를 놔가지고 그때 막 거의  벼락치기로 한달동안 거의 매일 하루 준비하고 하루 녹음하고 이런 식으로 거의 10월 안으로 작업을 했고요, 11월에 믹싱과 다른 작업들을 시작했어요. 기간은 한 서너달? 서너달 정도. 그 정도인거 같아요.&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작업은 주로 어디서 했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작업은 주로 저희 집에서 했는데요. &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집이 환경이 어떤데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환경은 그냥 방이에요. (웃음) 자켓에도 홈스튜디오라고 썼지만 한두곡 빼고는 저희집에서 홈스튜디오처럼 작업을 진행했어요.&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장비를 어떻게 꾸미셨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아범PC에서 누엔도로 작업을 했어요. 오디오 카드는 지나2496을 주로 썼구요. 콘덴서 마이크랑 마이크 프리앰프를 백승남 선생님이 빌려주셨어요. 그리고 저희 집에서 방이 두개가 있는데 한쪽은 부스삼고 (웃음) 한쪽은 콘트롤룸으로 그냥 허접하게... (웃음)&lt;br /&gt;&lt;br /&gt;CCMER_안은주 : 주로 악기 없이 컴퓨터로 작업을 했다고 들었거든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그러니까.. 드럼은 전자드럼을 사용했구요. 그담에 베이스는 리얼입력 한 사람도 있고 일렉도 리얼입력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가상악기나 이런 것을 많이 사용했죠.&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프로그래밍은 주로 누가 하셨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이 친구(전현정)는 자기곡 4곡은 자기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했구요. 나머지는 이제 조금씩 나눠서 작업을 했어요.&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그러니까 거의 가내수공업이군요. (웃음) &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어, 그렇죠. 그 표현이 정확한건데...&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그런 것 치고는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lt;br /&gt;그리고... 열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 들이 있는데 그럴 수 없는 거, 예를 들어서 CD 프레스 가격이라던지 디자인이라던지 이런 거에는 돈이 들잖아요. 아까도 이야기 하셨지만, 더블 CD 때문에 돈이 더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런 돈들은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각출하신건가요 아니면 학교나 다른 곳에서 지원이 있었나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하나님이 더 친밀히 개입하신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lt;br /&gt;일단 저희가 제일 처음 녹음을 시작하려고 외장하드를 구입한게 일인당 만오천원씩인가 걷어서 구입을 했고, 그담에 졸업연주를 하려고 15만원씩 모았어요. 24명이면 320만원이라는 돈이 나오는데 그 돈 중에 120만원이라는 돈을 미리 끌어다 음반제작에 썼고 음반을 700장을 만들어서 한장에 8000원씩 졸업연주 당일날 판매하고, 졸업연주에 필요한 돈을 앨범 판매한걸로 해서 충당을 해서... 딱 주의 은혜로 (웃음) 마이너스 없이 남는 것도 없이 이렇게 잘 채워졌어요.&lt;br /&gt;원래 머릿속으로는 700장을 만들어서 다 팔면 한 200만원 정도는 남아서 정말 도와준 분들 감사 성의표시라도 하고 졸업연주 때 밴드로 도와주고 여러 스텝으로 도와주신 분들 밥이라도 한번 사줄려고 계획은 했는데 사람 계획하곤 또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음반작업에 사용한 120만원은, 그 중에서 80만원이 프레싱에 썼구요. 그 담에 40만원 정도가 자켓인쇄로 나갔어요. 자켓디자인은 안밴드의 안찬용 형이 그냥 무료로 희영 누나와 함께 섬겨 주셨구요.&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짐짓 놀란 척을 티내며) 그런 일이 있었군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그래서 가능했죠. 사실 찬용이 형이나 돕는 사람들이 이렇게 없었으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사실 그렇게 잘할 필요 까지는 없었거든요. 그냥 음반만 만들면 되고 자켓 없이 논문처럼 만들면 되는 건데... 그렇다고 음반을 팔아서 그걸로 졸업연주 비용을 감당해야지하는 생각을 하고 만든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냥 많이 만들어서 저희가 그래도 일년동안 노력한 결과입니다 이러면서 기도 부탁하면서 한장씩 드리려는 의도로 좀 많이 만든 건데, 어떻게 하다 보니깐 선생님들도 그렇고 판매하는게 좋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럴려면 자켓도 해서 잘 만들고 프래싱도 제대로 해야 되겠는데... 하면서 쪼금씩 더 신경을 쓰게 된거죠.&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처음 시작했을 때 그 때부터의 모든 과정.  팀원들을 압박하고, 협박하고, 재정을 맞추고, 녹음 하고... 그것까지가 다 프로듀싱이죠. 어떤 사람은 프로듀싱을 그냥 녹음실에 들어가서 있는걸로 아는데.. 게으름과의 싸움, 관계를 맺어감, 그게 프로듀싱인거 같애요. 아마 큰 공부를 해본거랑 안해본거랑 다른거 같고..&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예. 배웠죠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lt;br /&gt;&lt;br /&gt;&lt;b&gt;3. CCM 이야기&lt;/b&gt;&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질문은 아니구요.... 대중성에 대해서 몇가지 생각들을 나누고 싶어서요. 아티스트가 고민해야 할 대중성이란.... 동시대성이 아닌가 싶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정서적인 동질감이란 건데... 사람을 소비자라거나 타겟이라거나 시장이라거나 이런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실은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lt;br /&gt;실제로는 출시되는 대부분의 음반들이 생각하는 대중성이란 '듣기 편한' 쪽으로 많이 맞추어져 있어서 가사라던가 멜로디에 한계가 많은 편인데 그런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벗은 것 같아서 이 졸업앨범이 반가왔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대중성을 생각 안 할 수는 없죠. 그러나 이 작업 자체는 대중성에 대해 크게 부담 없이 진행되었던 거 같아요. 만약 그 부담을 우리가 안았다면 현정이 곡 같은 가볍자 시리즈는 쉽지 않은 ... 너무 무거운 시리즈 거든요. (웃음) 산업적인 목적 같은 것이 있었다면 과감히 빼자고 이야기 했을 거에요. 근데 그런 목적은 아니었구, 그리고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이 안에서 너무 다양한 것들을 봤기 때문에 다양하면서도 굉장히 그 사람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을 그런 음악들을 살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마무리 단계에서는...&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여기 계신 분들 중 어떤 경우는 학교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삶의 이유, 노래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환을 가져오고 어떤 경우는 처음 부터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왔는데... 그러면 음악은 뭐냐. 라는 질문이 스스로에게 던져진다고 보구요. 아티스트, 아트, 음악, 예술, 그것과 복음, 메시지 그것과의 조화가 CCM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명쾌하게 정의 내려 지시는지... &lt;br /&gt;그 두가지가 - 음악적인 요소들과 메시지들의 요소들이 서로 융합되는 작업이 CCM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잘 융합하는 작업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거 같구요. 또 많은 고민이 거기서 일어나고 그 음악적인 요소들을 어떤 사람들은 나는 주를 위해 노래하고 복음을 위한 도구로 희생합니다라고 하지만, 잘 믿겨지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음악적인 쿨함을 취하고 아니면 많은 산업적인 접근을 위한 대중성을 취하고 거기에 어떤 그... 체면 아니면 명목으로 복음을 이렇게 버팀목처럼 이렇게 기브스 대놓듯이 그런 느낌도 드는 음악들을 접하면 당혹스럽고...&lt;br /&gt;저도 졸업작품 앨범을 들으면서는 이전 세대와 달리 상당히 그런 고민들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냐하면 이전 세대들은 교회랑 많이 싸워야 했어요. 교회랑 많이 부딪혀야 했고, 어떤 정당성을 교회로부터 입증 받아야만 했죠. 올바로 된 복음주의적인 노래, 사역 이렇게 ... 만약 그게 안되면 많이 비난 받았고 꾸중듣고 그랬기 때문에 열등했고, 이전 세대들은 많이 힘들었거든요. &lt;br /&gt;근데 우리가 잘 모르다가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졸업작품 앨범을 통해서 우리들은 신선하게 접할 수 있었거든요. 접할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앨범을 들었을 때에는 그런 요소들 - 그런 고민들이 많이 줄고 이제는 그냥 겉멋이 아니라 이런 음악을 해보고 싶어서 진짜 CCM으로 그것이 나의 그냥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라는 식으로 복음과 메시지와 음악적인 요소들의 부딪힘이 적었던 걸로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부딪힘 같은 거 또 고민에 대해서 아까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런 대중성을 좀 넘어선다 하더라도 어떤 자기 음악적인 것과 또 자기 뭐랄까 메시지나 내용적인 것들 때문에 뭐 혼돈스럽거나 갈등을 일으킨 건 없었는지 얘기 해주시면 어떨 까요. &lt;br /&gt;&lt;br /&gt;SSccm_고은주 : 제가 대답하는 게 맞는 대답인지 잘 모르겠는데... 저는 솔직히 아티스트라는 말은 너무 듣기 싫거든요. 최소한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겠다는 그런 생각은 있어요. 저는.&lt;br /&gt;우리가 찬양을 하면서 나가는 데 CCM 아티스트 그런 얘기는 정말 우리한테 맞는 얘기가 아닌 거 같구요... 제 생각에는 그렇구요. 일단... 사역자잖아요. 찬양 사역자 잖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또 남들한테 말을 안해도 그렇게 비춰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말 영적으로도 진짜 항상 준비를 하고 노력을 하고 기도하는 거를 쉬면 안되는 거다라고 생각을 하구요. 그렇다고 또 그것만 앞서가서 그게 또 한쪽에 치우쳐서 뒤져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거 못지 않은 노력을 이쪽(음악)에서 또 정말 많이 해야 되고 후회되지 않게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해야지 남들이 그냥 찬양 사역자나 그런 찬양 아티스트 그런 얘기 안해도 그 사람들이 알아줄수 있을꺼다 라고 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구요. &lt;br /&gt;그것때문에 솔직히 고민도 많이 했어요. 생각은 또 근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그런 것도 솔직히 있구. 그래서 저는 팀사역에 대해서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구 있구요. 제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꼭 그런 팀과 같이 함께 어울려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게 저는 필요하다라고 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구요. &lt;br /&gt;그리구 이야기 하셨던 물질적이거나 그런 거는 그러니까 되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희가 졸업연주를 끝내고 MT를 갔거든요. 제가 그것때문에 솔직히 졸업 하고 나서 선생님한테 감사의 편지 막 이런거 하는데 제가 앞줄을 읽고 막 울었어요. 백조생할에 접어든지 드듸어 7일이 되었습니다. 그러고선 막 울었는데 선생님들은 막 웃으시더라구요. 그러니까 뭔가 이렇게 졸업하고 나서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역의 길이 아니구 뭔가 돈을 벌어야 되고 그런거를 생각하니까 되게 힘들고 또 그걸 했을 때 사역의 길을 가지 못할 것 같다라는... 온전히 사역에 내가 헌신하지 못할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에 되게 힘든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 얘기해주신 거는그러니까 내가 뭔가 돈에 얽매이거나 그런 거를 얽매이기 시작하면 사역을 할 수가 없다라고 얘기를 하시고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다라고 얘기를 하셨구요 정말 그 말이 맞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그거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분명히 그거에 대한 갖은 핍박과 막 집에서 그런게 있을 꺼라고도 각오도 하고 있지만 그거를 생각하면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든 걸 다 내려놨는데 그런게 제 힘이 아니구 하나님께서 내려 주셨다 라구 믿구 있구요. 그래서 지금 그 팀사역을 할려구 지금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는 그런 과정에...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었던 것 같애요.&lt;br /&gt;&lt;br /&gt;CCMER_안은주 : 음악과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이 난건데, 연주곡 중에 아이가 뛰노는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한 노래가 있었던 것이 기억나요. 그런 곡은 직접적으로 복음에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는 곡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그 음반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그냥 각자 개인의 음악을 존중해줬기 때문인지 메시지 적인 것이 닿아 있고 안닿아있고를 조절하는 거는 어떻게 된건지.&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음반 제작 처음부터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곡 선정에 대해서 본인에게 본인의 의사 결정에 100퍼센트... 간혹 선생님들 의견 때문에 이곡은 바꾸자 해서 바꾸신 분도 있지만, 저희가 뭐 상업적인거나 대중성이나 그런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선곡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런 곡도 들어갈 수 있었고, 자기가 표현하기 편한 어떻게 보면 자기가 편하게 표현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가장 잘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곡들이 담긴거 같애요. &lt;br /&gt;&lt;br /&gt;CCMER_안은주 : 그러면은... 꼭 복음과 닿아 있다거나 복음을 포함해야 한다는 그런...&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그런 부담감 없이 만들어진 음반이에요. 그랬다면... 가볍자 시리즈도 안들어갔을 테고 (웃음) 복음은 아니니까... 그러나 현정이의 생각이나 어떤 의도 안에서 만들어진거기 때문에... 하지만 저희 안에 그 같은 학년 모임을 일주일에 두번씩 하면서 기도한 건 그거에요. 우리가 음반제작 경험이 없지만 4년 동안 배우면서 우리가 드러낼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니 하나님이 드러나는 음반 만들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계속 기도하면서 작업을 해왔어요. 그거 하나는 확실해요. 복음인지 아닌지 어떤 음악이 담겨진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우리 학교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후원해 주거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이 음반을 들었을 때는 아 현정이가 4년동안 이런 음악을 했구나 이런 것 보다는 하나님이 현정이를 4년동안 이렇게 변화시켰구나 하나님이 좀 드러나는 그런 음반을 만들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항상 기도한 거는 확실해요.&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그런 복음적인 요소가 포함되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구... 그렇게 말한다면 아까 말했던 그 이전세대가 교회와 긴장감을 가지고 그런 압박감이랑 똑같은 거 같애요. 그런거 아닌거. 그런거 아닌 고민들... 그런 거에서 벗어났을 때,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꺼 같긴 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음악적 요소와도 긴장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은데요. .. 혹시... 없으면 그냥 넘어가도 되구요. &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예를 들어서 뭐 이런 걸 수 있는데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이 있고 자기의 현재 모습이 있고, 노래 같은 거를 만들다 보면 분명히 부딪히는 부분이 자 이렇게 하면 나는 좋긴 한대 쟤는 못 알아들을꺼야 이런 부분이 있을 수 잇고 그러니까 표현의 수위나 이런 디테일한 고민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이제 그런 거.. 그런 고민들에 대해서 자유로와 졌다는 걸 느낀게 아니라 그런 고민들을 했을 텐데 그런 갭을 이겨내는 방법이랄까 ... 그런 차이에 대해서 어떤 선택을 해왔었는지 ..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생각 안했다던지 (작은 웃음)&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저는 복음이 담긴 음악, 아니면 그냥 음악 그렇게 따로 생각하지 않아요. 아까 하나님이 저한테 음악을 주신 것,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음악외에 다른 여러가지 일들을 주신 것, 예를 들어 가게에서 자기가 물건을 판다. 그것과 복음이 전혀 상관이 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삶이고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으면 그거 자체로 즐길 수 있는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음악은 음악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게 있고 그것과 아기를 두고 만든 노래 같은 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걸 내 아기를 두고 쓴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거 안에 그 삶 자체가 하나님 안에 포함 된거고 내가 그 애기를 바라봤을 때 그런 음악이 나오듯이 하나님이 나를 바라봤을 때 그런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음악 자체인거 같애요. 음악 자체, 복음 자체... 흑백적인 게 아닌 융합인거 같애요. 그래서 저같은 경우도 가요를 들을 때 사랑 이야기가 있으면 사랑이야기로 받아드릴수도 있고 나와 하나님과 의 관계 가운데의 사랑이야기로 받아드릴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거 같애요.&lt;br /&gt;솔직히 제가 일반대중 음악 쪽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거기에 있는 가사 같은 거 그러니까 연인간의 사랑이야기라 할찌라도 내가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느끼고 그렇게 하면 별로 문제될 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쓰는 곡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라던가 예수님이라던가 그런 단어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도, 또 교회용어 같은 가사들이 들어가지 않아도 삶가운데서 내가 느꼈던  하나님에 대한 곡들이 있고,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들었을 때 이거는 뭐 그냥 가요 같은데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걸 통해서 하나님과의 소통이 있고, 이런 곡들이 그냥 들었을 때 아 그냥 기분이 좋다 이럴 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졸업연주 때 불렀던 곡같은 경우는 그냥 친구 사이의 우정을 노래한 곡이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을 본인의 신앙과 합해서 어 하나님과 나 사이는 이런 거 같애 라고 느낄 수도 있고... 메세지, 음악, 따로는 아닌거 같애요.  만약에 내가 음악을 했을 때 그 음악 자체에 너무 빠져서 음악적인 것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것을 도구로서 인지하고 있고 하나님 앞에서 즐길 수 있는 어떤 인위적인 것들로 내가 인정하고 같이 간다면...&lt;br /&gt;&lt;br /&gt;SSccm_전현정 : 그리구요. 그냥 아까... 교회와의 싸움... 이야기 하면서 생각난 김에 ... 그 때는 80년대라구...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는 되게 외부적으로 드러난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고 교회가 비틀어진 정치에 대해서 대항하지 않고 묻어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교회와 싸울  깨어있는 크리스찬으로서 싸워야 할 명분이 ... 이런 정치 뿐만 아니라 교회도 싸워야 될 대상으로 공공의 적으로 어떻게 보면 되었기 때문에 그게 그 치열함이 음악에도 묻어날 수 있었고 그랬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니까 정부도 그렇고 막 내가 막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의 위협을 주는 공공의 적은 사라졌다고 보는게 맞다면 저희들이 싸워야 할 것은 오히려 복음이라 통칭되는 거들 만... 어떤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세계에서 된거 같거든요. ... 눈에 보이는 싸움이 끝났으니까 내가 세상을 향해서 어떤 싸움을 걸고 있는 가 그런 것들이 중요해 진것 같애서 저만의 생각이니까.. (웃음) 개인적으로도 그래서 주일성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 매일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 하고 있는 가가 가장 큰 주제가 저희 과 안에서는 됐고...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무슨 복음과의 싸움 무슨... 세상에게 복음을 던지는 그런 것은 없을 지언정 오히려 어떻게 보면 복음이라는 큰 영향력 때문에 감춰져 있던 나의 죄들을 드러내는 일을 많이 했던 거 같고 그것에 ... 아까 말씀하셨지만 애기 엄마의 노래에서 처럼 그 순간 아기와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그 생각.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했는지를 드러낼 수도 있는 거 같고, 굳이 그렇지 않아도 그 삶. 그 삶을 갖고 있는 나에게 중요한 일인 거 같아요. 아까 말했지만 대중이라는 것은 무슨 CCM, 뭐 CCM 음악을 향유하는 계층 뭐 이런거 라기 보다는 그냥... 산업 사회에서 뭔가를 팔아먹는 대상. 거의 이런 쪽이 맞잖아요. 그걸 하냐 안하냐의 선택인거 같고 ... 정리가 안되지만 어쨌든... 그렇고... &lt;br /&gt;&lt;br /&gt;CCMER_안은주 : CCM을 듣는 대중들은 대다수가 찬양 가사가 당신이라고 되어 있다거나 ... 그런 거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가사는 진짜 좋아도 만약에 곡이 현란하면 가요 같애 그러구 안듣는 사람들도 아직은 많아요. 그렇게 보면은 현정씨의 곡이나 안호창씨 곡들도 그렇고 만약에 아까 말씀하신대로 직접적인 가사가 드러나지 않는 곡도... 쓰신 분은 그렇게 느낀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CCM으로서 그냥 가요 같애 CCM 안 같애 라고 생각하고 그냥 딱 막혀 버릴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러면은 결론적으로는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는 다는 말 처럼 들려요.&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거듭나려는 준비 과정에 첫 단계는 마음을 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듣지 않으려는 닫혀진 마음이라면 아무리 복음이 가도 튕겨 나갈 수 밖에 없는 ... 듣는 사람... 만약에 듣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맞는 다른 음악이 있는 거고, 듣는 사람이 저의 음악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소통할 수도 있고요. 시장에서 다양성이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lt;br /&gt;저 같은 경우는 나도 팔리는 음악을 만들어야 되는 건가 남들이 막 다 듣고 따라 부를만한 그런 음악을 만들어야 되는 건가하는... 근데 저는 그런 생각은 없어요. 제가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자체도 너무 어색하고 물론 저도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 좋아는 하지만 어색해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분명한 저의 영역이 있고 분화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저만의 것들, 하나님이 저한테 주신 것들, 제가 마음에 품은 것들, 제가 하나님 예배해왔던 것들, 그런 것들로 나가는 것... 그러면 그것 안에서 정말 한 두사람일지라 하더라도 나와 같이 소통할 수 있을 꺼구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구 예배할 수 있을 꺼구 또...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 나름대로의 어떤 음악들이 나와 있고 그거 안에서 소통하고... 그러는 거 같아요.&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대중성이라고 말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로 소통의 문제라고 봅니다. 산업적인 대중성도 해야겠지만, 우선 하는 건 지양해야 된다고 보구요. 대중성을 고민한다면 돈을 많이 벌기위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분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고 봐요. 소수냐 다수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남을 텐데 CCM이라면 더 많은 다수와 소통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나를 포기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소통하게 된다면 나를 포기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어야 겠죠.&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저희가 답으로 갖고 있진 않지만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구요. 우리 과의 전체적인 영적인 흐름도 대중적인 쪽으로 흘러가진 않는 것 같아요. 만약 그런 대중성을 고집하고 추구했다면, 아마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조차 없을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추구했다면 입학도 안했을 테고 했더라도 중간에 떨어져 나갔을 꺼구요.&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일단은 그 해답에 대해서... 우리에게도 답은 없구요. 똑같이 계속 고민해가는 거구요. 여러분들과의 차이라면 처자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 정도일 텐데... 그 고민들을 안고 삶과 싸워야 되는 거죠.  젊을 때는 나이가 많아지면 그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지 않나 싶었는데 나이가 많아져도 고민은 계속 되더라구요. 제가 개인적으로 미성숙해서 고민이 지속되거나 하는 건 아닌거 같구요. 그냥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그것이 의미 있는 거 같아요. 끝까지 그러면서 가는 거 아닌가 ... 하죠.&lt;br /&gt;&lt;br /&gt;&lt;b&gt;4. 에피소드&lt;/b&gt;&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가벼운 환기를 주기 위해서... 전형적인 인터뷰 같은 질문을 좀 해본다면... 앨범 제작 과정 가운데 무슨 에피소드 같은게 있으셨는지... (웃음)&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제작 자체가 에피소드가 아니었을까 생각은 하는데... (웃음)&lt;br /&gt;&lt;br /&gt;SSccm_김혜라: 앨범의 가사들이 동일하게 '사랑'을 많이 강조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졸업'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어요. '졸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다운되곤 했었구요. 작업을 진행하면서 하나님은 졸업이 끝이 아니라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셨는데... 앨범을 통해서 저 혼자의 발견인데... 내가 나눌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테고, 그 사랑은 복음일 텐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아까 빼먹은 이야기인데... 앨범 재킷을 보면 선물 포장처럼 되어 있거든요. 해라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4학년 24명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서로에게 선물 같았어요. 졸업연주도 그런 주제로 했고,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런 말씀이 있는데 결국은 각각의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서로 사랑하면서 발견하고 알아가게 되었고 그런 의미로 앨범 재킷도 이렇게 했어요.&lt;br /&gt;하면서 계속 부딪히고 힘들었던 부분들이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이끌고 마음을 모으고 사랑이 없었으면, 그리고 서로 서로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는 확신이 없었으면 못했을꺼에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되게 많았어요. 왜냐하면 저한테 돌아오는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사단의 속임이 많았어요. 이 음반 준비하면서 졸업준비도 같이 해야 하는데 소스를 받은 이후의 시간들은 다른 사람들은 졸업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할 수 있는데, 저는 믹싱하고 마무리하고 진행하느라 그런 준비들을 못했어요. 제 시간을 투자해야 되고, 아이들 마음을 모아야 되고, 재정을 항상 고민해야 되고, 졸업연주까지 계속 신경을 써야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랑과 확신이 없었다면 못했을 꺼에요. 포기했을 꺼에요. 그냥 대충 만들었을 꺼에요. 그러기 쉬웠는데... 해라도 이야기 했지만, 분명 음반에 담겨있는 건 서로 서로를 향한 사랑과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라는 확신들이 가능하게 한 .. 거에요.&lt;br /&gt;그리고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계속 관심가져주시고 기도해주시고 특히 강명식 선생님 같은 경우는 하루 종일 쉬는 시간 없이 레슨 하시고 그러셨는데도 저녁에 또 믹싱하는 거 도와주시고 일주일 동안 시간도 내주시고 하나 하나 다듬어 주시고 저희가 부탁했을 때 한번도 싫은 내색도 안하시고 ... 선생님들이 큰힘이 되었던 앨범이었어요.&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또 하나는... 여름에 녹음을 하다보니 그냥 방에서 녹음을 하는데, 에어컨 소음 때문에 에어컨을 틀 수가 없는거에요. 땀 뻘뻘 흘리면서 녹음 하구 그랬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그리구 밖에서 떠드는 애들 소리도 녹음되고 그런게 있어요. (웃음)&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이렇게 좋은 작업을 진행을 했더라도 ... 아쉬움이 있었을 텐데... 어떤 부분이 제일 아쉬웠나요?&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우선은 믹싱이... 많이 아쉬웠구요. 모두 시간이 없으니까 녹음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이 없어서...더 많이 못 불러보고 자세히 작업하지 못했던게 아쉬웠어요. 그리고 장비가 너무 아쉬웠는데, 저같은 경우 솔직히 장비가 없거든요. 없는 가운데서 작업을 하려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우리는 사실 최근 까지 나오고 있는 주류 CCM 앨범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그런데 졸업작품 앨범을 들으면서 그런 아쉬움을 찾을 수 없었어요. 한 곡도 그냥 지나쳐버릴만한 노래가 없었어요. 나름의 색과 메시지를 나름대로 충분히 보여줬는데...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충격적이더라구요. 그래야 기본인데, 여러분들이 엄청 잘해서라기 보다는 그게 기본이라는 건데... 우리가 (주류 CCM에서) 듣고싶은 건 그런 거거든요.&lt;br /&gt;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주류'가 오히려 그것이 그 자신을 제한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구요.&lt;br /&gt;여러분들은 혹시 그런 주류적인 CCM음반들에 대해서 비평이나 그런게 아니더라도...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그냥 제가 느끼는 건... 분명히  자신들이 자신의 언어로 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자신이나 기획사와의 타협이나 설득으로 가려지고 엎드리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우리 과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들어 주신 것일 수도 있을 꺼 같애요. (웃음) 호창이가 이야기한 그런 건 있는 거 같구요. 우리도 나가서 음반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돈이 있지않는 한, 당장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기획사에 들어가게 되면 기획사의 의도나 촛점에 맞춰야 되니까.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나 메시지가 다 전달이 안될수도 있겠고... &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사실 그럴 수 있는... 돈을 투자할 수 있을 만한 기획사가 현재는 없어요. 그래서 신인 아티스트가 주류로 성장하는 건 너무 어려워졌어요. 기성 아티스트도 힘든 상황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앨범을 하나 내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 의지가 없는 거에요. 아까 말했던 굉장한 다운그레이드가 되서 나오고... 들으면 너무 답답한거에요. 좀 거칠더라도 상관은 없는데... 메시지의 노래라면 뭔가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나.. 이런 갈증들이 있어 왔는데 이 앨범을 들으면서는 보컬이 어떻건 믹싱이 어떻건 어쨌던 간에 말하고 있는 것이 있더라는 거죠.&lt;br /&gt;&lt;br /&gt;CCMER_이지음 : 다른 앨범 들으면 어떤 때는 보상 심리를 느끼곤 하는 데 ... (웃음) 보상이 됐어요. (웃음) 사실 저는 최대한 편견이나 기대감을 버리고 앨범을 듣고는 하는 데... 곤란해졌습니다. 향후 여러분들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 여러분들한테 안 좋을 수 있어요. 저를 조심하세요. (웃음)&lt;br /&gt;&lt;br /&gt;&lt;b&gt;5. 현실적인 이야기&lt;/b&gt;&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죠. 향후...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lt;br /&gt;졸업하시면 뭐하실 꺼에요.&lt;br /&gt;&lt;br /&gt;SSccm_김태경 :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인데, 은주도 해라도 이야기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팀사역에 대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어요. 주변에는 많은 강명식들이 선교단 활동을 하셨었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좋은 것들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들은 우리 안에 강한 룰을 만들어서 하면 잘 정리되고 하면 다양한 사역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들이 있었구요. 좀 새롭고 창조적인 시도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낙태라던지 미혼모라던지 ...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곡이라던지, 꼭 죄에 대한 부분이 아니더라도 생명없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보고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대중성 이런거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구요. 왜냐하면... 과가 생긴 이후로 한 100명 정도가 이곳을 다녀갔는데 실제로 사역하는 사람은 안찬용 밴드 외에는 없는 거에요. 저는 그게 안타까왔어요. 꼭 음반을 내야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4년 동안 우리 학교를 다니고 졸업했으면 뭔가는 하나 정도는 노래라도 만들어서 세상을 향해 외치거나 공동체를 향해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들이 별로 없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lt;br /&gt;&lt;br /&gt;아직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은 것 같아요. 뭔가를 책임져야 하고 비판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재정에 대한 두려움, 졸업에 대한 부담... 이런 것들이 있는데... 시도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고, 세상을 향해 그런 음악들이 많이 만들어 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lt;br /&gt;&lt;br /&gt;구체적으로는... 일주일에 세번씩 몇명이서 마음을 함께 하고 만나고 있거든요.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모습이 될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유명해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밑바닥에 가더라도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될꺼 같아요. 그런 고민들에 대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을 해결책으로 주셨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그런 노래들을 부르고 싶구요. 그런 가능성들에 대해서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SSccm_안호창 : 저는 ... 구체적으로 잡힌 계획은 없구요. 제 나름대로 꾸준히 곡을 써 나가고 있고... 쥐어 짠다고 나오는게 아니니까 삶에서 느끼는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씩 만들어 보고 있고요.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고는 있는데 제가 마음이 가는 쪽은 앨범인거 같아요.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 온 곡들을 앨범에 담아보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현실적인 것들 생각하면 쪼금 불안하긴 한데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 기도하고 있어요.&lt;br /&gt;&lt;br /&gt;SSccm_전현정 : 말세를 준비하자. 이런 마음이구요. (웃음) 그거 되게 뒤쳐진 말인거 같지만 세상이 끝으로 향해 가고 있는게 막 눈으로도 보이고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더 많이 생각하자라는 마음이 있구. 그래서 음악을 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또 중요한게 내가 삶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느냐 이구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음악이 있게 하는, 대중이 있게 하는, 산업이 있게 하는, 정치가 있게 하는 원리들에 대해서 좀 더 공부를 하려고 저는 학교를 다시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lt;br /&gt;&lt;br /&gt;CCMER_박기범 : 지난 번에 졸업연주를 보면서 꿈이 있고 ...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표현하는 그런 것들이 보기 좋았어요. 그냥 그렇게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구요. 물론 재정적인,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과정이니까. 그냥 이렇게 부담없이 생각하시면 좋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풍족할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고, 먹을게 떨어질 수도 있고, 없으면 굶을 수도 있고, 편안하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하신거면 그렇게 하시더라구요. &lt;br /&gt;어쨌든 품고있는 열정과 재능으로 표현되는 귀한 것들이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구요. 부딪혀서 왜곡되거나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lt;br /&gt;그래서 아까 말하던 그런 것들 힘들 때 서로 격려하고 서로 사랑하고 쭉 가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기대합니다.&lt;br /&gt;&lt;br /&gt;all : 감사합니다&lt;br /&gt;&lt;br /&gt;&lt;br /&gt;앨범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lt;br /&gt;&lt;a href=mailto:nacupenda@hanmail.net&gt;김태경님&lt;/a&gt;께 연락해보세요. ^^&lt;br /&gt;&lt;br /&gt;http://ccmer.com/site/bbs/tb.php/interview/18&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6397479725048244005?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6397479725048244005/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6397479725048244005&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397479725048244005'/><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397479725048244005'/><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1/ccm.html' title='숭실대 CCM과 졸업생들을 만나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xSKMVP0I/AAAAAAAAAcI/95yYHwh_TKs/s72-c/226d3bac_interview_200501.jpg'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4364389410001829062</id><published>2005-01-17T03:57: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4+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예배를 예배로 말하다 - Darrell Evans [Consuming Fire]</title><content type='html'>내가 들었던 Darrell의 전작은 호산나 인테그리티의 모던워십 레이블 버티컬에서 나온 Freedom 뿐이다. 당시 나에게는 생소했던 개념인 Studio Worship이라 할 수 있는 Freedom을 통해 내 머릿속에 그려진 Darrell Evans 의 모습은 'Cool 하고 열정적인 젊은 피'였다.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해본다면, 이것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lt;br /&gt;&lt;br /&gt;Freedom의 모든 노래들은 모두 좋은 노래들이었다. 강렬하고 참신한 멜로디의 새 노래들과 스튜디오 작업 답지않은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깔끔한 연주, 그리고 그 노래들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신예 워십리더의 열정. 이 모든 것은 앨범을 산 이에게 넘치도록 좋은 선물일 수 있다.&lt;br /&gt;&lt;br /&gt;그런 좋은 앨범에서 내가 느꼈던 유일한 이질감은 '너무 쉬운 가사'였다. 계속 해서 반복되는 쉬운 가사와 풍성하면서도 깔끔한 연주. 뭐랄까... 과장을 좀 보탠다면, 정글에서 방금 나온 타잔에게 말끔한 알마니 양복을  걸치게 한 것 같은 엉뚱함을 느꼈다. 예전에 다른 앨범의 리뷰를 하면서도 언급했었던 '정직한 노래'와 '기름진 포장'의 충돌이 심각하게 느껴졌었는데, 그 앨범을 처음 접했을 당시 그 차이 자체를 인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부른 이 - performer - 와 노래를 만든 이 - creator - 가 같은데 어떻게해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lt;br /&gt;&lt;br /&gt;그럼에도 그 앨범에 대해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다. Darrell의 노래들이 힘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빠른 비트'의 노래라거나 '잘 만든 곡'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짧고 쉬운 가사 뒤에는 그 가사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다양한 삶의 고민 들 - 아마도 그가 추구하고 부딪혀왔던 것들 - 과 본질적인 하나님의 의지 - 삶속에서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대답  - 가 녹아 있었고, 그것이 쉽지만 강한 멜로디 속에 묻어서 그 힘을 더하고 있었다. 이런 노래를 만들만한, 결코 녹록치 않을 이 젊은 워십 아티스트의 앨범에서 그런 '이질감'을 느낀 내가 한심할 따름이다.&lt;br /&gt;&lt;br /&gt;한국의 CCM에 대해서 깊은 애정이 있는 나로서는 외국의 앨범에 대한 리뷰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만약 어떤 아티스트의 전작에 대해서 위에 기술한 정도의 불만이 있었다면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Darrell Evans의 이번 앨범을 리뷰하는 것에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그가 껍질을 벗었고, 나는 편견을 벗었다.&lt;br /&gt;&lt;br /&gt;버티컬/호산나의 껍질을 벗고, 어쩌면 한층 더 Minor 한 모습으로 다가온 Darrell의 신작 Consuming fire는 그래서인지 더욱 직설적이며 더 거칠다.  이것은 기름진 보컬과 풍성한 악기들을 투입해서 앨범의 가치를 일부러 높여내려는 의지를  가진 - 그때문에 변조되어지거나 상쇄되어지는 예배의 감성 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 여타의 다른 예배 음반들 보다 반갑다.&lt;br /&gt;이 앨범을 음악의 구성으로만 살펴 본다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예배상황 - 기본적인 밴드 (드럼, 베이스, 기타) + 예배인도자 + 보컬 - 과 같다. 물론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의 Paul Baloche나 Charlie Hall 등의 '굉장한' 이름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름 때문에 목에 힘주며 자기 자리에 생색내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각자가 더 겸손한 자리를 찾아가려 애쓰는 듯 보인다. 그것이 어쩌면 이 앨범에서 만나게 되는 '건조한 감동'과 일맥상통한 것일른지도 모른다. 이펙터를 번지르르 하게 발라대고 오감을 자극하는 온갖 싱코페이션에 '샤랄라'하는 백보컬같은 것은 그야말로 약에 쓰려 찾아봐도 없다. 그건 이 앨범에서 찾아야 할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음정이 불안하기도 하고, 별다른 수식이나 대단한 형용을 하지 않는 가사는 영어에 문외한인 나에게 조차 그 감성이 전달 될 정도로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이 앨범은 분명히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 목적이 무엇인가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우선 Darrell의 건조한 정직함에 감동하고 말았다.  꾸미지 않고 맞짱(?) 뜨는 이러한 정직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예배의 마음 중 일부가 아니겠는가.&lt;br /&gt;&lt;br /&gt;대단한 연주 없이 예배자들의 자연스럽고 소란스러운 예배의 소음을 담아낸 첫번째 트랙인 Worship Intro에서 부터 이 앨범의 의도는 전달되어진다. (그러나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의도를 인지할 수 없었다.)&lt;br /&gt;첫번째 노래인 Consuming Fire는 예배의 본질적인 시작점이 어디인가를 알려준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사르는 불'이며, 그 앞에 나의 모든 것 - 존재와 소유 - 를 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을 담담하고 간단한 가사로 힘주어 노래한다. &lt;br /&gt;계속해서 이어지는 노래들은 역시나 간단하고 쉽지만, 그것을 쉽게 '고백'하기에는 만만치 않을 가사들로 채워진 노래들이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모양을 덧붙이며 목적의 형체를 드러낸다.&lt;br /&gt;우리에게 길되신 예수(Jesus I Come To Follow), 양인 우리에게 목자되신 예수 (Anywhere with You),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예수(Precious Jesus).... 그 분의 '높으심'을 단순하게 노래하기도 하고 (Exalted), 오직 주만이 찬양받으시기 합당하다고 노래하기도 한다. (Blessed be the Lord) 그리고는 바로 예배의 자리가 하나님과 뛰노는 곳이라고 노래한다. (Fields of Grace) 어느 한 노래도 그다지 겹치는 부분 없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사실은 예배는 그런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예배는 바로 그거다. 하나님과 사람의 소통. 우리가 흔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Consuming Fire는 그 목적을 위해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예배이다.&lt;br /&gt;&lt;br /&gt;내가 이 앨범에서 내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았던 순간이 있다. 바로 Just as I am 으로 부터 Harp In My Heart로 연결되어지는 흐름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 이전 트랙들로 부터 차곡 차곡 쌓여가는 예배의 흐름에 순전히 예배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나'라는 존재를 그대로 받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만지시는 손길을 느낀거다.&lt;br /&gt;앨범 전반을 통해 그 무엇과도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예수의 보혈로 나를 사시고  유일한 오직 한 분(The One and Only)이 되신 하나님, 그의 임재 앞에 그 집으로 들어가 다만 엎드려 나의 전 존재로 예배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Just as I am...  이 자연스러운 예배의 흐름이 말하는 엄청난 메시지앞에 내 온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그런 내 존재를 악기로 연주하시며 노래하시는 하나님 (Harp In My Heart)... 특히 Harp In My Heart의 실질적인 주인인 Kevin Prosch 의 자유롭게 흩날리듯 부르는 노래와 Harp 를 연주하듯 가만 가만 스트럼 하는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에서 전해지는 정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예배안에서 내 의지를 바로 세우겠는가. 두손 두발 다 들고 그냥 끝까지 따라가면서 예배했다. 이것이 얼마나 기쁘던지.&lt;br /&gt;&lt;br /&gt;사실, 내가 Darrell에게 관심이 있었던 가장 큰 이유 들은 음악으로 들리는 외적인 것이었다. 분명하게 후킹이 나오는 멜로디와 코드, 그리고 적절하게 안배되어있는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들 - Shane barnard 처럼 지판 전체를 아우르는 테크니컬한 연주도 좋지만, 단순하고 깔끔하게 연주하면서 곡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Darrell 의 연주가 개인적으로는 더 좋다. - 에 대한 관심이 이 앨범을 '리뷰'하게 했지만, 결국 내가 이 앨범에서 찾은 건 '예배'이다.&lt;br /&gt;예배음악을 '음반'으로 만나게 될 때라면, 사실 이런 예배의 감성을 만나게 되길 소망하지만, 최근의 예배 앨범들이 잘 불리워지는 예배곡들을 모듬으로 선사하면서 음악적인 차별성을 힘주어 강조하는 것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후로 만나게 될 '예배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어느 정도는 접고 가는 수 밖에 없다. 안그러면 엄청난 실망감에 한숨만 쉬게 될테니.  &lt;br /&gt;&lt;br /&gt;Consumin Fire 는 그런 부분에 대해 일부러 답하려 하지 않았지만 모범 답안이 되고 있다. 좋은 예배의 흐름을 음반 안으로 자연스럽게 이끌고 들어왔고, 그 안에서 단순하지만 엄청난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혹시라도 이 앨범을 음악의 영역에서 분석하려 한다면 정말 많은 헛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노래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믹싱이라던가 라이브 엠비언스 처리에 신경을 안쓴티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라이브의 현장감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마련된 장치일 수도 있지만, 그런것까지 신경쓴것 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이 예배'라고 담담하지만 힘있게 앨범으로 말하는 Darrell Evans의 의지가 엿보일 뿐...&lt;br /&gt;나는 Consuming Fire을 들으면서 '예배'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이 내 이전의 편견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Consuming Fire 는 납득할만한 쉬운 예배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예배'이다. 라이브의 질감이 느껴진다거나 대단한 곡이나 퍼포먼스가 생동감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 -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 - 로의 접근이 이 앨범을 통해 예배할 수 있게 했다.  나는 이것이 '예배 음반'의 본연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것이 이 음반을 통해 전달되어야 할 탁월한 '가치'이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4364389410001829062?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4364389410001829062/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4364389410001829062&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364389410001829062'/><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364389410001829062'/><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5/01/darrell-evans-consuming-fire.html' title='예배를 예배로 말하다 - Darrell Evans [Consuming Fire]'/><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3797136879263144225</id><published>2004-12-09T14:12: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가상논란. 컴필레이션, 그들이 시장을 지배할 때</title><content type='html'>&lt;span class="ct lh"&gt;#A. affirmative _ 어느 음반유통사의 직원 왈:&lt;br /&gt;"컴필레이션 덕분이다.&lt;br /&gt;컴필레이션 덕분에 그나마 죽어가던 시장이 아주 죽지는 않았다. 불황이라고 해도 역시 컴필은 팔리지 않는가? 이 시장의 마지막 교두보는 컴필레이션이다.&lt;br /&gt;게 다가 컴필레이션은 혼란한 아티스트 계의 건전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적어도 컴필에 실리는 가수가 노래를 못하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좋은 가수를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게다가 앨범 하나만 사면 이 사람 저 사람의 노래를 모두 만날 수 있으니 이래저래 손해 볼 것이 없다.&lt;br /&gt;제작비는 어떻구, 저작권료만 해결하면 재킷 디자인 비용과 CD 출판 비용만 필요하니, 이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앨범은 없다. 녹음실에 쳐박혀 몇 달을 궁상을 떨어가며 폐인으로 지내는 것 보다 이 얼마나 깔끔한 과정인가.&lt;br /&gt;게다가 컴필은 구매자의 욕구에 민감하다. 구매자가 원하는 노래들을 잘 메뉴화 해야만 하는 것이 컴필레이션이니 당연하지. 자연스럽게 '구매자가 원하는 앨범'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lt;br /&gt;제 작비가 적게 들었으니 저렴하게 파는게 어떠냐고 한다면, 뭐가 어찌 되었건 구매자에게 돌아가는 건 넘쳐나는 좋은 노래들이 가득한 CD이다. 아티스트 개인의 앨범을 사봤자 그 안에 건질만한 노래가 몇이나 되나. 여러모로 컴필이 답이다. 새롭게 녹음을 한다고 해도, 별로 어려울 것은 없다. 결국은 '반응이 좋은 노래'를 녹음하면 되니까. 새로운 앨범? 새로운 아티스트? 그런게 왜 필요하지? 컴필레이션으로도 그런거 되잖아."&lt;br /&gt;&lt;br /&gt;&lt;br /&gt;#B. negative_어느 아마추어 크리스천 아티스트 왈 :&lt;br /&gt;&lt;br /&gt;"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lt;br /&gt;어째서 컴필레이션 앨범만 만드는 거냐.&lt;br /&gt;결 국 컴필레이션이란것도 좋은 앨범이나 좋은 노래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작은 시장에서 컴필레이션만 힘주어 강조되니 좋은 앨범이 설만한 자리가 있는가. 당연하겠지. 아무래도 컴필레이션으로 돈을 번 사람이 기회를 더 많이 가진 것일 테니.  그러다 보니, 자신의 앨범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는 점점 적어지고, 그 활동의 장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컴필레이션이 선택해 주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보컬 능력이 뛰어나거나, 외적인 면으로 평가되어지기 쉬운 사람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심지어 컴필레이션 앨범에 어떤 아티스트의 노래가 있고, 이 보컬이 거기서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좋은 아티스트'를 가름하는 척도처럼 되어버린 이런 상황은 분명히 주객이 전도된 것이리라. 결국 컴필레이션 음반을 쥔 자가 시장을 흔들고 그 중심이 되며, 아티스트의 대표 처럼 스스로 선다.&lt;br /&gt;이건 무슨 모럴헤저드도 아니고, 너무 한다 싶다."&lt;br /&gt;&lt;br /&gt;#C. My Desk.&lt;br /&gt;컴필이건, 컴필이 아니건 문제는 상업주의이다.&lt;br /&gt;컴 필레이션 음반을 비롯해서, 상업주의가 우선 된 크리스천 음반제작의 문제점은 '정체성'이야할 사역성이 사업의 부수적인 효과 정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성이 강조된 음반 작업은 예술적 의지나 선지적 요구 보다는 상업적인 이윤에 대한 욕구와 이를 위한 산업적인 접근이 우선한다.&lt;br /&gt;상업주의적인 음반이건 그렇지 않은 음반이건 소비자는 웃을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것은 마릴린맨슨 만큼이나 위험하다.&lt;br /&gt;&lt;br /&gt;&lt;a href="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49"&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49&lt;/span&gt;&lt;/a&gt;&lt;br /&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3797136879263144225?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3797136879263144225/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3797136879263144225&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797136879263144225'/><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797136879263144225'/><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4/12/blog-post.html' title='가상논란. 컴필레이션, 그들이 시장을 지배할 때'/><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3452049408736778124</id><published>2004-11-04T23:35:00.000+09:00</published><updated>2007-07-06T06:01:20.92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내가 간절히 바라는 노래들은</title><content type='html'>&lt;div style="margin:10px;color:gray;font-family:바탕;"&gt;얼마전 어느 교회에서 드럼 연주를 하는 형을 만나게 되었다. 앨범 작업도 여럿 거쳐왔고, 레슨이나 강의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형이었는데, 오랜만에 나를 만나서는 '요즘 CCM 앨범들이 얼마나 팔리느냐'라는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누구는 얼만큼 팔렸다. 누구는 망했다 하는 '카더라'식의 이야기가 잠깐 흘렀는데, 문득 들었던 생각은 '왜 우리가 이런 것들을 염려하는 가' 였다. 그 형은 드러머이지만, 그저 단순한 세션이라기 보다는 예배사역에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한명의 아티스트였고, 난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CCM의 산업화에 대해서는 의지적으로 저항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산업화'에 대한 것이었고, 생각해 보니, 대부분의 '아티스트'들, 혹은 음반기획자들이 '음반'을 '상품'으로 착각하고 있는 풍조가 만연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도달한 이야기는 &lt;b&gt;'앨범은 그 아티스트의 정체성이자 자식이다. 작품이고 삶이다'&lt;/b&gt; 였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낼 수 있었던 대답은 아니었다. 최근 어려운 상황안에서도 아마 그리 팔리지 않을 만한 앨범을 출시한 어느 부부 아티스트를 생각하며 언급되었던 이야기였다. 역시 그게 좀 더 이상적인 답이 아닐까 싶다. &lt;/div&gt;&lt;br /&gt;&lt;br /&gt;&lt;b&gt;고민은 움직이는 거다&lt;/b&gt;&lt;br /&gt;좀더 들어보고 싶고, 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고, 흉내내어 만들어보고 싶은... CCM. 좋은 CCM을 만드는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그 사람에게 좋은 가치관을 배우는 것. 이런 일들은 과연 이상안에서만 존재하는 일일까?&lt;br /&gt;사실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안에는 먼저 CCM의 정체성을 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건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가 만난 어떤 사람도 이 정체성의 부분을 모두가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이 '정체성을 정하는 부분'에 다들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는 것이고, 그 부분에 너무 힘주고 있다는 거다. 무엇이건 먼저 고민해보고 답을 찾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는게 좋은 결정일 수 있겠지만, 이게 '길찾기'에는 상당한 방해가 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하고 고민하는 건 좋지만, 그 고민 때문에 굶어죽는 건 곤란한 것 아니겠나. 고민은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면서 새로운 고민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이전 고민에 대한 새로운 답도 얻을 수 있는 것이리라. 사실 '정체성을 정하는 고민' 역시 '말'로 풀어내기엔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스스로 살아내면서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완전한 모든 것'을 보여주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스스로 '정답'에 대한 가능성을 유연하게 열어두었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고민없이 움직이는 것 역시 그 자체의 괴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이미 위에서 예로 든 아티스트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없이 움직이는것에 대한 살아있는 실례이다.&lt;br /&gt;이러한 움직이는 고민 안에서 내 스스로 '틀리거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재하며, 나의 이상 속의 것 - 나름대로의 고민과 행동안에서 유추되어진 - 바람직한 CCM, 내가 꿈꾸는 CCM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보려한다. 실은, 이미 다른 지면을 통해 이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낸적이 있었으나, 내 안에서 정직하게 드러낼만한 지금의 정리가 여기까지라는 것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lt;br /&gt;&lt;br /&gt;&lt;b&gt;내가 바라는 CCM은 이런 노래이다.&lt;/b&gt;&lt;br /&gt;지금까지 이야기 되어온 'CCM'을 문자 그대로 풀어본다면, 동시대성을 옷 입은 기독교적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의 부분에서 동시대성을 지녔다면, 내용의 부분에선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의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lt;br /&gt;&lt;ul&gt;&lt;li&gt;예배에 관한 노래 -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함. &lt;/li&gt;&lt;br /&gt;&lt;li&gt;선교가 주제인 노래 - 동시대성을 옷입고 비기독교인을 선교함. &lt;/li&gt;&lt;br /&gt;&lt;li&gt;교제에 대한 노래 - 교회 내의 기독교인에게 영적인 자극을 주고 함께 교회를 이루는 것을 도움 &lt;/li&gt;&lt;br /&gt;&lt;li&gt;일상을 표현하는 노래 -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지닌 자신의 신앙 고백, 혹은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함&lt;/li&gt;&lt;/ul&gt;&lt;br /&gt;&lt;br /&gt;&lt;br /&gt;이것을 목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라도 '목적'이란 단어를 피하고 싶다. 음악을 단순한 매개물로 보기 시작한다면, 그 때부터 그 음악을 통해 전달되어지는 감성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래에도 이야기 하겠지만, 그것은 작품의 순수함을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 위의 정리는 교과서의 목차처럼 단순하게 '내용을 묶어서 분류함' 정도로 이해해주기 바란다.&lt;br /&gt;&lt;br /&gt;내용을 위와 같이 정리하면서,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이미 CCM이라는 단어 안에 내제된 동시대성이 가장 큰 부분이라고 본다. CCM이 형식의 부분에서 갖추어야 할 동시대성 안에는 사역성 (실질적인 사역의 효과, 선지자로서의 CCM), 작품성(작품으로서의 CCM,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대중성(동시대성, 대중을 올바로 이해한 CCM)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보는데, 그 균형이 중요하다. 특히 CCM의 외적인 형태의 부분에서 드러나야할 이 요소들은 사실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기 보다는 내면의 것이 바깥으로 표현될 때 자연스럽게 발생되어지고 선택되어지는 좋은 것들이어야 한다. 내면의 참된 아름다움이 동시대의 미적 가치관을 통해 표현되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lt;br /&gt;&lt;br /&gt;CCM은 그 주제안에서 온전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올바른 사역성을 지닐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노래가 하나의 주제를 완전하게 끝마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때로는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끝내야 하는 경우도 있어야 하고, 여러가지 상황과 가능성안에서 노래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오히려 하나의 노래 안에서 메시지를 모두 전달하려는 욕심에 균형감각을 잃은 채 가사를 우겨넣게 되면 이미 그 욕심이 노래를 지배하게 되며 사역성이건 작품성이건 물 건너가게 된다.&lt;br /&gt;어떻게 해야 온전한 사역성을 지닐 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 노래를 통해 실질적인 사역이 발생할 수 있으면 된다. 예를 들어 '선교'가 주제인 노래라면, 실질적인 선교가 발생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님 믿으세요'라는 가사만 있으면 선교적인 노래라고 볼 수 있을까? 그 노래를 듣고 과연 선교가 가능한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정직하게 이야기해본다면 사실은 더 힘들다고 본다.&lt;br /&gt;의도와 목적에 노래를 우겨넣을 때 그 노래는 '진심어린 것'이기 힘들다. 그래서 CCM은 캠페인송이 되기 쉽다. 처음 부터 캠페인송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면 상관이 없겠는데, 이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리고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지니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서든 캠페인송만은 면해야 하지 않겠나.&lt;br /&gt;사실 동시대적인 미적 균형을 지녔다면, 이 문제는 아무 문제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역설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대적인 감성으로 표현되어진 진리는 이미 온전한 사역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lt;br /&gt;그리고 이러한 미적 균형은 아티스트로서 스스로 진화시켜야 할 무기이다. 지난번과는 좀 더 나은 것을 향한 추구, 좀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려는 창조적 의지가 이것인데, 지금까지 말한 모든 부분들이 끝없이 추구해 나가야 할 덕목이겠지만, 이것이 바로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결정짓게 하는 척도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티스트가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이것은 자연스럽게 작품성과 연결된다. 정직한 창조적인 미학에의 추구는 최소한 '자기 복제 ( 예를 들어, 자신의 이전 작품에서 차용한 작곡 )'를 하지 않다. 표절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그 아티스트의 수준을 높이고, 분야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 된다. 지금 이 땅의 CCM에는 미적인 추구가 몹시도 필요하다.&lt;br /&gt;&lt;br /&gt;어째서 나는 한국의 CCM에게 '미적인 추구'가 절실하다고 하는가? 한국에서 CCM을 만드는 사람들이 몇년동안 비슷비슷한 노래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팔린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잘 팔렸던 앨범의 음악적인 스타일과 멜로디, 그리고 코드진행을 그대로 답습해야 이번에도 잘 팔리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쉽고 단순하고 예쁘게 만들어야만 대중이 선택한다는 건데... 내가 보기엔 대중을 너무 '띄엄 띄엄' 보는게 아닌가 싶다.&lt;br /&gt;대중성을 오해한 예는 또 있다. 동시대성을 '스타일'로만 이해할 때 생기는 오해인데, 예를 들어, 댄스 음악이 유행이기 때문에, 혹은 랩이 유행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 기교를 흉내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완성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CCM의 가능성을 좀 더 열어 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다른 예로는 동시대성을 현대화된 악기 하나로 대변하려는데서 오는 이질감이 있다. 일렉트릭 기타가 아무리 동시대적인 악기라고 하더라도 10년전에 유행하던 스타일의 Rock을 고집한다면, 이것이 과연 '동시대성'을 올바로 이해한 좋은 사역이 될까? 아니면,  그냥 한 아티스트의 예술혼(혹은 예술적 감성의 추억)을 불태우는 일이 될까? 물론 어떤 추억을 상기시키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테고, 우리나라 처럼 밴드 형태의 Rock이 없는 상황에서는 존재 자체에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동시대적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렵다.&lt;br /&gt;이 모든 것은 동시대성을 오해한 가치관으로 '대중'의 위치를 가늠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닐까? (혹은 '대중'에 대한 고민이 없었거나) 어쩌면, 지금의 한국 CCM 아티스트는 현실을 읽어내려는 의지 없이 대중 문화의 코드만을 CCM 적(?)인 가사에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lt;br /&gt;상식적으로만 놓고 생각을 해봐도 CCM의 동시대성은 형식적인 면 보다는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내적인 감성의 면에서 표현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현실을 아우르는 선지자적 영감이 CCM 아티스트에게는 필요하다.&lt;br /&gt;&lt;br /&gt;&lt;b&gt;CCM은 삶으로 부르는 삶의 노래여야 한다.&lt;/b&gt;&lt;br /&gt;구체적인 것에 대한 언급을 피해본다면, 아티스트도 노래도 스스로 '작품'으로서의 자각을 지니면 되는 데, 크리스천 아티스트라면 여기에 한가지가 더해져야 할 것이다. 그 노래들에 자신의 삶이 실려야 한다. 그 노래를 통해 하는 고백이나 메시지가 자신이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없다면 말이 안될테고, 그 노래의 방향성과 삶의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면 그 자체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거짓으로 노래할 수 있다면 별거 아니겠지만.&lt;br /&gt;삶의 방향성과 노래의 방향을 일치시키려면, 삶을 통해서 고민해왔던 것을 노래하거나, 자신이 받은 넘치는 은혜를 그대로 흘려보내도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이 정직하게 반영되는 노래를 하는 것. 이것이 삶의 노래를 부르는 방법이리라. 그러나 이 부분 만큼은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노래하는 이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를 기대할 수 밖에. 노래하는 사람이건 만드는 사람이건, 연주하는 사람이건, 음반 제작을 돕는 사람이건간에, 스스로 하나님앞에서 정직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며, 이 자각이 단순한 찰라의 명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으로 연결 될 때, 그리고 그 삶으로 표현되어질 때, 비로소 노래는  삶으로 부르는 것일 수 있다.&lt;br /&gt;&lt;br /&gt;&lt;b&gt;내가 꿈꾸는 CCM은&lt;/b&gt;&lt;br /&gt;내가 꿈꾸는 CCM은 상품이 아니라 노래이다. 사역이 아니라 노래이다.&lt;br /&gt;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아는 이가 그것을 이기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한 노래를 부르는 세상.&lt;br /&gt;예수를 모르던 이도 그 자연스러운 당당함에 매료 될 수 있는 세상&lt;br /&gt;그 아름다운 노래와 삶을 함께 누리는 세상.&lt;br /&gt;이것이 내가 꿈꾸는 CCM 세상이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3452049408736778124?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lated' href='http://ccmer.com/site/bbs/tb.php/column/41' title='내가 간절히 바라는 노래들은'/><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3452049408736778124/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3452049408736778124&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452049408736778124'/><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3452049408736778124'/><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4/11/blog-post.html' title='내가 간절히 바라는 노래들은'/><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113872381965206490</id><published>2004-10-30T01:01: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2.423+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가사와 곡조에 이유를 멋스럽게 담아내는, 그 만듦새의 아름다움이여 - 이무하 2집 [다시 동산으로]</title><content type='html'>&lt;span style="font-size:85%;"&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ZR6MVPSI/AAAAAAAAAX4/xT47YkWAd4Q/s1600-h/honor.jpg"&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ZR6MVPSI/AAAAAAAAAX4/xT47YkWAd4Q/s400/honor.jpg" alt="" id="BLOGGER_PHOTO_ID_5082269606212877602"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lt;br /&gt;&lt;img src="http://photos1.blogger.com/blogger/8117/426/1600/honor_01.0.gif" alt="" border="0" /&gt;&lt;br /&gt;&lt;br /&gt;어느 작품이건 나름의 미적 기준과 가치에 의하여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나름'이라고 전제한 이유는 모든 작품의 미적기준과 가치를 한꺼번에 정할 '절대 가치'에 대한 내 의심 때문이다. 물론, 삶의 궁극적인 가치의 절대기준인 '말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양한 아름다움을 누리고픈 유연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예배곡에는 예배곡 나름 대로 완성과 가치를 말할 수 있는 기준을 두어야 할 것이고, Rock은 Rock 나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존재한다. 그 가치의 다름을 인정할 때, 다양하고 유연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lt;br /&gt;&lt;br /&gt;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관이긴 하지만, 내 스스로 그런 유연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확언하기 힘들다. 스스로 '잡식성'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겐 좋아하는 음악과 싫어하는 음악이 분명하게 있고, 어쩌면 편협할 수 있는 내 기준에 의해 내가 접하는 작품에 대한 만듦새를 평가하곤 한다.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하지만, '어설픈 만듦새'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이런 부분은 크리에이터로서는 잃지 말아야할 덕목일 수 있겠지만.)&lt;br /&gt;&lt;br /&gt;&lt;br /&gt;이러한 편협한 내 기준 안에서 충분하게 아름다운 작품은 몇 없는데, '이무하'는 내가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수긍하는 '균형 있는 만듦새'의 좋은 본이다. 91년, 첫앨범인 [고향]을 발표한 이무하는 이 앨범에서 그의 색채를 담담하게 풀어냈고,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그다지 크게 영향 받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당시의 '하나기획'의 앨범들이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시적 완성도와 적은 편성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편곡도 좋은 편이지만, 역시 좋은 것은 이무하의 가락과 가사였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그의 음색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서 말할 수 있으리라. 특히 장필순과 함께 부른 '아이들에게'는 그와 그녀의 음색의 차이에서 오는 대조와 색채의 동질감이 좋은 노래를 더욱 맛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대비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참 편하고 좋다.&lt;br /&gt;&lt;img style="margin: 0pt 10px 10px 0pt; float: left; cursor: pointer;" src="http://photos1.blogger.com/blogger/8117/426/320/honor_02.jpg" alt="" border="0" /&gt; 96년 '푸른사람들'에서 출시된 두 번째 앨범 [다시 동산으로]는 전작과는 '방향'의 측면에서는 분명하고 확실한 차이가 있고 그 '만듦새'에 있어서는 굉장한 진보를 보여준다. 게다가 이 진보는 화려한 치장이나 대단한 질적 변화를 통해 발생한 차이라기 보다는 '만듦새의 성장'에서 오는 성숙함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작과는 작업의 과정이나 환경이 분명하게 다르다. 어찌보면 당시의 '푸른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규모나 방향에 있어 이 앨범은 과도한 모험이었을 수 있다. 이젠 한국 CCM의 순간적이고 급한 성장에 대해 많은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루이스 알베르토와 네쉬빌의 여러 (비싼) 세션들이 이 앨범에 참여했고, 그에 따라 발생되는 물량적인 측면의 소비가 전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예산의 소비와 물량의 차이가 이 앨범을 '명반'으로 말한 이유가 되진 않는다. (적어도 내가 CCM을 바라볼 때 말하는 '명반'에 있어서는 그렇다.)&lt;br /&gt;&lt;br /&gt;물량의 차이가 '명반'을 만드는 거라면 같은 편곡자와 같은 세션들이 참여한 다른 모든 앨범도 '명반'이어야 하지 않을까? 비싼 사람들, 비싼 악기들을 사용해서 '비싸게' 만드는 작업물들은 분명히 '나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싸게 만들어진 MR을 보고 명반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MR이 오늘의 CCM에게 과연 올바른 가치인가? 그것이 정말 동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의 가슴을 대변 하는가? 그것은 아닐꺼다. 그런 것들을 탁월함의 주된 가치로 놓고 보기에는 정말 마음이 어렵다. 만약 내 생각이 틀린거고, 그런 것들이 '진짜'라면.... 생각만해도 몸서리 쳐진다.&lt;br /&gt;&lt;br /&gt;그렇다면 내가 이 앨범 [다시 동산으로] 를 감히 '명반'이라 말하는 차이. 그 결정적인 '이무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내가 들었던 '이무하'의 노래에서, 내가 보았던 '이무하'의 모습에서 내가 나름대로 내안에 정리한 그는 '겸허한 예술가'이다. 이 예술가는 치장에서 오는 세련됨을 애써 추구하지 않으며, 본질적인 만듦새를 추구한다. 그가 메우고 있는 자리를 다른 이가 메꾸는 것을 상상하긴 어렵다. 내쉬빌과 루이스가 도와줘서 고맙긴 한데, 그들의 도움 없이도 충분하게 '그'일 수 있는 예술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편곡과 연주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이 앨범에 굉장한 힘이 되어 주고 있다.)&lt;br /&gt;&lt;br /&gt;위에서 말했듯 2집 [다시 동산으로]는 방향성의 측면에서 전작과 많이 다르다. 일단은 기획사가 다르고, 하던 노래들의 방향이 다르고, 가사의 주제들이 다르다. 물론, 조동진 사단으로 불리던 시절의 그들(이무하를 위시해서, 김광석, 장필순, 조규찬, 한동준, 시인과 촌장 등)이 갖는 시적 아름다움과 완성도에 대한 추구가 남아 있고, 절대로 난삽하지 않게 기본적인 매무새를 다듬어 내는 여유가 그대로 있다. 정서적으로는 이전의 앨범이 갖는 여유로움과 멋스러움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오히려 그 정서를 성장시키지만, [다시 동산으로]는 대중과 민족, 그리고 정서적인 여유를 넘어서는 자유로 우리를 이끈다. 이미 충만한 은혜로 가득한 '크리스천'인 이무하가 그 넘쳐나는 은혜를 이 앨범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준다.&lt;br /&gt;&lt;br /&gt;앨범을 여는 첫곡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에서 부터 마지막곡인 '포도나무' 까지 이무하는 바로 '말씀'에 그 뿌리를 두고 담담하게 읊조린다. 이 앨범 전체를 덮는 그의 음색은 아름답다. 단순하게 본다면 저음의 부드러움을 여유있게 풀어낸다고 볼 수 있고, 읇조리는 그의 음색에선 우리 멋이라고 밖에 표현 못할 '선비다움'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힘을 풀어내는 방법이다. 대개의 경우, 성악을 통해 음악을 배우고 표현하는 보컬리스트들이 갖는 약점은 자신의 목소리가 악기로서 음악을 표현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발성에서 나오는 소리의 질감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가사가 지닌 음율이나 스스로 가진 매력 (그것이 있는 경우에) 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무하가 곡과 가사를 모두 만드는 쪽이어서일까. 그의 섬세한 보컬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결코 가사를 '음악'으로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가사가 지닌 리듬과 내용의 굴곡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표현해 낸다. 게다가 이 앨범의 가사는 여러면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을 보여준다. 첫 두 곡이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가사도 곡조도 그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은 탁월한 '곡쓰기'를 보여준 케이스라고 한다면, 세번째 곡인 '아기 예수'는 성탄을 그의 정서 안에서 서사적으로 표현한 오리지널인데, 가사에 있어서 이전의 두 곡과 그냥 놓고 비교를 해봐도 전혀 힘이 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앞의 두곡이 '일부'만을 보여 주는 좁은 시선이었다면, '서사적'이기 때문일 수 있지만, '아기 예수'는 상당히 넓은 시각적인 감동을 준다. 마리아라는 아주 참한 처녀와 요셉이라 부르는 어진 목수에 대해 진지하게 노래하는 이무하의 음성에 귀기울이다 보면 그야말로 오래된 이야기를 음유시인에게 전해 듣는 듯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 곡에서 경배에 해당되는 후렴 부분의 한국적인 편곡은 그 자체의 탁월함과 적절함, 그리고 내쉬빌스트링머신과의 균형에 있어서도 좋은 균형을 보여준다.&lt;br /&gt;&lt;br /&gt;&lt;br /&gt;&lt;img style="margin: 0pt 0pt 10px 10px; float: right; cursor: pointer;" src="http://photos1.blogger.com/blogger/8117/426/1600/honor_03.jpg" alt="" border="0" /&gt; 대중가수인 김광석이 부른 적 있던 이무하의 곡 '끊어진 길'은 김광석이 불러서 생겨났던 민족적인 정서 안에서의 '절절함'을 넘어서 한층 더 자유로운 것을 향해 열린 노래로 다시 태어난다. 그 뒤를 이어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연주곡 '여행'은 내쉬빌 스트링머신의 멋스러운 연주를 듣게 해주는데, 그냥 연주곡으로 제껴두기 아쉬운 왠지 모를 무게감을 지녔다. 그 전곡인 '끊어진 길'에서 다음 곡인 '먼 길'로 넘어갈 때 그냥 들으면 생길 수 있는 이질감 같은 것을 묘하게 중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듯 싶은 데, 개인적으로는 좋아는 하지만 배치의 의미에 대해 사실 궁금하다. 1집에 수록되었던 '사랑은'이 2집에서는 루이스 알베르토의 때깔 좋은 편곡으로 다시 살아나는데, 1집에서건 2집에서건 마냥 좋은 것은 그의 음성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동산으로'를 꼽는다. 나 역시 이 곡은 명반의 명곡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곡의 분위기라던지, 구성과 흐름은 앞 에 소개한 '아기 예수'의 서사성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훨씬 넓은 이야기를 해준다. 아담과 하와를 지나, 가인과 아벨부터 서로를 죽여온 인간의 역사를, '조선'이라 이름한 동쪽 한 끝머리의 나라를 조곤 조곤 이야기하며 풀어낸다. 특히 이 노래의 탁월함은 시대를 끌어안고 이야기한다는 점인데, '세계화의 깃발'에서부터 '아이들 모래집보다 훨씬 더 쉽게 무너지는 그런 집'까지 과연 노래가 될 수 있을런지 놀랍기만 한 현실을 반영한 듯한 가사들은 왜 이무하가 예술가인지, 이 앨범이 명반인지를 말해준다. CCM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들어가 있는 '동시대성'이란 결국엔 이렇게 표현되어질 필요가 있지 않겠나.마지막 곡인 '포도나무'는 내가 참 좋아하는 곡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잔뜩 나오니 그럴 수밖에. 드림의 최성규와 이성균, 그리고 이무하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성경을 거의 있는 그대로 풀어내면서 그들 특유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 게다가 어쿠스틱한 드림의 편곡과 이들의 탁월한 앙상블 기타연주는 (개인적으로 기타를 치고, 이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로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lt;br /&gt;&lt;br /&gt;위에 음유시인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무하의 이 앨범을 이야기 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를 모두 '음유시인'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이 단어는 이무하에게 좀 더 적절하다. 그의 노래가 갖는 시적 완성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스타일이 가수보다는 시인에 가깝다. '읊조린다'는 표현이 이리도 잘 어울리는 노래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lt;br /&gt;&lt;br /&gt;&lt;br /&gt;산업이 되어버린 사역이란 측면에서 이무하는 그다지 유리한 위치에 선 아티스트는 아니다. 애석하게도 이 앨범은 들인 공에 비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이런 명반을 못 알아보는 대중도 아쉽지만, 이런 수준과 방향성을 유지해 낼 수 없는 시장의 상황도 많이 아쉽다. 음악이 갖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아름다움마저 흩어버리는 난삽한 앨범이 난무하는 '시장판'을 볼 때마다,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리고 스스로의 앨범과 사역을 과도하게 홍보해대는 가수를 볼 때마다, 구성과 진행에 대한 간단한 수준의 고민조차 회피하고 '반응 좋은 진행'을 답습해 대는 말도 안되는 '만듦새'를 보여주는 노래를 만날 때마다 난 이 앨범을 꺼내든다. 컴퓨터 스피커나 AV가 아니라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이 앨범을 듣다보면 그런 아쉬움으로 멍든 가슴이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lt;br /&gt;&lt;br /&gt;&lt;br /&gt;&lt;i&gt;이 글은 2004년 10월 CCMZINE에 게시되었습니다. &lt;a href="http://ccm.co.kr/focus/2004_16/fame01.asp" target="_blank"&gt;http://ccm.co.kr/focus/2004_16/fame01.asp&lt;/a&gt;로 가시면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lt;/i&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113872381965206490?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113872381965206490/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113872381965206490&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1387238196520649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1387238196520649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4/10/2.html' title='가사와 곡조에 이유를 멋스럽게 담아내는, 그 만듦새의 아름다움이여 - 이무하 2집 [다시 동산으로]'/><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ZR6MVPSI/AAAAAAAAAX4/xT47YkWAd4Q/s72-c/honor.jpg'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5114368382531782845</id><published>2004-08-02T01:56: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2.710+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예배 음악사역의 미덕을 이야기하며 - Vinyard Music [DWELL]</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kmKMVPyI/AAAAAAAAAb4/M8KSaIsyBY4/s1600-h/b0044796_147449.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kmKMVPyI/AAAAAAAAAb4/M8KSaIsyBY4/s400/b0044796_147449.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82048733134626"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빈야드의 신보 [DWELL]은 전문적인 예배 음악 사역의 미덕을 고루 갖춘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선곡의 경우 한국인인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2년 정도의 준비를 통해 600여개의 곡 중에서 15개의 곡을 선곡했다'고 하니 그들의 교회 - 정확하게는 앨범에 나와 있는 아메리칸 빈야드 처치(American Vineyard Church)나 동일한 정서나 감성을 지닌 지역 교회, 공동체 등 - 에서는 분명히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뮤지션, 미국의 프로듀서로 이루어진, 언뜻 보면 부조화라 볼 수 도 있을 이 앨범의 제작 구성은 그들이 기치로 내건 'From the Church, for the Church'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lt;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gt;&lt;br /&gt;&lt;br /&gt;&lt;/span&gt;한개의 enhanced CD (일반적인 Audio CD 와 PC에서 구동되는 CD-Rom 이 하나의 CD로 제작된 매체)와 하나의 DVD로 구성된 [DWELL]은 가격에 비해 과도한 컨텐츠를 토해낸다. 매체가 가진 최대의 역량을 보여줄 요량이었나 보다. 그런데, 이 과도한 컨텐츠에는 그 양에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면들이 있다. 내가 DWELL의 앨범을 통해 그 제작자들의 '예배 음악 사역'에 대한 의지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인데, 단순히 세심할 뿐만 아니라, 적정한 예산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술적인 시도를 다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lt;br /&gt;&lt;br /&gt;&lt;br /&gt;우선 enhanced CD에서는 14개의 노래로 채워진 CD와 DVD에 있는 한 곡을 포함한 15개의 곡에 대해 어쿠스틱 기타를 위한 Chord Sheet(코드보)와 OHP를 위한 Overhead Master(가사보)를 PDF 파일로 제공한다. 여기까지는 최근의 워십 앨범들이 제공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DVD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lt;br /&gt;&lt;br /&gt;&lt;br /&gt;‘DWELL_TOOLBOX’로 이름지어진 DVD를 통해서는 CD에 없는 15번째 트랙인 ‘PERFECT PEACE’를 포함한 전곡의 ‘Live Concert Video’와 각각의 곡들을 5개의 세트로 재구성한 ‘Small Group Worship Sets’, 그리고 밴드적인 차원에서 앨범에 사용된 악기와 연주에 대한 팁(tip)들이 들어 있는 ‘Instument specific’ 섹션과, 특히 각각에 곡에 대해 어쿠스틱 기타의 코드와 주법에 대해 이 앨범에서 예배인도를 함께 했던 로비 라이더(Robbie Reider) 가 직접 설명하는 ‘Acoustic Versions’ 섹션이 포함된 ‘Musical Tutorials’ 까지 보면 음악적인 감동과는 다른 종류의 감동이 밀려온다. 이렇게나 섬세한 배려를 이전의 어떠한 라이브 비디오나 DVD, 레슨 비디오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밴드들과 워십리더들의 인터뷰와 [DWELL]의 노래에 대한 송스토리(Song stories)가 포함된 ‘THE BAND : the heart behind the music’ 메뉴 역시 제작자의 세심한 배려를 엿보게 한다.&lt;br /&gt;&lt;br /&gt;&lt;br /&gt;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DWELL]을 통해 느끼는 몇 가지 우려내지는 아쉬움들이 있다. 우선 [DWELL]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전문적인 예배 음악 사역의 정의를 말해 줄 만한 교과서적인 좋은 앨범이다. 그러나 예배곡의 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Live'의 감이 아쉽다. 최근의 PASSION 앨범 시리즈가 초기 사역 때 보여준 세련되고 정돈된 음악을 벗어나 조금 지저분한 것 같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사운드를 보여주는 것과도 대비가 되고, 예전에 캐나다 Vineyard 앨범들에서 간혹 (대중음악의 라이브라면 있을 수 없는) 연주자의 실수나,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응하는 회중의 박수소리, 목소리 등도 깨끗하게 거르지 않은 생생함 들을 보여 준 것과는 달리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라이브의 영상과 연주가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스튜디오 더빙과 믹싱을 통해 정제된 오디오 트랙을 그대로 라이브의 영상과 매칭시켜서 생긴 일인 듯 싶다. [DWELL]의 제작 방향이 '예배곡의 깔끔한 전달'에 있다는 사실은 Concert Video를 조금만 주시해 봐도 알 수 있다. '회중'의 반응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혹 회중의 모습이 보인다 하더라도 손으로 들고 찍은 6mm DVcam (그것도 기본적인 보정조차 되지 않은) 소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나조차도 그러한 제작 방향과 컨셉을 가진 상황이라면 마찬가지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아쉬움은 완성도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 예배의 느낌이 전달되지 않아 생기는 답답함 정도라고나 할까. 분명히 DWELL의 라이브 당시에는 아주 좋은 예배의 반응들과 교감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다. 그러나 결국 예배의 본질은 역시 음악보다는 그런 흐름과 반응들, 교감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전문적인 예배 음악 사역의 앨범들이 모두 [DWELL] 같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lt;br /&gt;&lt;br /&gt;&lt;br /&gt;다른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DWELL]의 친절함에 대한 한국 예배자들의 반응이다. 이 앨범을 구매한 사람 중,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레슨 비디오(?)를 보면서 열심히 카피 혹은 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고, 또 개중에는 이 곡들을 '빨리 번역'하여 '번역 000'라는 타이틀을 얻으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카피나 연습이 나쁜 것도 아니고 번역 역시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앨범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하면서 언급했지만 이것은 American Vineyard Church의 예배곡들이다.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오랫동안 정서적인 교감이 쌓이고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송리스트 600개를 추리고 추려 만들어진 앨범이다. 이 정서가 한국에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것이 바른 것일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무런 저항 없이 그냥 받아들인다면, 받아들이는 자의 정서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무시되어지게 된다. 거기다가 다시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다른 이나, 공동체의 정서 역시 자연스럽게 무시되어진다.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닐까도 싶은데, 최근의 한국의 예배 상황에서 사용되어지는 곡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우려가 심한 비약이나 단순한 기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물론 현재의 시장상황을 생각한다면 이건 그냥 '비약'이고 '기우' 이다. ^^)&lt;br /&gt;&lt;br /&gt;&lt;br /&gt;&lt;br /&gt;[DWELL]은 기술적인 면에서 한층 진일보한 전문 예배 음악 사역의 결과이다. 물론, 그 이전의 예배 앨범들을 잘 살펴본다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자 과정이다. 예배 음악 사역의 주된 형식이나 매체가 완전히 변하지 않는 한, 아마도 더 많은 기술적인 진보가 예배 음반에 적용될 것이고 기술적으로 더욱 탁월한 결과물이 나오게 될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문제는 역시 예산이겠지만). 이 앨범에는 매력적인 예배곡들과 넘쳐나는 유용한 컨텐츠들, 그리고 교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배려가 잘 녹아있다. 모쪼록, 이 앨범의 껍데기만을 모방한 작업들이 한국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은 이 앨범의 미덕 - 전문 예배 음악 사역의 미덕이라 볼 수 있는 - 이다. 교회에서 추출되어진 (스스로를 위해 생산되어진) 풍부한 좋은 예배곡들을 모아서 제작자로서의 고민과 예배자로서의 공감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사역... 이것이 [DWELL]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들이다.&lt;br /&gt;&lt;br /&gt;&lt;br /&gt;&lt;i&gt;이 글은 지난 2004년 8월 &lt;a href="http://ccm.co.kr/focus/2004_14/album03.asp"&gt;CCMZINE&lt;/a&gt;에 게시되었습니다.&lt;/i&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5114368382531782845?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5114368382531782845/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5114368382531782845&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5114368382531782845'/><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5114368382531782845'/><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7/07/vinyard-music-dwell.html' title='예배 음악사역의 미덕을 이야기하며 - Vinyard Music [DWELL]'/><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kmKMVPyI/AAAAAAAAAb4/M8KSaIsyBY4/s72-c/b0044796_147449.gif'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1580955732691773467</id><published>2004-04-02T02:17: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4.41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이 나라의 CCM에 관한 건조하고 개인적인 몇가지 생각(3) 당신은 CCM을 무엇이라 하는가</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gI/AAAAAAAAAZo/ywb0DOZbxEE/s1600-h/b0044796_1562126.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gI/AAAAAAAAAZo/ywb0DOZbxEE/s400/b0044796_1562126.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9089500667394"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어느 여류 화가가 있다. 젊고 유능하며 재능이 넘치는 이 여류화가는 의욕적으로 작품활동을 해 나간다. 어느날 어느 평론가가 악의 없이 이야기한다.&lt;br /&gt;&lt;br /&gt;&lt;strong&gt;“당신 작품에는 재능이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lt;/strong&gt;&lt;br /&gt;&lt;br /&gt;화가는 고민한다. 자신에게 모자란 그 깊이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깊이를 구현하기 위해 애써보지만, 그 깊이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기에 그녀는 혼란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절망하고 몇 년을 더 방황한 끝에 결국은 자살하고 만다.&lt;br /&gt;&lt;br /&gt;콘트라베이스, 향수, 좀머씨 이야기로 유명한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의 줄거리이다. 짧은 내 식견으로 간단하게만 말해본다면, 고민 없는 어설픈 비평이 예술가를 어떻게 죽이는 지를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하겠다.&lt;br /&gt;&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hI/AAAAAAAAAZw/uJCtMCninFU/s1600-h/b0044796_202641.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hI/AAAAAAAAAZw/uJCtMCninFU/s400/b0044796_202641.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9089500667410"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이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사실, 이 이야기까지 하게 되리란 것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망설여지는 것이 바로 '현실에의 직시'이다. 이것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이야기'부터 해야되기 때문이다.&lt;br /&gt;&lt;br /&gt;  &lt;br /&gt;나 는 CCM을 공부한 적도, 연구한 적도 거의 없다.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4대 통신 시절 부터 BBS 활동을 해오고, 기독교관련 인터넷방송국에서 웹PD로 일하기도 했고, 지금은 몇 몇 음반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이긴 하지만, 내가 스스로 나의 전문성을 타진해보면, 수준을 언급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칼럼리스트의 정체성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할 만한 사람이다. 오히려 내가 CCM을 보는 시각이나 음반을 접하는 경로는 엔드유저와 같다고 본다. 다만, 내가 지닌 한가지는 바로 '한국 CCM'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전문가'라 말할 수 없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iI/AAAAAAAAAZ4/ENdBf6KIJnA/s1600-h/b0044796_205755.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iI/AAAAAAAAAZ4/ENdBf6KIJnA/s400/b0044796_205755.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9089500667426"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전 문가란 무엇인가. 아니 다시 말하겠다. 전문성이 없는 문화를 전문성 없는 사람이 다뤄내는 것에 대해 '전문성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문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lt;br /&gt;&lt;br /&gt;준비되지 않은 즉흥적인 것들이 때때로 좋은 결과를 이루어내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지금 가는 길과 전혀 다르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단순히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보자. 100M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평소에 꾸준히 연습을 해두어야 한다. 근력을 키워야 하고,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숨쉬는 법도 따로 배워야 한다. 좋은 결과는 꾸준한 준비를 통해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준비하지 않은 자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요행을 바라며 약물을 투여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과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예가 적당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상식이다. 이러한 단순한 상식이 무시되는 것이 그 문화의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조금 고민해봐야 한다.&lt;br /&gt;&lt;br /&gt;그런데, 지금 CCM의 전문가들은 어떠한가.&lt;br /&gt;&lt;strong&gt;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 없이 내 경우만 생각해보겠다. 나는 어떠한가.&lt;/strong&gt;&lt;br /&gt;&lt;br /&gt;나 는 남비처럼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사그라든다. 나는 좋은 글보다는 많은 글을 지향하고, 리뷰를 쓰는 경우도 애정 어린 감상보다는 단순한 지식의 나열로 마무리를 한다. 혹은, 객관성을 무시한 개인적인 의견을 일반화시키거나, 비평이 아닌 비판을 고민 없이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주관에 치우쳐 스스로 객관성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나의 글들은 사역과 산업의 뒷모습만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lt;br /&gt;&lt;br /&gt;나의 경우를 다른 필진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대단한 무리라고 생각되지만, 가끔씩, 위에 나열한 단점들을 내노라하는 필진들의 글에서 엿보게 된다. 사실 이것은 대중음악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문화 관련 필진이 워낙 얇고, 있더라도 적절한 권위를 말하기엔 그 이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하겠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컨텐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비평과 결론 없는 비판들. 애정 없는 시선으로 늘어놓은 지식들을 늘어놓은 것이 전문가의 글이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 분야의 전문성 자체를 제대로 한번은 의심해야 한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h6KMVPjI/AAAAAAAAAaA/XZlM8YV36Lg/s1600-h/b0044796_252170.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h6KMVPjI/AAAAAAAAAaA/XZlM8YV36Lg/s400/b0044796_252170.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9093795634738" border="0" /&gt;&lt;/a&gt;&lt;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gt;&lt;br /&gt;&lt;br /&gt;&lt;/span&gt;자 기 자신의 유료공연을 위해 한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심지어는 공연 10분전에 도착하는 어느 정신 없는 (자칭) 사역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역’이라는 이름의 사업으로 충분히 넓직한 아파트와 보장된 미래를 얻을 수 있는 (역시 자칭) 사역자도 있다. 음반제작을 위한 경비를 유용하고 (혹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진행하고) 정당하게 지불되어야 할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음반제작을 위해 투자된 돈을 엉뚱한 곳에 써버리는 경우도 있다. 대중음악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겠지만, 가책 없는 표절도 상당히 많다.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고 그 거룩함을 노래해야하는 ‘음반’의 제작과정에서 일어난다. 일반적인 대중음악에서도 별로 없는 일들이 CCM쪽에선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lt;br /&gt;&lt;br /&gt;이런 일들이 일어나지만, 이것이 잘 알려지지는 않는다. 물론 언급되어서 좋은 일들은 아니다. 이런 것들이 알려진다고 뭐가 좋아지겠는가. 이런 것들이 알려진다고 해서 어떤 은혜를 끼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은혜'로 무조건 덮는 것이 옳다고는 볼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성경에는 '인간의 추악함'이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할 이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혜'가 어찌 존재할 수 있을까.&lt;br /&gt;&lt;br /&gt;CCM Look이란 월간지가 있다. 아니 있었다. 내가 어리던 시절, 모 동호회에 올린 글에 CCM Look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재기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사죄한다. 그런 의문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억지스러운 엔드유저의 발상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CCM Look은 그 당시의 최선을 다한 것이었고 그 최선의 노력을 통해 어쩌면 당시로서는 불가능했던 좋은 퀄리티의 잡지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언급해보자면, 지금도 그만큼 편집이나 기획이 유연한 크리스천 문화 관련 전문 잡지는 없.다.&lt;br /&gt;&lt;br /&gt;  &lt;br /&gt;&lt;br /&gt;그러나, 내가 재기했던 의문의 본질은 사실 작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결코 간과되어선 안될 만한 것이었다. 물론 나름대로는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적절한 혜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CCM Look은 당시 거의 유일하고 독보적인 CCM 관련 잡지였다. 즉, 독점적인 매체인 것이다. 그런 매체에서 자칫 잘못 다루어진 기사는 그대로 현실에 반영이 된다. 진실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착한 CCM Look이 정확한 언론 매체로서의 역할을 선택하기보다는 애정 넘치는 CCM 살리기 운동지로서의 역할을 우선시 했다는 것이다. 음반 리뷰 등의 내용은 무슨 당기관지 처럼 거의 무조건적인 칭찬 일색이었다. 물론, 척박한 CCM 시장을 위한 애정 넘치는 배려였겠지만, 어쩌면 그건 CCM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과연, 안 좋은 사실을 안 좋은 그대로 적어갔다고 해서 상황이 악화되었을까? 안 좋은 사실을 좋은 것처럼 억지로 포장하게 되면, 독점적인 매체를 통해 알게된 사실을 믿는 어린양들은 한참을 더 속다가 '더 커진 안 좋은 사실'을 접하고 '더 커진 안 좋은' 상처를 받기 쉽다. 또, 보편적인 정서로는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을 음반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린다고, 그 음반이 좋은 음반으로 거듭날 수는 없다. 오히려 애정을 바탕으로 깔고 문제를 직시하며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아티스트의 성장에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언급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CCM Look 이 해온 모든 일들은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나름대로 탁월했다고 본다. 지금은? CCM Look이 존재하기 한참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크리스천 관련 잡지들 거의 모두 디자인이나, 컨셉 모두 그때의 CCM Look 만 못하다고 본다.&lt;br /&gt;&lt;br /&gt;  &lt;br /&gt;객 관적이고 정확한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만한 대표적인 데스크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와 비평, 연구를 해낼 만한 좋은 언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이상이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길 원한다면 누군가의 헌신과 누군가의 희생, 그리고 행동이 필요하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h6KMVPkI/AAAAAAAAAaI/wKqCJbv65Vw/s1600-h/b0044796_262968.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h6KMVPkI/AAAAAAAAAaI/wKqCJbv65Vw/s400/b0044796_262968.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9093795634754"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lt;strong&gt;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교회가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lt;/strong&gt;&lt;br /&gt;&lt;br /&gt;이 것은 문화이다. 당연한 말인가? 이 당연함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들어오면 무시되기 십상이다. 교회는 여러가지 종교적인 의도로 문화를 요리하려 든다. 교회는 문화를 받아들일 때, ‘종교성’을 가장 중요한 필터로 그것을 걸러낸다. 교회에서 문화는, 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야 하고 종교적인 관점을 제시해야 하며 종교적인 언어로 장식해야 한다. 교회는 문화에게 사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lt;br /&gt;&lt;br /&gt;그렇다면 교회가 그러한 종교적 문화를 키워나가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세 가지 정도만 들 수 있겠다. 하나는 문화에 관련된 사람을 성도로 두는 것이고, 또는 그런 사람들을 교회를 섬기는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집회를 만들어 그들을 초청하고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 정도이다. 문제는 때때로 목회자나 당회의 취향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취향들은 대부분 오래된 것이나 점잖은 것을 지향한다. 이런 것들이 어떤 경우에는 적절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교회는 인지하지 못한다. 교회의 취향을 강요하면서부터 교회는 사람을 향해 그 배타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을 진리가 지닌 고유의 거룩함, 지켜야 할 성스러움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취향이 변하지 않을 진리의 속성이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피아노와 오르간으로 연주된 찬송가만을 예배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lt;br /&gt;&lt;br /&gt;  &lt;br /&gt;&lt;br /&gt;하 나님께서는 분명히 교회를 통해 그 역사를 이루실 것이고 교회를 통해 세상을 바꾸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교회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도구’가 교회이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거나 여전히 느린 교회의 취향이 ‘우수’하고 ‘좋은 것’이라 우긴다면, 그것은 바리새적인 문화관이 아닌가 싶다.&lt;br /&gt;&lt;br /&gt;교회가 취했던 문화에 대한 안일한 태도와 무리한 요구, 그리고 너무 늦은 수용들이 기독교 문화의 느리고 저열한 성장을 만들어 왔다. 만약 느리더라도 그 성장이 건강한 것이고 그 열매들이 탁월하다면 아무런 이견이나 불만이 없을 텐데, 아쉽게도 이 느리고 저열한 성장은 깊이 병들어 있기까지 하다. 일부이긴 하지만, 대중문화의 악습들도 존재하고, 고민하지 않고 무분별한 사역의 남용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어쩌면 핑계로) 묵인되어진다.&lt;br /&gt;&lt;br /&gt;  &lt;br /&gt;교 회가 좀더 사람에게 열리고 하나님에게 열린다면, 그래서 교회의 취향을 일부러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게 되고, 문화에 대한 무리한 요구보다는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그리고 기독교 문화를 키워내기 위해 좀더 애쓴다면, 지금보다는 빠르고 건강한 문화의 성장을 일궈낼 수 있지 않을까?&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iYqMVPuI/AAAAAAAAAbY/mu0BHYT13cI/s1600-h/b0044796_273338.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iYqMVPuI/AAAAAAAAAbY/mu0BHYT13cI/s400/b0044796_273338.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9617781645026"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좋 은 아티스트가 좋은 문화를 만든다. 또한 좋은 관객이 좋은 문화를 만든다. 관객이 없는 무대는 무대가 아니다. 여기서 관객의 부재가 예술가의 책임일 수도 있지만, 관객의 수준 때문인 경우도 있다. 좋은 텍스트로, 성령의 넘치는 은혜를 아티스트 나름대로 아름답게, 혹은 독특하게 표현을 해 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이 없다면 얼마나 허탈할까? 그렇다고 관객이 ‘아는 것'이라는 한계 안에서만 뭔가를 만들어 내고 표현해야 할까? 맨날 아는 것만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을 좋은 아티스트라고 하긴 힘들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맨날 똑같은 하루만 주셨나? 똑같은 은혜만 주셨나? 타임머신 같은 것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이 다르고, 우리는 날마다 시간마다 성장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텍스트도 성장해야하고, CCM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동시대적, 운운할 수 있지 않겠나. 물론, 이 과정에서 관객이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의 갭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람 역시 평론가나 컬럼리스트 같은 사람들이리라.&lt;br /&gt;&lt;br /&gt;탁월한 CCM 아티스트가 좋은 음반을 냈다면, 아티스트가 그 음반을 만드는데 들었을 만한 노력을 글을 쓰는데에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무엇이 좋은지, 숨겨진 텍스트는 대체 무언지, 왜 그 앨범이 탁월한지, 그 노래가 탁월한지 사람들에게 알려 줘야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무조건 어려운 용어와 단어를 선택하고 년도와 장르를 줄줄 차고 있다고 좋은 칼럼리스트라고는 할 수 없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음반관련 컬럼들은 (대중음악의 컬럼 역시) 년도를 언급하고 장르를 쫓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때론 그런 history 적인 접근이 9할을 차지하고 1할은 도입이나 마무리에 쓴다. 감상이나 관점, 애정은 대체 어디로 실종된 것인지 모르겠다. 자기 생각을 맛있게 풀어내는 컬럼리스트가 아쉽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컬럼리스트가 되고 싶다. 좋은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만 요리하지 않는다. 맛없더라도 몸에 좋은 것도 할 줄 안다. 좋은 요리사는 비싼 재료로만 요리하지 않는다. 재료의 쓰임에 따라 그 재료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내어지는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lt;br /&gt;&lt;br /&gt;  &lt;br /&gt;&lt;br /&gt;나는 사실 명함도 내밀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부분들이 내 스스로 이미 완성한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쓰면서 내게 발견된 모자란 부분들, 탁월한 전문가들의 글이나 대화 속에서 발견한 좋은 점들을 풀어내며 정리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열할 ‘좋은 글'이 지향해야 할 부분들은 나 역시 다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것이고, 내가 지향하고 있는 부분들이기도 하다.&lt;br /&gt;&lt;br /&gt;해외 CCM에 대한 리뷰중 어떤 것은 allmusic.com 이나 기타 CCM 관련 사이트에 있는 '사실'들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정확한 리뷰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사실'에 대해 올바로 분석해 내어야 하지만,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리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제대로 된 리뷰라면, 작품에 대한 적절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블랙 가스펠(Black Gospel) 앨범을 예배 음악의 관점으로 리뷰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굉장히 초보적인 실수이며, 작품에 대한 엄청난 실례이다. 만약 리뷰어가 블랙 가스펠에 대한 식견이 모자란다면 글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일 테고,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관련 서적 몇 권 쯤은 읽어보고 관련 음반 몇 개 쯤은 들어 봐야 예의일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 작품과 그 작품에 내재된 세계관, 그리고 아티스트에 대해서 분석을 하게 되면 그 작품을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적절한 관점'이라고 본다.&lt;br /&gt;&lt;br /&gt;  &lt;br /&gt;  &lt;strong&gt;또한 그 장르나 리뷰 앨범, 혹은 아티스트에게 기본적인 애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lt;/strong&gt; 애정없이 리뷰를 쓰게 되면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작품을 만든 이에게도 모두 독이 되고 만다. 애정 없는 글을 쓰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이다. (유명한 사람들이 그런 글을 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유명한 사람들은 실제로 글을 쓰게 되는 빈도가 많이 발생하고, 제한 된 시간 내에 적절한 퀄리티의 글을 생산해 내야 하는 부담을 지닌 경우가 많다. 아무리 굉장한 천재라s도 다작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는 비슷 비슷한 작품을 만들게 될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유명한 사람들'이 좀 더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도 있겠다. 여하튼 글 쓰는 이가 장르, 앨범, 아티스트 중 어느 것 하나에도 ‘애정’을 느낄 수 없다면 ‘문제를 만들어 내는 문제’ 같은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반대로 글을 쓰는 이가 적절한 관점을 지닌 채 앨범이나 장르, 혹은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면,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것이고 이것은 장르나 앨범, 그리고 아티스트에게 자라갈 수 있는 양분이 될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lt;br /&gt;&lt;strong&gt;빠지지 말아야할 또다른 한가지는 바로 감상이다.&lt;/strong&gt; 사실 음반리뷰에서 가장 배제되기 쉬운 부분도 바로 이 감상이다. 음반리뷰를 객관적으로 써야하는 부담 때문에 주관적인 감상을 고의로 삭제하거나, 감정이 배제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은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의 감정을 수혈 받아 자라는 나무 같은 것이고, 감정을 배제시키려는 예술적 시도는, 이미 그 자체가 배타적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음반리뷰에 감정적인 감상을 집어넣지 말아야할 이유가 없다. 단지 작품에 대한 일방적인 근거 없는 찬양이나, 호의, 역으로는 일방적인 냉소나 감정적인 분노를 늘어놓기만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바람직한 감상은 어떤 것인가. 음악을 음악으로 듣는다든지, 가사를 분석한다든지 하는 것은 기본적인 감상의 자세라고 본다. 좀 더 깊이 있는 감상을 하기 위해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으로 돌아설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구조가 아닌 일부러 채택된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다면 그 함의를 찾아내기 위해 음악과 가사, 이 모든 것의 시간적인 배치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의 음반 제작 방식이나 효과 구성의 발전으로 이런 분석은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 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작가의 의도’는 숨은 그림찾기의 마지막 오브젝트 처럼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의도’는 엔드유저의 관점에서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개 ‘작가의 의도’는 일부러 숨지 않는다. 오히려 드러나기 위해 애쓴다. 그래야 작품의 의미가 바로 서게 되고 작품이 있어야 할 이유가 발생하게 된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jtaMVPxI/AAAAAAAAAbw/51k3hSw-CW0/s1600-h/scolumn_title_06.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jtaMVPxI/AAAAAAAAAbw/51k3hSw-CW0/s400/scolumn_title_06.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81073775558418" border="0" /&gt;&lt;/a&gt;&lt;br /&gt; &lt;br /&gt;이것은 문화이다.&lt;br /&gt;&lt;br /&gt;예 술성이 없는 예술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좋은 학교 좋은 교육이 좋은 예술가를 만들어 내는가? 물론 가능성은 좀더 넓어 질 수 있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교가 예술가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예술가와 좋지 않은 예술가를 평가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고 그것을 돕는 것이 전문가의 몫이다. 전문가의 전문성 역시 좋은 학교와 좋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그의 열정과 애정, 그리고 노력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 애정 없는 예술가, 애정 없는 전문가가 말이 되는가? 되지 않는다. 실력이 있더라도 애정이 없다면 전문가라고, 예술가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 문화의 예술가와 전문가는 어떤 애정을 지녀야 하는가. 물론 일차적인 것에는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인 고백들과 하나님 자체에 대한 분명한 애정 - 사랑 - 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예술가다 전문가다 할 수 없다. 그러한 애정은 일반적인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애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예술가의 질이, 전문가의 질이 결정된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애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가라면 기술적인 것이나 표현의 아름다움을 통해 좀 더 탁월한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다른 형태의 전문가라면 그 분야에 대해서 자신할 수 있는 경지의 수준을 향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lt;br /&gt;&lt;br /&gt;이것은 문화이다. 그 저변을 일부러 잡아 늘리려 노력해도 늘려지지 않는다. 돈이 많은 교회가 우수한 기독교 문화를 만들 수 있는가? 아니다. 좀 더 돈이 많이 드는 문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lt;br /&gt;예술가 의 책임이고, 관객의 선택이다. 이것이 문화의 보이지 않는 법칙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아무리 ‘이것이 좋다’하며 교회의 취향을 말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결국 관객의 질과 통하는 문화의 질을 통해, 보다 나은 것, 보다 좋은 것의 우열이 가려진다.&lt;br /&gt;&lt;br /&gt;당신은 CCM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나는 문화라고 부른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iY6MVPwI/AAAAAAAAAbo/fcqvvkUMv-Q/s1600-h/b0044796_291758.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iY6MVPwI/AAAAAAAAAbo/fcqvvkUMv-Q/s400/b0044796_291758.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9622076612354" border="0" /&gt;&lt;/a&gt;&lt;br /&gt; &lt;br /&gt;지금까지 세 편의 건조하고 지루한 글을 통해, 아마도 주관적일 수 있는 CCM에 대한 상식선의 정리를 해왔다. 이것은 따로 연구해서 얻어진 글도 아니고, 대단한 의도를 지니고 시작한 글도 아니다. 주관적일 수 있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실을 반영해 본 것뿐이다. 이 글에서 내가 해결점이랍시고 도출해 본 것들 역시 그것이 정확한 해결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문제를 문제로만 보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일 뿐이다. 이 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뭐가 어찌되었건 만약 이 글을 읽은 당신이 CCM 산업계 (혹은 사역계)에 대해 애정이 있다면, 함께 고민하고 기도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고민들은 끝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만약 행동할 수 있는 처지나 위치에 있는 당신이라면 그 고민들을 통해 반드시 어떠한 결론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으면 한다. 행동하지 않고 머리 속으로만 내린 결론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해답 없는 문제를 끝없이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올른지도 모른다. 고민은 행동을 통해 검증되어야 하고 그러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좋은 것’을 만드는 좋은 기반이 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 이 글은 지난 2004년 &lt;a href="http://ccm.co.kr/focus/2004_11/scolumn01.asp" target="_blank"&gt;CCMZINE&lt;/a&gt;에 기고되었습니다.&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gI/AAAAAAAAAZo/ywb0DOZbxEE/s1600-h/b0044796_1562126.gif"&gt;&lt;/a&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158095573269177346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158095573269177346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158095573269177346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58095573269177346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58095573269177346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4/04/ccm-3-ccm.html' title='이 나라의 CCM에 관한 건조하고 개인적인 몇가지 생각(3) 당신은 CCM을 무엇이라 하는가'/><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h56MVPgI/AAAAAAAAAZo/ywb0DOZbxEE/s72-c/b0044796_1562126.gif'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4027219394917478977</id><published>2004-03-21T02:13: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4.868+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이 나라의 CCM에 관한 건조하고 개인적인 몇가지 생각 (2) CCM,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gw6MVPcI/AAAAAAAAAZI/UoeIs06N-QY/s1600-h/b0044796_2131130.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gw6MVPcI/AAAAAAAAAZI/UoeIs06N-QY/s400/b0044796_2131130.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7835370216898"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어머니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기 방 하나 청소하지 않고, 휴일이면 제대로 씻지도 않던 갓 중학교 올라간 학생이 하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학생이 자기 방을 매일 같이 청소하기 시작한다. 휴일이라도 아침마다 조금씩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씻기도 하고, 평소에 관심 두지 않던 패션이니 머리 스타일이니 하는 것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e-mail이면 충분할 텐데도, 예쁜 편지지를 사기 시작하며, 댄스 음악만 걸려있던 CD 플레이어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사랑 노래들이 걸려 있다.&lt;br /&gt;&lt;br /&gt;이런 아름다운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뻔하다. '사랑'이 시작된 거다.&lt;br /&gt;&lt;br /&gt;어 쩌면 내가 사랑하는 이가 갑자기 내방에 찾아올지도, 나의 얼굴을 한번쯤 더 봐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알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내 진심을 보여주어야 할텐데, e-mail로 연애편지를 써서 보낼까? 역시 e-mail보다는 직접 쓴 편지가 더 좋겠지? 그런데, 대체 편지는 어떻게 쓰는 거냐....&lt;br /&gt;&lt;br /&gt;  &lt;br /&gt;아무리 글 쓰는 능력이 딸린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연애편지'를 쓸 때만큼은 진지해지고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물론, 남의 능력을 발휘하게 될 때도 있지만. ㅡ,ㅡ) 이 때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간절해지고 따뜻한 마음이 충만해지며 아마도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겠다. 나의 '진심'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기적이다.&lt;br /&gt;&lt;br /&gt;그 런데 만약, 이 '연애'가 '사기'라면, '진심'을 전달하는 과정에 생기는 이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사랑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이 기적 같은 변화는 다른 것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위에 저렇게 딱딱한 제목을 붙인 주제에 왜 엉뚱하게 '연애편지'니 '진심'같은 것을 운운하면서 페이지를 질질 끌고 있는 것일까?&lt;br /&gt;&lt;br /&gt;지난 호에, 난 나에게 허락된 지면을 통해서 한국 CCM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을 적어보았다. 몇 년 동안 나의 주관으로 지켜보았던 한국의 CCM 사역과 산업에 대해서 상식적이며 상대적인 일종의 '정리'를 시작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 CCM을 한다는 것, 소비하는 것, 그 문화를 공유하고, 그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이 모든 활동에 대한 건조하고 개인적인 몇가지 생각을 정리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강조하건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정리이다. 내 스스로는 객관화시키려 노력하지만, 이 글이 어떻게 전달이 되건 당신에겐 또 하나의 주관일 뿐이다. 지난 호에도 밝혔듯이 나의 생각과 e-mail 주소는 이 주제에 관해 열려있다. 그러므로 이 글의 일부분은 번복되거나 수정될 수 있다. 혹은 수정되어야 한다.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힘으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lt;br /&gt;&lt;br /&gt;지난 호의 주제는 '산업이 되고 만 사역'이었다. 무겁고 긴 주제였기에 그 긴 글을 제대로 다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걱정이고, 그 책임은 무겁고 길게 글을 쓴 나에게 있다. 사실 지난 호의 주제는 일부러 정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CCM을 말해야 한다면 오늘의 현상에 대해서 어제부터 차근히 밟아 나와야 할 듯 싶어서 산업 자체의 변화를 내 주관의 관점에서 정리해 나가다 보니 나온 제목이었을 뿐이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이 번 호와 다음 호에 거쳐 내가 적고 싶은 글의 주제는 지난 호와는 달리 미리 정해져 있다. 이번호는 CCM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 - 사역자, 기획자, 제작자, 그외 기독교 관련 음반 산업 종사자들 - 이 읽었으면 하는 이야기이고, 다음 호는 CCM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는 내 경우, 지난 호보다는 더 힘들게 풀어내게 되었다.&lt;br /&gt;  &lt;br /&gt;&lt;br /&gt;글 쓴 사람이 힘들었기에 글 읽는 사람도 조금은 힘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들지만, 지난 호의 시련에 가까운 글을 읽어낸 이라면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겠다. ^,^;;;&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gw6MVPdI/AAAAAAAAAZQ/qZLyGzj3x_8/s1600-h/b0044796_2141594.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gw6MVPdI/AAAAAAAAAZQ/qZLyGzj3x_8/s400/b0044796_2141594.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7835370216914"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어 떤 매체이건 창작물, 혹은 제작물에는 그것을 만든 이의 의도가 반영된다고 본다. 1000만 관객의 한국영화부터 중학생의 어설픈 연애편지까지, 의도 없는 작품이란 없다. ‘의도나 목적이 없음'을 내세우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의 부재 자체를 그 작품의 목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lt;br /&gt;동시대성을 표방한 기독교 음악의 의도는 다음의 몇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lt;br /&gt;&lt;br /&gt;1. 예배 -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함.&lt;br /&gt;2. 선교 - 동시대성을 옷입고 비기독교인을 선교함.&lt;br /&gt;3. 교제 - 교회 내의 기독교인에게 영적인 자극을 주고 함께 교회를 이루는 것을 도움&lt;br /&gt;4. 일상 -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지닌 자신의 신앙 고백, 혹은 일상을 표현&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사 실 이것은 일방적인 일반화일 수 있다. 내 상식 선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담아낸 음반이나 악보에서 만난 노래들에서 볼 수 있는 의도들을 정리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리에 의해 분류되지 않는 노래도 있을 수 있으며, 또는 중복되는 의도를 지닌 노래들도 있다.&lt;br /&gt;위의 정리를 통해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가지이다. 기독교적인 음악이라 할찌라도 그 목적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일부러 '찬양'이라는 단어대신 '노래'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이유도 이 다양성을 덮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 내에서의 음악을 모두 '찬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노래라고 해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지닌 창작자가 노래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단순한 일상을 표현한 노래라고 하더라도 그 세계관 안에서 표현된 일상이기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노래마다 다르다고 본다.)&lt;br /&gt;&lt;br /&gt;내 가 이 부분을 힘주어 이야기한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여야 좋은 창작물들이 많이 나온다고 본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이라는 편견을 지녔다면 어서 버리기 바란다. 그렇다면 좋은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서 창작자가 추구해야할 옳은 길은 무엇일까.&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원론적으로만 단순하게 이야기한다면, “진심을 다해서 창작해야 한다” 사기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있는 만큼 정직하게 드러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겉 멋으로 은혜만 끼치면 되는 창작은 죽은 창작이다. 겉으로 사역만 해내는 사역은 죽은 사역이다. 자신에게 주어지고 부어진 그 은혜에 힘입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어지고 넘쳐지는 그 은혜를 끼치는 것이 바람직하고 좋은 사역이고 창작이다. 그래야 창작자는 그 창작물과 일체가 될 수 있다. 그 창작물이 ‘노래’라면, 그 사람의 앎이 삶이 되고 삶이 노래가 되는, 진심이 깃든 삶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해야 창작자는 비로소 창작물(작품)을 통해 다른 이와 진심 어린 소통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아름다운 변화가 기적처럼 일어날 것이다.&lt;br /&gt;&lt;br /&gt;  &lt;br /&gt;&lt;br /&gt;상 당히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원론적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는 구체적인 부분을 말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부분을 언급하기 전에, 사실 한국 CCM의 제대로 된 정체성을 자세하고 확고히 잡아서 말해야 뭔가 분명하고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지만, 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직 까지도 한국 CCM의 정체성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없다.&lt;br /&gt;구체적인 언급을 하기에는 여러 변수가 있고, 내가 언급할 내용들을 객관화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 CCM이 해온 사역 안에서 지양해야할 것들 몇 가지를 정리 해본다면, 비록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답을 낼 수 있지 않을까.&lt;br /&gt;&lt;br /&gt;그렇다면 우선,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닌 동시대의 음악이 피해야할 방향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lt;br /&gt;&lt;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gt;&lt;br /&gt;&lt;/span&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gxKMVPfI/AAAAAAAAAZg/FzYBbr4va9s/s1600-h/b0044796_215052.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gxKMVPfI/AAAAAAAAAZg/FzYBbr4va9s/s400/b0044796_215052.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7839665184242"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1. 교회 안에서만의 사역&lt;br /&gt;&lt;br /&gt;단 어를 조심스럽게 봐주기 바란다. ‘교회 안에서의 사역'이 아닌 '교회 안에서만의 사역'이다. 물론, 교회 안에서의 사역은 분명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기독교 음악 사역은 교회를 이루는 성도에게 좋은 영적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 자체가 좋은 예배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닫혀있던 개인의 마음을 열어주기도 하고, 교회 내의 영적인 흐름을 하나로 묶어 내는 데 튼튼한 끈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노래들이 교회 안에서만 맴돈다는 것이다. 교회 밖으로 나갈 수 없게끔 자기 스스로 배타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자신을 교회에 묶어놓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례로, 가사에서 사용되는 단어에 기독교적 배타성을 드러내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한다면, 그것은 곧 교회의 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닌 '문화'의 좋은 요소들을 경험하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또한 단순히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문화를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이분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lt;br /&gt;&lt;br /&gt;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굳게 지켜야 한다. 스스로 거룩해져야 하고 성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배타성을 드러내기 위해, 세속적인 그들에게 이빨을 드러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스스로 거룩하지 못하고 성결하지 않을 때, 눈에 보이는 요소들로 자신의 성결함을 내세우고 치장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바리새적인 사고이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교 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적어도 교회 안에서만큼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말하고 기도하는 것이 어색해진다. 대화를 하거나 대표로 기도해야 할 때, 좀 더 거룩해 보이는 단어를 사용해야 교회 오래 다닌 티가 난다고나 할까. 또 그렇게 말하고 기도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을 표현하는 올바른 방법처럼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애써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마리아를 피하고 안식일을 강제로 지키며 음란한 여인을 돌로 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려운 진리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었다.&lt;br /&gt;&lt;br /&gt;  &lt;br /&gt;&lt;br /&gt;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동시대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된다. 대화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언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노래하면 된다. 그렇다고 금지단어 목록 따위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앙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단어들이 늘 존재한다. 다만, 노래의 가사나 대화 중, 혹은 대표 기도 시간에라도 좀 더 평범하고 편안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lt;br /&gt;&lt;br /&gt;산업적인 측면에서 이 이야기를 더 다룬다면, 음반제작자와 작사 작곡자, 그리고 아티스트들은 '현대적인 기독교 음악이 어째서 교회에만 맴돌고 있는가'에 대해서 직접 고민해 봐야 한다. '동시대적인 언어'로 노래를 만드는 것이 이 고민에 대한 작은 해답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2. 선교할 수 없는 사역자&lt;br /&gt;&lt;br /&gt;최 근의 CCM 아티스트 군을 잘 살펴보면, 교회 밖에서 사역할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앨범을 만들 때부터 이미 ‘교회 밖'은 사역의 대상으로 고민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위에도 밝혔듯이 교회 안에서의 사역도 분명히 중요한 사역이라 할 수 있지만, 사역이라는 말이 일반적인 기독교적 인지(認知) 안에서 '선교'를 크게 함의하고 있다면, 교회 밖에서 사역할 생각이 없는 사역자 군을 과연 뭐라 지칭해야 할른지 ... 난감하다. (물론, 교회안에서의 사역이 목적이어야 하는 사역자 군도 있다. 그런 사역에는 예배사역을 예로 들 수 있겠다.)&lt;br /&gt;  &lt;br /&gt;  &lt;br /&gt;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를 벗어나서는 CCM 아티스트가 자생력을 갖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 안에서조차 아티스트는 자생력을 지녔는지 쉽게 말할 수 없다. 몇몇 잘 알려진 아티스트라면 교회에서 별 무리 없이 환영받고 격려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들은 - 특히, 진보적 성향을 지닌 신인 아티스트라면 더더욱 - 냉담한 교회의 반응과 비어버린 주머니, 주린 배를 참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진보적 성향을 지닌 신인 아티스트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 밖에서의 사역을 염두에 둔 사역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즉, 실제로 선교의 가능성이 높은 사역자들이라는 이야기이다.&lt;br /&gt;&lt;br /&gt; &lt;br /&gt;예를 좀 들어볼까.&lt;br /&gt;자 타가 공인하는 음악성으로 CCM 뿐만이 아니라 일반 음악잡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얼터'- 실제로 얼터는 SUB라는 음악전문잡지에서 별 다섯개중 4개를 받았다. 얼터의 기사가 실린 곳, 맞은 편 페이지에는 김수철의 그당시 신보가 역시 별 다섯개 중 4개를 받았다. - 라는 아티스트가 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탁월한 CCM을 지향했고, 교회 안에 매이지 않았으며, 대학가 클럽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1집은 그런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탁월함과 비범함을 지닌 앨범이었고, 그들의 라이브 공연 역시 늘 만족스러운 수준의 공연이었으며, 그들 역시 그들의 작업에 대한 대단한 열정들을 지니고 있었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만 약 글을 읽는 이 중에 이들의 1집 앨범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지금 바로 한번만 더 들어보라. 그리고 이 앨범이 나왔던 98년 당시를 조금만 회상해 보자. 글을 읽는 당신이 출석하는 (혹은 하던) 그 교회의 98년을.. 그 교회에 얼터가 CCM 아티스트로 초대되었다면 어떤일이 벌어질른지 상상해 보시라. (물론 교회에서 초청한다고 덥석 덥석 가지도 않겠지만.) 아마 장년층의 반응은 한 장면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저게 무슨 가스펠(교회음악)이야?'라고 말하는 교회 어른들이 모습이 상상되시는지.&lt;br /&gt;&lt;br /&gt;  &lt;br /&gt;&lt;br /&gt;꼭 98년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6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조차 교회는 진보적인 성향의 아티스트들을 꺼리고 있다. 물론 교회가 ‘전부’ 잘못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진보적인 교회라 할지라도 예레미를 장년중심, 설교중심의 대예배 헌금 특송 시간에 세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교회 밖으로 눈을 돌린 이 멋진 CCM 아티스트들을 교회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기독교인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매체에 선교헌금을 내는 것 보다 이런 아티스트를 교회가 직접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선교에 보탬이 되지 않나 싶다.&lt;br /&gt;&lt;br /&gt;&lt;br /&gt;-3. 고민하지 않는 음악사역   &lt;br /&gt;&lt;br /&gt;원 론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했지만, 자신의 앎을 삶으로 바꾸고 그 삶으로 노래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여긴다면, 고민하지 않는 음악사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고민하지 않는 음악 사역자들의 예는 사실 너무 많다. 실제로 이 글을 쓰면서 굉장히 많은 예를 하나씩 하나씩 들어서 적어놓았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바리 바리 싸들고 와서 늘어놓는 일 자체가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 지우고 말았다. 삶으로 노래하지 않는 사역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 부분을 길게 언급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 큰 부담이다. 다만, 자신의 사역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그들', '사역자'의 이름을 걸고 있는 '그들'이 진정한 '사역자'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lt;br /&gt;&lt;br /&gt;그러면, 어떤 사람이 고민을 하는 사역자인가. 이 부분을 구체화시킨다는 건 위의 예를 적는 것 보다 더 어렵다. 그러나, 이것 역시 어느 정도는 상식 선에서 말할 수 있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① 그 사역에 대한 부르심이 있는가. 순간 순간 그 사역에 대한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고 그 은혜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가.&lt;br /&gt;② 그 사역을 위해 스스로 훈련하는가. 혹은 훈련받기 위해 노력하는가.&lt;br /&gt;③ 자신의 사역을 통해 영향을 받는 이들의 영혼에 얼마나 큰 관심이 있는가. 그들을 사랑하는가. 그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는 가.&lt;br /&gt;④ 어느 사역지를 가더라도 그 곳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가. 혹시 똑같은 노래 순서와 맨트로 매너리즘에 빠져있지는 않은가.&lt;br /&gt;⑤ 사역을 준비하고 임하는 순간 순간, 얼마나 순종하는가. 얼마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원하심에 민감한가.&lt;br /&gt;&lt;br /&gt;  &lt;br /&gt;&lt;br /&gt;이외에도 많은 조건(?)들을 들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자각이라고 본다. 만약, ‘사역’에 대한 애정보다, ‘사역’의 부산물에 대한 애정이 더 크다면, 자기 스스로 사역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을까?&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gxKMVPeI/AAAAAAAAAZY/6tSPoyBUMaY/s1600-h/b0044796_216146.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gxKMVPeI/AAAAAAAAAZY/6tSPoyBUMaY/s400/b0044796_216146.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7839665184226"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여기까지, 나는 CCM이라면, 그리고 CCM 사역자(혹은 아티스트)라면 ‘지양’해야할 몇가지를 적어 보았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위의 내용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거나, 다시 언급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이것은 위에 이야기 한 것만큼 중요한 지향점들이지만, 사실 모든 부분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아래의 모든 부분을 반드시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한국 CCM이 걸어왔던 길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그러나 존재했었던 바람직한 요소들을 정리해 보았다.&lt;br /&gt;  &lt;br /&gt;  &lt;br /&gt;&lt;br /&gt;-1. 선지자로서의 CCM&lt;br /&gt;&lt;br /&gt;위 의 예 중, '교회 안에서만의 사역'을 언급하면서 평소에 관심을 두던 사역의 영역이 생각이 났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바로 CCM의 선지자적 역할이다. 교회가 만약 세상의 소금이라면, 교회의 소금은 누구인가. 목회자가 성도들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제자화 시키는 데에 앞장서는 사역을 한다면, 목회자의 목회자는 누구인가. 사역자의 사역자는 누구인가. 교회의 아프고 병든 부분들은 과연 덮어두어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덮어두면 곪아터지고 썩어 문드러지는 상처이기에 하나님의 치유의 손이 필요한 부분인가. 교회를 향해 선지자적인 입장에서 그 상처들을 이야기하는 사역이 필요하다. 교회의 건강성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역자가 필요하다. 그 상처를 말하면서 같이 아파하고 그 상처의 회복을 위해 함께 애쓰는 사역이 필요하다.&lt;br /&gt;  &lt;br /&gt;  &lt;br /&gt;&lt;br /&gt;이전에 있던 CCM 중, Unison의 '맛잃은 소금'이나 다윗과 요나단의 '안돼요 안돼'가 이러한 사역성을 지닌 CCM이라 할 수 있겠지만, 교회의 건강성을 위해 상처를 드러냈다기 보다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평신도에게 아쉬운 부분을 조금 긁었다고나 할까... 좀 더 깊고 넓게 이런 방향성으로 사역을 해내는 사역자가 아직은 적다.&lt;br /&gt;&lt;br /&gt;-2. 작품으로서의 CCM&lt;br /&gt;  &lt;br /&gt;&lt;br /&gt;CCM은 사역인 동시에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 자체의 열매가 중요하고,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있어야 한다. 작품으로서의 의미나 가치를 무시하고, 같은 노래, 같은 스타일로 음반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사역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의미로는 사역을 먹어버린 사업일 수도 있다. 물론 작품의 수준을 말하는 기준은 그 작품이 어떤 종류의 것이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다. 장르적으로 말한다면, 트로트앨범을 재즈앨범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영화로 말한다면, ‘이퀄리브리엄’ 같은 저예산 SF에 ‘매트릭스’에 댔던 비평의 메스를 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즉, 작품은 그 작품의 수준이나 방향성등이 고려되어 그 가치가 정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lt;br /&gt;&lt;br /&gt;창작자의 차원에서 한가지를 더 말한다면, 기본적으로 표절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양심이고 예의이며 기본이다. 남의 것을 표절할 뿐 아니라 자기 작품을 다시 표절하는 것은 기본을 떠나 대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똑같은 코드 패턴, 멜로디 진행, 비슷한 주제... 물론 같은 부분의 사역을 향한 끝없는 부르심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최고의 아티스트이기에, 우리 역시 그의 형상대로 그 분야에 대해 최고의 아티스트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lt;br /&gt;-3. 대중을 올바로 이해한 CCM&lt;br /&gt;  &lt;br /&gt;  &lt;br /&gt;&lt;br /&gt;대중의 대중성을 잘못 이해해선 안된다. 대중성은 상업성이 아니다. 대중에게 먹힐 만한것, 팔릴만한 것을 따진다면 그것은 마케팅이고 상업이다. 지난 호에서도 밝혔지만, 상업성이나 사업성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절한 사업성, 상업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잘 포장된 CCM은 전달되기도 더 쉽다. 대중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정서적인 측면이다. 대중의 정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창작에 반영해야 한다. 대중의 정서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자기 정서를 고집하고 앞세운 예술작품을 추구한다면 그 작품은 좋은 사역이 되기는 어렵다.&lt;br /&gt;  &lt;br /&gt;다른 하나는 대중을 인격체로 이해한다는 측면이다. 사실 정서를 이해한다는 부분과 상통하기도 하지만, 인격체인 대중을 위해 고민한다면, 그 대중에게 필요한 사역을 추구하게된다. 이러한 사역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lt;br /&gt;지 금까지 CCM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서 사역과 산업을 추구해야 하는지 내 나름대로 의견을 펼쳐보았다. 글을 마무리하면서부터는 마치 이것이 해답인양 적어놓은 부분도 있는 듯 싶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해답이 아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각각 존재하듯이, 올바른 사역자에게는 그 나름의 ‘지양점’과 ‘지향점’들이 존재할 것이다. 사실,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보편적인 성향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생각과 나름의 답이 모이는 교집합 정도가 존재할 뿐, 진짜 정답은 자기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lt;br /&gt;&lt;br /&gt;  &lt;br /&gt;의견을 펼치면서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부분도 있었고,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운 한국 CCM의 약점들도 있었다. 만약 이 안타까움과 부끄러움들이 두렵다면 쓸 수 없는 글이었겠지만, 내 스스로에게 타이르는 심정으로, 내 자신의 거울로 삼기 위해 일부러 힘주어 이야기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참으로 모자라다. 그러나 모자란 자의 용기 하나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다른 이와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부끄럽더라도 정직하게 드러내기를 원한다.&lt;br /&gt;&lt;br /&gt;&lt;br /&gt;* 이 글은 지난 2004년 &lt;a href="http://ccm.co.kr/focus/2004_10/scolumn01.asp" target="_blank"&gt;CCMZINE&lt;/a&gt;에 기고되었습니다.&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402721939491747897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402721939491747897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402721939491747897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02721939491747897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02721939491747897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4/03/ccm-2-ccm.html' title='이 나라의 CCM에 관한 건조하고 개인적인 몇가지 생각 (2) CCM,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gw6MVPcI/AAAAAAAAAZI/UoeIs06N-QY/s72-c/b0044796_2131130.gif'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6128555713327405579</id><published>2004-02-02T01:55: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5.76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olumn'/><title type='text'>이 나라의 CCM에 관한 건조하고 개인적인 몇가지 생각 (1) 산업이 되고 만 사역</title><content type='html'>&lt;span style="font-size:100%;"&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c_KMVPUI/AAAAAAAAAYI/PjuhcWwaYRY/s1600-h/b0044796_2223040.gif"&gt;&lt;img style="margin: 0px auto 10px;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c_KMVPUI/AAAAAAAAAYI/PjuhcWwaYRY/s400/b0044796_2223040.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3682136841538" border="0" /&gt;&lt;/a&gt;&lt;br /&gt;나는 얼마전 대화중에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lt;br /&gt;&lt;br /&gt;" 우리는 CCM을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 같다. CCM 앨범을 접하면, 그 앨범의 의미라던가, 가사의 당위성, 곡 간의 개연성을 들어가며 심란한 메스를 들이대기 일쑤이다. 그러나, CCM은 그렇게 무거운 문화가 아니다. 복음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동시대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크리스천의 감성을 아티스트 나름의 표현법으로 표현해 낸 것을 CCM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표현의 방법은 '음악'일 것이다. 그것도 대중음악. 그렇기에, CCM은 좀 더 얕게 바라봐줘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CCM은 동시대의 대중을 위해서 알맞게 코딩되고, 조율되어진 문화이기 때문이다."&lt;br /&gt;&lt;br /&gt;&lt;br /&gt;내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CCM에 내재된 텍스트를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다. 엔드유저의 입장으로 CCM을 접할 때라면, CCM에 대한 너무 깊은 고민이 문화로서의 CCM을 무겁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한 이야기일 뿐이다. 혹은, 너무 심각한 자세가 이 판을 이 지경으로 몰아간 것 아닐까 하는 자각일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고민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들 뿐, 실제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전혀 안되니까...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그러나 고민 없이 하는 행동 역시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제대로 상황과 현실을 직시하고, 적당한 수준의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통해 유추된 결론을 가지고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문제 해결을 조금이나마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이 제부터 내게 허락된 지면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맨 처음 던진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일 수 있다. 이 글은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전에 해야 하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 글은 엔드유저 보다는 CCM 음반 산업 관계자나 아티스트, 그리고 칼럼리스트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건의랄까?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그렇다고 내가 이 글을 통해 대단한 진리를 밝히거나,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사실을 알려주리라고 상상하지 않길 바란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난 대단한 글쟁이가 아니다. 다만, 나름대로의 '상식'선에서 사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하고, 그 사고로 현실을 보며, 단순히 정리만 할 수 있다고 해도 만족스러울 듯 싶다.&lt;br /&gt;&lt;br /&gt;&lt;br /&gt;아마도 이 상식선의 정리는 몇 회에 걸쳐서 이루어질 것이며, 이 글은 그 몇 회 중 첫 번째 글타래이다. 이 글에서는 사역과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게 되겠지만, 대단한 사전정리나 자료수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몇년동안 보아온 CCM 산업계 (혹은 사역계?)의 흐름이나 맥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고민했던 부분들 중 그 덩치가 가장 큰 주제들일 뿐이다. 따라서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일 것이고, 때로는 감정적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수필처럼 재미있을 리도 없으니. 난 글쟁이로는 빵점인 셈이다. ^^;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dvqMVPWI/AAAAAAAAAYY/BFi8yf0Hptk/s1600-h/b0044796_2243544.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dvqMVPWI/AAAAAAAAAYY/BFi8yf0Hptk/s400/b0044796_2243544.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4515360496994"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CCM으로 통칭할 수 있는 크리스천 음악 사역(여기서는 예배음악 사역을 포괄해서 지칭해 본다.)은 좋건 싫건, 혹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음반산업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엔드유저가 새로운 CCM이나 예배곡을 접하기 가장 쉽고 간편한 통로 중의 하나가 바로 음원이기 때문이다. 그 음원이 CD나 Tape 같은 매체에 담겨져 있건, 아니면 온라인 사이트나 MP3 플레이어에 담겨져 있건 간에 말이다. (정확히 밝히자면, 가장 효과적인 크리스천 음악의 매개체는 악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 음악사역의 관점에서 보면, CD나 Tape 형태의 매체가 음악사역을 보조하는 - 혹은 보증하는 - 가장 안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으며, 몇년 전 부터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공유되는 디지털 음악 파일들 - MP3 등 -이 또다른 매체로 등장했다.)&lt;br /&gt;&lt;br /&gt;&lt;br /&gt;어 떠한 음원이건, 그 음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준과 형태가 어찌되건 '제작'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초도 레코딩을 48트랙 멀티로 하느냐, MD용 마이크나 보이스 레코더 기능이 들어간 MP3플레이어로 간단하게 녹음하느냐 하는 질적인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예를 들어, 밴드 음악이라면, 작곡을 하거나, 기존의 곡을 선곡하여 편곡하고 연습하고 레코딩을 하는 기초적인 공정 안에서 기본적인 제작이 이루어질 테고, 이 음원이 유통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매체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완성된 매체는 적절한 유통의 경로를 거쳐 엔드유저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했지만, 실은 이 모든 공정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손과 기술, 그리고 시스템이 필요하다.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좋은 영향력을 가진 음악이(혹은 음악 사역이) 엔드유저에게 전달되기 위한 제작과정과 유통 경로가 필요하고, 이런 제작과정과 유통경로를 통틀어서 음반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음반을 통한 음악사역에는 일반적인 음반산업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시스템과 시장의 규모가 필요한 것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80년대를 거치면서, 활발한 음악 사역과 엔드유저의 요구에 의해 기독교관련 음반 사역은 급격하게 그 규모를 키워나갔고, 80년대 말 CCM의 붐과 함께 단순히 사역이라고 말하기엔 덩치가 큰 산업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된 과정에는 그다지 큰 무리가 없었다. 작지만 적절한 수요가 존재했고, 80년대를 거치면서 공급 또한 원활했기 때문이다. 무리라고 한다면... 덜 성숙된 문화 전반의 저변이랄까. 관객도, 아티스트(혹은 사역자)도 음악사역과 음반산업에 존재하는 딜레마에 대해 덜 준비되어 있었다.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90 년대 초반부터 기독교 음반시장엔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많아지고, 소비하는 사람의 수는 그대로인 이 현상은 결국 혼란스러운 시장상황을 야기시켰다. 다른 시장에서라면,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질 때, 경쟁적으로 제품의 가격과 질이 현저하게 떨어뜨리거나, 역으로 제품의 질을 높여 강점을 만들어야 할텐데, 기독교 음반 산업에선 그런 정상적인 형태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음악의 질이나 사역자의 전문성이 높아지기보다는 '사역'이기에 현실과 먼저 타협하여 그 질을 낮추는, 어찌 보면 말 안되는 역성장이 일어나고, 팔리지 않는 앨범과 사역이 없는 사역자가 속출하게 된다.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무리하게 음반제작을 진행한 사역자는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앨범을 팔기 위한 사역을 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게 되었다. 크리스천 기획사 역시 사역에 헌신한 사역자를 찾기 보다는 노래 잘하고 마스크가 뛰어난 크리스천들을 엮어서 팀을 만들어 내고, 유명한 사역자의 좋은 곡, 그리고 유명한 세션들의 편곡과 연주로 음반을 제작하는 '안전' 위주의 음반 제작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계약에 묶여, 내지 말아야 할 앨범들을 어쩔 수 없이 제작해야 하는 아티스트도 생기게 되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90년대 중반 이후, 대중음악계에서 몇몇 앨범이 100만장을 상회하는 앨범판매량을 기록하면서 급격히 성장한 음반산업에 대한 기대심리로 크리스천 음반시장에도 메이저 음반사들의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는 자신을 과대하게 포장하면서 살아남는 사역자가 생겨났다. 어떤 앨범은 과도한 예산 진행으로 앨범이 제작되어 사역자가 갖는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전에 산업적으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나 감이 없는 사역자가 제작의 주체가 되어 기획사가 손해보는 경우도 발생되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2000 년대, 더 이상 음반산업은 일반시장에서 조차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음반 장사 가지고는 돈을 못 번다. 이제 이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음반산업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고, 더 이상 부푼 꿈을 안고 음반을 제작하는 일은 없다. 위험 부담을 안으면서 까지 음반을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아티스트나 음반 제작자를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이 쯤 되면 "대체 뭐가 잘못된걸까?" 라는 질문은 사실 의미가 없다. 그건 마치 공부 안한 학생이 시험점수가 엉망인 것에 의문을 갖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물론, 위의 현상들을 모두 '문제점'으로 인식하기엔 무리가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선 합리적인 성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잘못된 방향성의 산업에 있어서의 성장이 오히려 사역에 있어서의 퇴보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dhaMVPVI/AAAAAAAAAYQ/TXxXBefoMwg/s1600-h/b0044796_225155.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dhaMVPVI/AAAAAAAAAYQ/TXxXBefoMwg/s400/b0044796_225155.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4270547361106" border="0" /&gt;&lt;/a&gt;&lt;br /&gt;&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방금 언급한 부분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아티스트는 '사역'이 아닌 '산업'을 걱정하게 되었다. 영세한 제작 시스템이 늘 그렇듯, 정상적인 제작 시스템에 비해 적은 사람이 보다 많은 부분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다. 혹은 오지랍 넓은 아티스트가 이것 저것 챙겨가면서 음반사역, 아니 음반사업을 진행시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절대로 말 못 하겠다. 좋은 크리스천 아티스트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에 대해 민감할 줄 알아야 하고, 시대의 아픈 부분을 집어내어 함께 공감하고, 그 아픈 부분에 대해 하나님이 말하시는 것을 자신의 예술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바람직한 방향과는 정반대이다. 아티스트가 사장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는 아티스트가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로 만든 기획사가 결코 '제대로'된 사역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 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자, 이쯤에서 웃기는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CCM, 너는 왜 산업이 되었나?'&lt;br /&gt;&lt;br /&gt;사 실 이 질문은, 산업 종사자에게 하기보다는 아티스트에게 해야 옳겠다. 그것도 너무 깊이 관여하고 있는 몇몇의 아티스트에게. 문제는 그 아티스트들이 이 업계에 무시 못할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천 음반의 제작 주체는 산업 종사자이기보다는 아티스트인 듯 싶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일반 음반 산업계의 음반제작의 방향성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팔리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에겐 성적인 코드를, 반항을 좋아하는 이에겐 록을, 고급스러운 사운드 매니아에겐 비싼 가격의 SACD를, 이것이 이 시대 음반산업 종사자들의 타겟 마케팅이고, 그것들이 바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예술 제품"이다. &lt;/span&gt;    &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소비와 생산을 촉진시키는 것에 산업의 이유가 있다면, 사역이 산업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옳고 그름을 따질 수나 있는 것일까?) 산업의 눈으로만 본다면, 사역의 이유가 없는 유명한 아티스트의 새로운 편집앨범(?)도 말이 된다. 다른 시장보다 feedback이 한참 느린 CCM 시장의 헛점을 이용해서, 좀 덜 알려진 외국 아티스트의 곡을 적당히 표절한 CCM 곡도 말이 된다. 기획사가 기획사의 의지로 아티스트를 구성하고, 곡을 주고, 편곡을 해서 사역(성도를 감동시키는 방법까지도 알려주면서)을 시키는 것도 말이 된다. 동시대의 비기독교인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CCM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lt;br /&gt;그런데. 이 쯤되면 '사역'이란 타이틀은 떼어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을 타성과 매너리즘에 빠져 계속 해나가는 아주 유명한 사역자, 기본적인 신앙인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양심마저 저버린 늘 비슷 비슷한 음악과 멘트로 사역하는 사역자, 교회가 아니면 다른 곳에선 절대로 아무 말도 못하는 사역자, 프로그램화 된 사역 콘티대로만 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한계 안에 가두어버리는 사역자,... 위의 예에서 '사역자'라는 말이 참 어색하지 않은가. 그 말이 어색한 이유는 '사역자'라는 정체성 안에서는 죽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형태의 사역자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산업환경이 되었다는 점이다.&lt;br /&gt;&lt;br /&gt;기 획사나 아티스트가 그 삶과 사역을 유지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금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금전적인 여유를 누리고 있는 아티스트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그 적은 아티스트들이 '사역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여유를 만들기 위해선, (약간이라도 전문성을 가진 산업 종사자라면) 산업적인 필요에 의한 '제품'을 기획할 수 밖에 없다. 산업적인 요구와 필요로 사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찌 보면 그들에겐 당연한 것일테고, 결과가 좋다면 일종의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다.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산 업화를 사역의 천적으로 몰아세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적절한 산업화는 당연히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좋은 질은 문화 자체의 질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 그러므로, CCM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사역의 기반을 흔들지 않을 정도의 산업화는 반드시 필요하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문제는 사역의 기반을 흔드는 음반제작의 형태나 기획 방향이라고 본다. 아까 언급한, 도저히 사역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 힘든 사역행위들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 산업의 필요로 사역을 제조해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산업이 사역을 먹어버린 CCM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CCM 처럼 Mind가 그 바탕인 예술을 산업적인 필요에 의해서 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마치 대형교회 목사를 고소득 직종으로 이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부르심 없이 사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교사가 있을까? 모쪼록 산업이 마인드를 먹어버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사역의 필요에 의해 산업이 그 사역을 돕는 모양새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하나님의 아티스트라면, 하나님의 산업종사자라면, 위대한 설계자이고, 창조자이며, 운영자이신 하나님의 올바르고 성실하게 일하심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lt;/span&gt;    &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dvqMVPXI/AAAAAAAAAYg/nWXEZY_1yBs/s1600-h/b0044796_2255250.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dvqMVPXI/AAAAAAAAAYg/nWXEZY_1yBs/s400/b0044796_2255250.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4515360497010"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lt;/span&gt;&lt;span style="font-size:100%;"&gt;사역의 무분별한 산업화가 문제라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있는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물론, 억지로 유추해낼 만한 많은 답이 있다. 음반사역산업 방향의 올바른 정리와, 사역 및 산업 종사자의 전문성 확보, 수요에 따른 적절한 공급 등등, 만들어 낼 만한 답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 글이 무슨 컨설팅 업체의 파이널 리포트도 아니고, 이벤트 기획서가 아닌 이상, 답을 강요하거나 강요받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문제에 대한 또다른 문제를(혹은 답을) 억지로 이끌어내고 싶지는 않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것에는 대단한 이유가 없다. 위에서도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 상식적인 선에서 정리하고, 문제를 인지하는 정도가 이 글의 목적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이 상식적인 정리의 출구는 닫혀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Something About C.C.M 을 기고하면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공감을 하시건 반감을 가지시건, 함께 그 답을 찾아가길 원한다. &lt;/span&gt;    &lt;span style="font-size:100%;"&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 이 글은 지난 2004년 &lt;/span&gt;&lt;a style="font-style: italic;" href="http://ccm.co.kr/focus/2004_09/scolumn01.asp" target="_blank"&gt;CCMZINE&lt;/a&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에 기고되었습니다.&lt;br /&gt;&lt;/span&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6128555713327405579?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6128555713327405579/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6128555713327405579&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128555713327405579'/><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6128555713327405579'/><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4/02/blog-post.html' title='이 나라의 CCM에 관한 건조하고 개인적인 몇가지 생각 (1) 산업이 되고 만 사역'/><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c_KMVPUI/AAAAAAAAAYI/PjuhcWwaYRY/s72-c/b0044796_2223040.gif'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4494230785481738147</id><published>2004-01-28T02:07: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6.71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내 몸에 잘 맞는 찬송의 옷 - 임마누엘의 세번째 앨범, 내 입술로</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fZ6MVPYI/AAAAAAAAAYo/P3W5AxKx4Mw/s1600-h/b0044796_2264071.gif"&gt;&lt;img style="margin: 0px auto 10px;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fZ6MVPYI/AAAAAAAAAYo/P3W5AxKx4Mw/s400/b0044796_2264071.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6340721597826" border="0" /&gt;&lt;/a&gt;&lt;br /&gt;재미없는 이야기로 시작하자면,&lt;br /&gt;이 해는, 한국에서 아시안 게임이 있었고, 미국에선 챌린저호 폭발참사가 있었으며,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있던 해이기도 하다. 또한 서울대생의 분신사건과 인천사태, 건국대학교 사태가 있었다. 올림픽 대로가 개통되었고, 천안 독립기념관 화재와 김포공항 폭발참사가 있었던 한 해이다.&lt;br /&gt;&lt;br /&gt;재미있는 이야기로 받아보자면,&lt;br /&gt;만 민의 벗, '테트리스'가 IBM PC용으로 개발되고 PC에 '바이러스'가 첫 등장한 해이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가 제작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핼리혜성'이 나타났으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지구의 두번째 위성 '크뤼트네'가 발견된 해이다.&lt;br /&gt;&lt;br /&gt;이리도 다사다난했던 1986년에 한국 CCM에는 대체 무슨일이 있었을까?&lt;br /&gt;  &lt;br /&gt;  &lt;br /&gt;아는 분은 다 아는 일이겠지만, 81년 창단된 "주찬양"의 공식적인 첫번째 앨범. [그이름]이 출시된 해가 바로 86년이다.&lt;br /&gt;그리고 또 하나, 꿈이 있는 자유, 천민찬 밴드(천뺀-큰 바위 얼굴)의 천민찬, 룩뮤직, 그리고 어노인팅... 이런 아티스트 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수혈한 "임마누엘 선교단"의 시작이 바로 86년이다.&lt;br /&gt;&lt;br /&gt;&lt;br /&gt;86년, 임마누엘선교단은 활동의 초기부터 체육인교회(지금은 할렐루야 선교교회)에서 매주 목요일 예배 모임을 시작했다. (필자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사실 조금 충격이었다. 임마누엘 선교단의 기반이 예배 음악이었다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1집 '큰사랑 인하여'의 음악적 이질감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 음악적 이질감 너머의 예배적 심상을 깨달았다고 해도, 어찌 보면 formal하다 할 수 있는 교회에서의 집회형식의 예배가 그 뒤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87년, 임마누엘선교단을 설립한 이성국씨는 정종원 전도사와 함께 임마누엘 선교단을 풀타임으로 헌신하는 팀으로 재조직하여 이끌어 나간다.&lt;br /&gt;&lt;br /&gt;&lt;div align="center"&gt;예수만이 참 길이라면서 그 길만을 걷는 자 적으며&lt;br /&gt;예수만이 참 진리라면서 그 기쁨을 말한 자 적다네&lt;br /&gt;예수만이 참 생명이라며 소중하게 모신 자 적으며&lt;br /&gt;예수만이 참 구주라면서 그 사랑을 전한 자 적다네&lt;br /&gt;예수만이 나에게 길과 진리 되셨네&lt;br /&gt;참 생명이 되심을 나는 말할 수 있네&lt;br /&gt;우리 모두 진실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세&lt;br /&gt;진심으로 함께 고백해 오직 오직 예수님&lt;br /&gt;&lt;br /&gt;오직예수님 / 정종원 작사. 작곡 / [큰 사랑 인하여 - 임마누엘 찬양 1.]&lt;/div&gt;&lt;br /&gt;&lt;br /&gt;임 마누엘의 1집, [큰사랑 인하여]는 정종원의 곡으로 시작된다. 물론, 박명선, 김성훈 등 다른 작곡자들의 곡이 수록되어있지만, 정종원의 곡이 비중이 높았던 이 앨범은 '예배'앨범으로 발표되긴 했으나, 실제의 예배곡으로 사용하기엔 지금까지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나마 입에 붙기 쉬운 멜로디와 이해가 쉬운 가사로 이루어진 첫 곡 '예수만이' 조차 중간의 변조에서는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한 소절 한 소절이 새로울 정도로 적응이 쉽지 않다. (self title인 '큰사랑 인하여'를 무반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독특한 음악적 역량은 분명 인정받아야겠지만, 인정받아야 할 독특한 음악은 당시의 예배에 '적용하기에 쉽지 않다'는 벽을 남겨놓았다. 그나마 제일 널리 알려지고 불리워진 것은 아마도 박명선 작곡의 시편 42편이 아닐까 싶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두 번째 앨범은 전작에 비해 곡은 훨씬 부르기 쉬워지고, 수준(?)은 조금 더 높아진 듯한 느낌을 준다.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두번째 트랙 '하나님 이 세상을'은 예쁜 화성과 멜로디를 가진 곡이었고, 왠지 호방한 느낌을 주는 한국적 멜로디가 돋보이는 몇몇 곡들 - ‘주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여호와의 친밀한 사랑은’, ‘그 믿음 간직 하여라’ 등 - 은 '민속적'이지 않은 '한국적'인 멜로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앨범에서 '아침에 나로 주의', '주의 말씀은', '오주님 나 주님을',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여호와의 영광을' 등은 꿈이 있는 자유의 앨범과, 어노인팅의 앨범 들에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그만큼 시대를 앞선 혹은 아우르는 감성의 좋은 곡들이 많았다고 볼 수 있으며, 정종원의 곡쓰기가 대중의 감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앨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앨범 역시 그 당시에는 크게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독특하고 좋은' 곡들이지만 '예배곡'으로 인정되지 않았다고나 할까...&lt;br /&gt;  &lt;br /&gt;  &lt;br /&gt;그리고, 이제 다룰 임마누엘의 세번째 앨범 [내 입술로]는, 임마누엘 선교단에게도 한국 가스펠계에게도 좀 더 의미가 있는 앨범이었다.&lt;br /&gt;  &lt;br /&gt;&lt;br /&gt;임 마누엘의 모든 앨범의 촛점은 '예배'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작의 경우, 앞서도 밝혔지만, '예배'를 지향했으나, 현실적으로 '예배'에 적용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 있는 독특한 색채와 스타일이 남아 있었다. 어찌보면, 그것은 워십 아티스트로서의 창조성이 적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한국교회 상황이 그런 예배곡들을 수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진것은 없겠지만, 그 당시에 비해 목회자들이 예배에 수용하는 예배곡의 수준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fhKMVPbI/AAAAAAAAAZA/_N_MwGwDtP8/s1600-h/b0044796_2282036.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fhKMVPbI/AAAAAAAAAZA/_N_MwGwDtP8/s400/b0044796_2282036.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6465275649458"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찬양 찬양&lt;br /&gt;형제여 우리 모두 다함께&lt;br /&gt;주의 인자하심을&lt;br /&gt;주님 이곳에&lt;br /&gt;주는 우리의 소망&lt;br /&gt;내주 되신 주&lt;br /&gt;내 입술로&lt;br /&gt;거룩 거룩 하신주&lt;br /&gt;죽임을 당하신 어린양&lt;br /&gt;전능하신 주님&lt;br /&gt;예수 그분은&lt;br /&gt;주를 부르라&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1990 년 봄에 출시된 [내 입술로]의 노래들이다. 그러니까... 15년전 출시된 앨범의 노래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내 입술로]를 앨범으로 접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친근한 제목이 꽤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형제여 우리 모두 다함께'와 '내 입술로' 일텐데... 거기다가 어노인팅의 3집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내 주 되신 주' 역시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지 금은 청년, 혹은 청장년이 되었을 그 시기의 중,고등학생과 청년들에게 이 노래들은 참 좋은 벗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예배곡에 대해 조금 더 일찍 문을 연 교회라면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예배에서 부를 수 있는 곡들이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모임을 통해, 집회를 통해, '문학의 밤'을 통해, 찬양집회를 통해 숱하게 만날 수 있는 노래들이었다. 그 노래들을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던 이유가 뭘까. 그 노래들의 악보마다 '예배곡'이란 딱지가 붙은 것도 아니었고, 누가 이 노래들만 부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lt;br /&gt;그 노래들은 어쩌면, 임마누엘 선교단의 '사역의 결정체'였는지 모른다. 물론, 이후에도 4집 [내 영이]나 7집 [내 기뻐하는 자]등을 통해서 계속 '예배'를, '예배곡'을 힘주어 말한 임마누엘 선교단이지만, 3집의 노래들 만큼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다. (이후의 앨범들이 약간 과소 평가 받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3집인 [내 입술로]가 과대평가 받은 것은 아니다.)&lt;br /&gt;&lt;br /&gt;그렇다면, 1집과 2집을 지나는 동안 임마누엘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걸까?&lt;br /&gt;우 선, 사역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전엔 보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로 앨범 재킷 디자인을 해오던 미술팀(혹은 미술부)이 기쁨의집(대표:이성국)으로 분리되었고, 음악적인 사역은 그 이름 그대로 임마누엘선교단(정종원)으로 보다 전문적인 사역이 가능해졌다. (이 관점이 옳은 것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또한, 이런 사역적인 분리가 3집 앨범에 영향력을 끼쳤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fg6MVPZI/AAAAAAAAAYw/E27D_L-O-5w/s1600-h/b0044796_229278.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fg6MVPZI/AAAAAAAAAYw/E27D_L-O-5w/s400/b0044796_229278.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6460980682130" border="0" /&gt;&lt;/a&gt;&lt;br /&gt;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임마누엘 3집은 1,2집에서 보여주었던 임마누엘의 정서와 한국적인 정서, 그리고 한국 교회의 정서가 만나서 섞이고 화해하는 '점'에 존재한다.&lt;br /&gt;&lt;br /&gt;  &lt;br /&gt;&lt;br /&gt;87 년부터 '경배와찬양'이라는 이름의 사역으로 한국교회의 예배사역을 독보적으로 주도해왔던 두란노 경배와 찬양(현, 올네이션스 경배와찬양)의 사역이 주로 외국곡의 번역에 치중되어 왔다면, 비슷한 시기에 사역을 시작한 임마누엘은 의도했건 안했건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 이었다. 어찌 본다면, 굉장히 고집스럽게 한국인의 곡을 찾으려 애썼고, 정서적인 타협점을 도출해 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보였는데, 필자에게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앨범은 바로 1집과 2집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을 단순히 '다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틀릴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정서가 한국교회에는 일반화되어 있었고, 그 피드백을 받지 않았을까.&lt;br /&gt;&lt;br /&gt;  &lt;br /&gt;여 하튼 1집과 2집을 통해 '임마누엘선교단의 정서'와 그들이 추구하는 어떤 것 - '한국적인 예배의 정서' 같은 것 - 을 엿볼 수 있었는데, 3집 이전의 앨범에선 이 정서들이 서로 섞이지 않았다는 느낌이 많았다. 예를 들어 1집의 '큰 사랑 인하여'의 브릿지 부분의 이질감이라던가, 2집의 '주님을 찬양합시다'에서 후렴이라고 볼 수 있는 "만왕의 왕~ 예수를.." 부분의&lt;br /&gt;화성 들을 "임마누엘의 정서"라고 한다면, 1집의 '오직 예수님'의 첫 번째 주제 "예수만이 참 길이라면서" 부분과 2집의 '주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의 첫 4마디의 동양적인 선율 같은 것을 "임마누엘이 추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임마누엘의 1집과 2집에서 이 '점'들이 '한국적인 예배의 정서'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본다. 물론, '한국적인 예배의 정서'가 무엇인지 드러내어야 마땅하겠지만, 변수가 너무 많고... '예배'라는 상황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수준의 음악과, 정서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사와 화성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두자.(이것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좀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ㅡ,,ㅡ) 위의 세가지 '점'이 만나는 앨범이 바로 3집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임마누엘에게, 한국 CCM에게, 한국의 예배음악에게 적지 않은 성과이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왜 내가 이렇게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일까? 필자가 객관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선, 한가지만 보자. 외국의 무수히 많은 검증된 아티스트들의 탁월한 예배곡들을 번역하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한국적인 상황과 정서에 맞는 좋은 예배 곡을 만드는 것이 '쉬울까'. 혹은 '바람직할까'.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한국적'이란 단어와 '민속적'이란 단어를 혼돈하고 있다면, '제발 그런 편견은 버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민속적인 선율과 장단을 지닌 좋은 곡들이 많다. 필자 역시 그런 곡을 선호하고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도를 (예배의 차원에서)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민족적인 흐름과 민속적인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우리나라의 민족적인 정서는 서정적이며 여러모로 훌륭하다. 그렇다고 해도 민속적인 정서가 한국적인 정서를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한국적'이라는 단어가 대표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 전통의 정서, 민속적인 정서를 말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한국의 문화 상황이라고 본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그런 의미에서 '한국적 예배의 정서'란 지금 현재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모여 예배할 때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화적인 정서를 말한다. 문제는 한국 CCM의 태동기, '문화선교'를 내세우며 시작된 수많은 선교단과 아티스트들이 '예배'의 측면에서는 그렇게 도전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충분하게 한국적인, 혹은 한국화 되어 있는) 찬송가의 곡조를 바꾸어 국악으로 부르는 것을 '도전적'으로 볼 수는 없다. 새로운 국악찬양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한국적인 예배와 접점을 충분히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너무 앞선 의욕으로 제대로 된 열매를 기대하기 힘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곡의 한국화, 혹은 한국적인 예배의 정서에 맞는 예배곡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이다.&lt;br /&gt;&lt;br /&gt;그렇기 때문에, 임마누엘은 3집을 통해 한국의 한국적인 예배를 효과적으로 섬겼으며, 지금까지도 섬기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세 번째 앨범을 통해 우리 정서와 현실에 가장 알맞은 '찬송의 옷'을 제단해 냈다.&lt;br /&gt;&lt;br /&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fhKMVPaI/AAAAAAAAAY4/MzhkyAx5gJw/s1600-h/b0044796_229341.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fhKMVPaI/AAAAAAAAAY4/MzhkyAx5gJw/s400/b0044796_229341.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6465275649442"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이 앨범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몇 곡을 제외하고는 사실 생소한 곡이 더 많을 것이다. 앨범에 수록된 곡 모두가 탁월한 곡이지만, 그 중 몇곡을 추려서 소개하자면,&lt;br /&gt;  &lt;br /&gt;앨 범의 처음을 여는 '찬양 찬양'은 '찬양 찬양 전능하신 주 찬양해'라는 주제가 반복되는 곡이다. 임마누엘 적인 독특한 브릿지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고민하며 선택한 '단순함'이 느껴지는 노래다. (내가 읽어봐도 말이 어렵다. ㅡ,ㅡ) 그 뒤를 잘 알려진 '형제여 우리 모두 다함께'가 이어준다. 회중을 예배로 초대하고 예배자로 자연스럽게 서게 만드는 쉬운 가사와 멜로디는 결코 쉽지 않았을 '고민'과 '의도'가 엿보인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예배곡은 예배하면서 만들어지는 듯 싶다. '주의 인자하심을'은 하나의 곡에 두 가지 스타일을 담아내었다. 처음에는 잔잔한 4비트의 곡으로, 그리고 나중엔 같은 주제와 같은 가사로 조금 빠르게 편곡되었는데, 심플한 화성과 예쁜 선율이 주는 느낌이 각각의 스타일에서 좋은 대비를 준다. (4집 [내 영이]의 '주의 인자하심이'와는 분명 다른 곡이긴 하지만, 선율의 구성에 있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이전의 임마누엘의 색깔과는 분명히 다른 곡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전주와 코럴(choral)의 분위기가 나는 선율과 화성은 클래식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선율을 잘 뜯어보면, 이전의 임마누엘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전능하신 주님'은 지금 들어도 좋은 예배곡이다. 어찌 본다면 '내 입술로'나 '형제여 우리 모두 다함께'등과도 비견할 만한 좋은 선율과 대중적인 화성이 있는 곡이다. 여유 있고 서정적인 진행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표현하는데 '서두름은 없지만, 부족함도 없이' 채워서 표현한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예수 그분은'이란 노래는 천민찬이라는 새로운 아티스트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던 트랙이었다. 곡을 쓴 것도 천민찬이었고, 약간 발음이 새는 듯하면서도 독특한 메인 보컬 역시 천민찬이었으니(당시에는 대중음악 쪽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이던 김민우가 연상되었었다. ^^;;), 이 노래는 천민찬의 데뷔 트랙인 셈이다. '예~수 그분은 누구신가'라는 코러스의 테마에 '그는 주, 그는 왕'이라는 솔로 테마가 화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지만, 다음 곡인 '주를 부르라'의 앞부분에 그 주제가 다시 한번 조용하고 느리게 반복되며 그 흐름을 이어간다. 아마도 '주를 부르라'의 약간 무거운 분위기로 갑자기 바뀌는 것에 대한 예비가 아닐까 싶다.&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정 직하게 이야기하자면, 필자는 지금은 이 앨범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93년쯤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LP로 이 앨범을 가지고 있었는데, 군대를 가면서 누군가에게 선물로 준 기억이 마지막이다. 하여, 충분한 감상 없이 명예의 전당에 감히 이 앨범을 올리는 것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죄송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긴 세월을 지나고도 내 머릿속을 감도는 이 앨범의 정서는 아마 앞으로 긴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좋은 감동일 것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세월을 아우르는 감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감동이 흘러나오는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런 노래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 세대의 정서와 감성을 아우르고, 시대를 바라보고 선도해내며,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하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지 금 당장 그 답을 내 스스로 나에게서 찾을 수는 없다. 내가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질문에 구체적인 정답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아티스트로서 창조에의 갈망과 보다 나은 것, 보다 좋은 작품으로의 추구와 사역자로서 회중들의 정서와 감성을 이해하고 아우르며, 또 사역자로서 시대와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 은혜를 갈망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고, 다른 이에게서 그 형상을 발견하며, 나 또한 닮아가는... 신앙인의 기본을 지킬 때... 조금이라도 그 답에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삶을 추구한다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작품이, 좋은 노래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lt;br /&gt;&lt;br /&gt;  &lt;br /&gt;  &lt;br /&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 이 원고는 2004년 1월 28일을 기준으로 집필된 것입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 기술된 내용의 대부분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와 감상이 그 축입니다. 따라서 다른 개인, 혹은 단체의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필자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으시다면 필자의 이메일(lee@jieum.net)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 이 글은 2004년 2월 &lt;/span&gt;&lt;a style="font-style: italic;" href="http://ccm.co.kr/focus/2004_09/fame01.asp%22"&gt;CCMZINE&lt;/a&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에 기고되었습니다.&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449423078548173814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449423078548173814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449423078548173814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49423078548173814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449423078548173814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4/01/blog-post.html' title='내 몸에 잘 맞는 찬송의 옷 - 임마누엘의 세번째 앨범, 내 입술로'/><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fZ6MVPYI/AAAAAAAAAYo/P3W5AxKx4Mw/s72-c/b0044796_2264071.gif'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147196370560962687</id><published>2003-12-02T01:46: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7.036+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CCM'/><title type='text'>새로운 날의 안전한 불시착 [알레듀오 3집 - 새로운 날들]</title><content type='html'>&lt;span style="font-size:85%;"&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agaMVPTI/AAAAAAAAAYA/19I56OcaRyA/s1600-h/b0044796_241508.gif"&gt;&lt;img style="margin: 0px auto 10px;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cursor: pointer;" src="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agaMVPTI/AAAAAAAAAYA/19I56OcaRyA/s400/b0044796_241508.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70954832608562" border="0" /&gt;&lt;/a&gt;&lt;br /&gt;&lt;br /&gt;(리뷰를 읽기 전에...))&lt;br /&gt;처 음 알레듀오 3집에 대한 리뷰를 부탁 받았을 때, 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그들을 칭찬하기로 작정한 티가 풀풀 나는 그런 글을 쓰려고 생각했었다. ^^;;; 그만큼 그들의 2집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사역이라던가, 내가 만나본 사역자로서의 그들에게도 역시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 덕분인지, 리뷰를 쓰는 것에 상당한 부담이 느껴졌었고, 오랜 고민 - 알레듀오의 이전 앨범을 다시 들어보고, 3집도 꼼꼼하게 다시 들어보는 작업과 이 리뷰의 3배정도 되는 글의 작성 -을 한 후에야 이 리뷰를 쓰게 되었다. 리뷰를 쓴 지금 역시, 난 여전히 알레듀오의 팬이기를 자청한다. 이 리뷰는 그러한 내 애정을 담은 글이다. 비록, 그 애정이 ‘쓴 것’일 찌라도...&lt;br /&gt;&lt;br /&gt;암울하던 어제는 다 지나가고 / 새 날이 와&lt;br /&gt;오래 기다려왔던 이 자유로움 / 새 날이 와&lt;br /&gt;느껴볼 수 없었던 기쁨과 여유 / 새 날이 와&lt;br /&gt;따뜻한 햇살 속에 새로운 사랑 / 새 날이 와&lt;br /&gt;- '새 날이 와', 알레듀오_03(윤원효)&lt;br /&gt;&lt;br /&gt;&lt;br /&gt;암울한 CCM 시장에서 이 젊은 아티스트들은 과연 새 날을 맞을 수 있을 런지는 의문이지만, 2001년 1집을 필두로 올해에도 변함없이 새로운 세 번째 앨범을 들고 다시 돌아온 알레듀오를 두 손을 들고 환영하고 싶다.&lt;br /&gt;&lt;br /&gt;2000 년대, 음반 제작환경에 생긴 가장 큰 변화라면 홈레코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홈레코딩이라고 해서 집에서 레코딩 하는 법 정도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PC를 기반으로 한 미니멀한 하드레코딩 시스템 정도라고 정리하면 되겠다.) 98년 정도를 기점으로 왕성해진 인디레이블의 음반 제작 역시 초반에는 레이블과 계약이 되어 있거나 레이블이 소유한 B급 스튜디오에서 제작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런 문장을 집어넣으니 마치 공상과학만화 같지 않은가... ^^;)과 과도하게 깔려있는 인터넷 인프라 등의 환경은 적절한 장비와 PC(IBM PC건 매킨토시이건)만 있다면 스튜디오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음반 하나쯤은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레코딩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기술인 마이킹이라던가 믹싱, 마스터링은 여전히 스튜디오 엔지니어, 그들만의 금단의 성역이긴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본다면 pre-production 작업 개념이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의 음반 제작 환경에 좋은 모델을 제시해 줄 수도 있는 일이다.&lt;/span&gt;  &lt;span style="font-size:85%;"&gt;&lt;br /&gt;&lt;br /&gt;&lt;br /&gt;홈레코딩의 좋은 점이라면, 프로듀서나 뮤지션의 '영감'이나 ‘상상’을 제작에 적용하는데 유연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A급 스튜디오에서 그런 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유연하다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A급 스튜디오는 사용 시간에 따라 돈이 너무 많이 든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알레듀오 의 세 번째 앨범 [새로운 날들]는 그러한 홈레코딩 프로세스를 이용해서 제작된 앨범이다. 그런 상황을 감안할 때, 음반 자체의 완성도는 뛰어난 수준이다. 전작과 다름없이 어린 작곡자 윤원효의 송라이팅은 만만하지 않다. 예쁜 멜로디 라인과 화성, 그리고 적절한 편곡은 과연 이 곡의 송라이터가 고등학생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lt;/span&gt;  &lt;span style="font-size:85%;"&gt;&lt;br /&gt;대중음악 시장에서 볼 수 없는 CCM 시장의 특징이 하나 있다. CCM 시장에선 그 '노래'를 누가 불렀는가 보다는 누가 만들었나에 초점을 둔다. 고맙게도 시리... 사실 그것은 송라이팅 능력을 인정하는 시장이 형성 되었다기 보다는 음반 보다는 악보(그것도 태연하게 불법으로 복제되어지는 악보들) 중심으로 노래가 전해지기 때문이리라. 여하튼, CCM 시장은 작사 작곡자에게 점수를 더 준다.&lt;br /&gt;송라이팅은 그 노래의 주인이 아티스트인가 아닌가를 말해주는 좋은 척도이다. 최소한 이 가수가 얼굴마담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런 척도를 놓고 볼 때 알레듀오는 일단 아티스트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최소한 그들은 그들만의 노래를 만들어 내는데 많이 집중하고 있고, 덕분에 최근 대중음악이건 CCM이건 씨가 말라 찾아보기 힘든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의 아티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lt;br /&gt;&lt;br /&gt;신작 [새로운 날들]는 전작과 다름없이 윤원효의 송라이팅에 많이 기대고 있는 앨범이다. 큰 변화도 없고, 그렇다고 큰 하락도 없는... 감히 말하자면 ‘평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lt;br /&gt;&lt;br /&gt;&lt;br /&gt;이 앨범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 앨범 안에서는 더 이상 알레듀오가 Rock 밴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운드는 미니멀한 Rock 밴드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 앨범의 프로듀싱을 알레듀오 스스로 하지 않았다면, 이 앨범의 사운드나 편곡의 방향 역시 대폭 수정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멜로디나 화성의 구성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은 Avalon 같은 팝 뮤지션의 스타일을 따르는 듯 싶다. 아니면, 이승환일까? 알레듀오는 이 앨범에서 상당히 안정적인 장르 여행을 시도한다.&lt;/span&gt;  &lt;span style="font-size:85%;"&gt;&lt;br /&gt;&lt;br /&gt;우선 직선적이지만 멜로딕한 ‘전형’적인 8비트 록 “주님 품에 달려가리”는 사운드나 편곡을 통해서 충분히 긴장 시켜 줄 수 있었음에도 멜로디 라인을 너무 드러내는 바람에 장르적으로는 조금 애매하게 흐르고 있다. 몇 개의 트랙을 건너뛰어 역시 ‘전형’적인 urban R&amp;B 스타일의 “쉼”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장르적 특성과 가사가 잘 맞아 떨어지는 곡이다. 흑인들의 원초적인 저항성을 근으로 한 soul 기반의 R&amp;amp;B와는 달리 도시적인 감성이 드러나는 urban R&amp;B와, 숨 가쁘고 공허한 일상에 대한 묵상이 담긴 가사는 적절하게 매칭 되고 있다. 게다가 이 곡에서도 역시 멜로디 라인은 안정적이며 좋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역시 알레듀오라는 팀의 이미지에는 조금 덜 어울리는 것 같다. 시도는 좋지만 앨범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킷 앞면에 적힌 Now, We are flying into the Dream of a Brand New Day 라는 글귀와 잘 맞아 떨어지는 모던 록 트랙 “새로운 날들” 역시 좋은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는 참신한 곡이다. 그러나 곡 자체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사운드의 축은 이미 신선한 것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Folk ballad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것”까지 오면서는 과연 그 ‘안정’적인 ‘전형’이 좋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독창성’의 부재가 심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lt;br /&gt;&lt;br /&gt;&lt;br /&gt;이 앨범에선 장르에 대한 시도가 분명히 보인다. 그러나 그 시도는 깊은 고민에서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심하게 말하자면, 알레듀오의 시도는 어느 한가지의 장르를 떠올릴 때 쉽게 생각나고 흉내낼 수 있는 ‘습작’의 수준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그런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는 ‘시도’는 탁월한 장인들조차도 버겨워 할만한 것이고,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알레듀오의 ‘시도’는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것이 나이 때문이라면... 사실 할 말은 없어진다. 그 나이에 그 정도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한다면, 물론 나도 역시 동의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한 아티스트의 정규 3집 앨범이다. 예술학교 졸업 작품이 아닌 것이다. 정식으로 발매되어진, 아티스트로서는 그의 일생에 기록될 작품이요, 대중에게는 돈을 주고 사도 아깝지 않을 만한 제품이어야 한다. 뭐, 이 정도 수준의 음반이라면 돈을 주고 사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알레듀오의 음반을 꼼꼼하게 챙겨서 들은 나로서는 이번 3집이 사실은 많이 아쉬운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나 싶다.&lt;/span&gt;  &lt;span style="font-size:85%;"&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이 음반의 보도 자료를 살펴보니 이런 다양한 음악적 색체가 나온 이유가 윤원효의 '시도'라고 한다. 그와 함께 이 음반은 알레듀오가(혹은 윤원효가) 앞으로의 방향성을 찾게 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앨범에서 다양성에의 시도는 과연 성공적인 것일까?&lt;/span&gt;  &lt;span style="font-size:85%;"&gt;&lt;br /&gt;&lt;br /&gt;&lt;br /&gt;예술 분야에 있어, 어떤 의미로든 그 시도가 성공하려면, 시도를 통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 ‘작품’의 수준이어야 한다고 본다. 좀 진하게 이야기하자면 아티스트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존재이다. 그 작품에 자신만의 색체와 완성도를 부여할 때, 이것을 대중이 수긍하고 다른 아티스트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어야 비로소 진정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작품이 되지 못한 시도는 그저 시도일 뿐,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그 시도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있다면 오히려 그 시도의 결과는 ‘습작’에 머물게 될 수도 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2집 을 리뷰 했을 당시, 난 이들의 앨범을 극찬해 마지않았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사실 '기대감' 때문이었고, 그 '기대감'의 초점은 이들이 가진 재능과 나이, 그리고 가능성 이었다. 그러나 만약, CCM 사역을 오랫동안 해온 팀이 2집정도 수준의 앨범을 만들어냈다면 앨범의 약점들을 걸러낼 수 있었던 '기대감'이라는 필터를 걷어내야 했을 것이다.&lt;/span&gt;  &lt;span style="font-size:85%;"&gt;&lt;br /&gt;물론 그것이 알레듀오 였기에, 1집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이 느껴지는 2집에 대해서 그토록 극찬을 했던 것이고, 그 기대감에는 큰 변화가 없다.&lt;br /&gt;그들의 재능은 아직 덜 펼쳐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앨범으로 알레듀오가 정체되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더 고민하고 더 노력하는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나기를 바란다.&lt;br /&gt;&lt;br /&gt;물론, 이미 알레듀오는 좋은 사역자이고 아티스트이다. 아까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이들의 음악은 여러모로 굉장히 안전하다. 가사는 복음의 핵심과 기본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감성을 지니고 있고, 음악은 아직 영글지 않은 풋풋함과 신선함과 함께 적당한 세련미를 선사한다. 이 음반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안전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lt;br /&gt;바꾸어 말하자면 알레듀오는 이제 이 정도 수준의 앨범을 만드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다. 말이 쉽지, 음반 제작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실제로 음반을 만들 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아무리 귀에 쉽게 들어오는 음악이라고 해도, 그 음악을 구체화 시키는 데에는 수많은 과정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한 과정과 노력을 넘어서 벌써 정규 3집 앨범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그 음반의 수준과 상관없이 이미 일정한 기준 이상으로 알레듀오가 성장했다는 것을 말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옆에서 그 성장을 지켜보는 입장인 나로서는 여전히 그들의 활동과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낼 작품들을 기대한다. 그들이 진실한 사역자, 진실한 아티스트로 잘 성장되어지길 기도한다.&lt;/span&gt;  &lt;span style="font-size:85%;"&gt;&lt;br /&gt;&lt;br /&gt;알레듀오 파이팅~!&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 이 글은 지난 2003년 12월 &lt;/span&gt;&lt;a style="font-style: italic;" href="http://ccm.co.kr/focus/2003_05/fame01.asp" target="_blank"&gt;CCMZINE&lt;/a&gt;&lt;span style="font-style: italic;"&gt;에 기고되었습니다.&lt;/span&gt;&lt;br /&gt;&lt;/span&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147196370560962687?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147196370560962687/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147196370560962687&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47196370560962687'/><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147196370560962687'/><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7/07/blog-post.html' title='새로운 날의 안전한 불시착 [알레듀오 3집 - 새로운 날들]'/><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agaMVPTI/AAAAAAAAAYA/19I56OcaRyA/s72-c/b0044796_241508.gif' height='72' width='72'/><thr:total>0</thr:total></entry><entry><id>tag:blogger.com,1999:blog-7158859.post-7194601070848344670</id><published>2003-12-02T01:19:00.000+09:00</published><updated>2008-12-11T18:16:37.925+09:00</updated><category scheme='http://www.blogger.com/atom/ns#' term='Review'/><title type='text'>잠식된 오리지널과 아류의 시대 - 드림 2집 : 세상에게</title><content type='html'>&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VlaMVPMI/AAAAAAAAAXI/KmRZpo47QXk/s1600-h/b0044796_235767.gif"&gt;&lt;img style="margin: 0px auto 10px;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cursor: pointer;" src="http://4.bp.blogspot.com/_Y06C9jnSbXU/RofVlaMVPMI/AAAAAAAAAXI/KmRZpo47QXk/s400/b0044796_235767.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65543173815490" border="0"&gt;&lt;/a&gt;&lt;font size="2"&gt;얼마 전, 가방 속을 정리하다가 한 무더기의 명함들을 발견했다. 평상시 명함을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편이고, 명함을 받을 만한 위치도 아니건만 어디서 이런 명함들을 잘도 받아오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 귀한 손으로 주신 명함들이기에 지인들과 잘 모르는 이들, 그리고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로 하나하나 분류를 하다가 문득 명함 하나에 손이 갔다. 그 명함엔 음반을 낸지 얼마 안 된 어느 분의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CCM 아티스트'라는 활자가 박혀있었다. 다른 명함엔 과장이나 부장, 대리 같은 글자가 들어가 있을 위치에 또렷이 새겨진 '아티스트'라는 글자에서 눈이 머물며 이런 저런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lt;br /&gt;&lt;br /&gt;음악이라는 분야에서 아티스트가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그 만의 색채'와 음악이 담긴 오리지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약 '그만의 색채'라는 것이 그 이전에 없던 것이라면 그 아티스트 이후 그런 색채를 흉내 내거나 비슷하게만 가도 당장에 '아류'가 되고 마는 것이다. 팻 메스니 가 그렇고 스티브 잡스가 그렇다. 그들은 콜럼버스의 달걀을 확실하게, 그것도 여러 번 세운 사람들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남의 음악 뿐 아니라 자기 음악마저 카피해버리는 '귀차니즘 아티스트' 들이 이 창궐하고 있다. 물론, 참된 창조력은 부단한 노력이나 성실함만 가지고 만들 수는 없을 것이지만, 소위 '아티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창조력의 고갈이나 소재의 빈곤을 빌미로 드럼의 리듬을 카피하고 일렉트릭 피아노의 톤을 카피하고 코드진행을 카피하고 멜로디 라인을 카피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lt;br /&gt;&lt;br /&gt;&lt;br /&gt;오리지널을 잠식한 아류의 시대에 다시 돌아볼 좋은 앨범을 꺼내야 한다면, 내 선택은 단연코 이 앨범이다. 드림의 두 번째 앨범 [세상에게]...&lt;br /&gt;&lt;br /&gt;&lt;/font&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Wf6MVPOI/AAAAAAAAAXY/TNpLxe9Sz04/s1600-h/b0044796_236351.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Wf6MVPOI/AAAAAAAAAXY/TNpLxe9Sz04/s400/b0044796_236351.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66548196162786" border="0"&gt;&lt;/a&gt;&lt;br /&gt;&lt;div style="text-align: left;"&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Wq6MVPPI/AAAAAAAAAXg/F4MU0-RosCw/s1600-h/b0044796_2363178.jpg"&gt;&lt;img style="margin: 0pt 10px 10px 0pt; float: left; cursor: pointer; width: 109px; height: 174px;" src="http://2.bp.blogspot.com/_Y06C9jnSbXU/RofWq6MVPPI/AAAAAAAAAXg/F4MU0-RosCw/s400/b0044796_2363178.jpg" alt="" id="BLOGGER_PHOTO_ID_5082266737174723826" border="0"&gt;&lt;/a&gt;&lt;font size="2"&gt;혹시 20대 중반이나 30대를 달리고 있는 젊은 크리스천이라면, 1991년에 나온 그들의 1집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모두 9곡이 들어가 있던 그 1집, '잃어버린 양을'은 그 음악적인 이질감 때문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앨범이었다.&lt;/font&gt;&lt;br /&gt;&lt;/div&gt;&lt;font size="2"&gt;&lt;br /&gt;그/러/나...&lt;br /&gt;나의 경우, 그 앨범에 있던 거의 모든 곡들을 외울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것 같다.&lt;br /&gt;&lt;br /&gt;&lt;br /&gt;80 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는, 한국의 크리스천 음반 시장에 적당한 수위의 변화가 있던 해이다. 그 변화가 비록 느리고 더뎠지만, 이 느리고 더딘 변화에도 사람들은 적응하지 못했으니 적당한 수위라고 할만 하겠다. 뭐, 물론. 지금도 여전히 적응 못한 사람들, 아니 적응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lt;br /&gt;&lt;br /&gt;&lt;br /&gt;4beat의 피아노 패턴으로 된 가스펠이 만연해 있었고, 코드패턴 몇 개만 알면 거의 모든 곡을 연주 할 수 있었으며, '경배와 찬양'의 붐에 조금씩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음반에서는 몇몇 작곡가와 편곡자, 그리고 음반제작자가 거의 모든 앨범에 참견하고 있던 시기였다.&lt;br /&gt;&lt;br /&gt;어느 날 갑자기, 'CCM'이라고 할 만한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그 이전부터 기존 음악에 식상한 사람들의 갈함,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들이 조금씩 조금씩 에너지로 응축되어 온 것이고, 그것이 시기적으로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터진 것이다. 지금은 노련한 선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송정미, 박종호, 최인혁, 하덕규, 이성균 등이 이때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lt;br /&gt;&lt;br /&gt;&lt;br /&gt;그런 시기에 나온 드림의 1집 '잃어버린 양을'은 재킷만으로는 그 독특함을 짐작하기 어려운 앨범이었다. 얌전하고 약간은 둔하게 생긴 양 한 마리의 일러스트가 재킷의 거의 전부였고, 이력을 알 수 없는 '1991 드림'이라는 글씨가 작고 노란 배너 앞에 있을 뿐이었다.&lt;br /&gt;&lt;br /&gt;&lt;br /&gt;카세트 데크에 처음 테이프를 걸고 시작된 충격은 지금 회상해 봐도 대단한 것이었다. 슬라이딩 기타 멜로디 솔로 등, 어쿠스틱 기타의 색다른 쓰임이 돋보이는 첫 곡 "잃어버린 양을"부터, 삶에 초연한 목가적인 멜로디와 관악이 돋보이던 "난 떠나가네"까지... 독특하고 신선한 맛이 앨범 전체를 흐르고 있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너무 일찍 나왔기 때문일는지 모르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너무 썰렁했다는 것 정도이다.&lt;br /&gt;&lt;br /&gt;&lt;/font&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XAKMVPQI/AAAAAAAAAXo/VHxA-SZ0p54/s1600-h/b0044796_2373339.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3.bp.blogspot.com/_Y06C9jnSbXU/RofXAKMVPQI/AAAAAAAAAXo/VHxA-SZ0p54/s400/b0044796_2373339.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67102246944002" border="0"&gt;&lt;/a&gt;&lt;br /&gt;&lt;font size="2"&gt;&lt;br /&gt;97년. 대전 침신대에서 처음으로 CCM 컨퍼런스가 열리던 해. 드림은 긴 침묵을 젖히고 그들의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모해 보이던 시도와 약간은 어설퍼 보였던 퀄리티를 보여준 1집을 가볍게 떨구고 노련한 장인으로 돌아온 그들이 시작한 이야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CCM은 이런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탁월한 '작품'이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당장에 큰 새로움을 안겨주지는 않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다지 낡은 것으로 들리지 않는 좋은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1집처럼 독특하고 질리지 않는 편곡, 생각할 꺼리가 많은 가사들,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야기... 2집은 컨셉 앨범의 좋은 덕목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lt;br /&gt;&lt;br /&gt;'한&lt;br /&gt;호기심이&lt;br /&gt;많은&lt;br /&gt;여행자가&lt;br /&gt;있었습니다.'&lt;br /&gt;&lt;br /&gt;&lt;br /&gt;음반 재킷에 가사 보다 먼저 적혀 있는 이 짧은 프롤로그를 통해 드림은 이 앨범이 우선 구도자의 삶을 따라갈 것이라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한다.&lt;br /&gt;첫 곡 “인생이 무엇인지”가 바로 그 구도자의 질문과 여정을 말하는데, 사실은 좀 더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이 이야기를 드림은 담담하고도 지루하지 않은 편곡으로 열어낸다. 그 여정은 색채 적으로 밝고 나름의 활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목가적인 가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목가적인 상상을 하기 쉽게 도와준다. 마치, 작은 시골길을 거닐며 주위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듯 하다.&lt;br /&gt;구도자는 마침내 스스로 대답하게 된다. 그 대답은 바로 “글쎄요”이다.&lt;br /&gt;두 번째 곡 “글쎄요”는 '자기 머리'로 답하지 못한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다른 머리'들 도 똑같이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석학이건, 박사님이건, 우리 아버지이건 말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계속해서 드림은 '그럼에도 허둥대지 않고 질문도 없이 정연한 질서를 가진 피조물들에 대한 경이'를 이야기해준다. 예쁜 멜로디와 편곡이 돋보이는 세 번째 곡 “망원경”은 그 피조물들의 신비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준다.&lt;br /&gt;&lt;br /&gt;이어지는 “사슴벌레”는 이 앨범에서 찾기 힘든 크리스천들의 용어(?)가 들어간 가사를 가진 곡이다. 그것은 바로 '할렐루야'라는 단어인데, 이 곡에서 사슴벌레는 자연의 공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일꾼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일'을 '우리 아버지(-하나님)'처럼 성실하게 해내며 삶으로 '할렐루야'를 노래하는 존재이다.&lt;br /&gt;&lt;br /&gt;아마도 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드림'이 소개 될 때 가장 많이 선택한 노래였을 “세상에게”는 이 앨범의 중심이자 중추인 곡이다. (사실 이 한곡의 가사만 가지고도 이야기 꺼리는 풍성하리라.) 이 노래의 주된 주제는 '이대로는 희망이 없음'이다. 정연한 창조의 질서가 만든 트랙을 파괴하는 유일한 피조물인 '사람'. 하나님을 배제한 삶에서 사람이 말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깃발은, 사실 낡고 검은 것이며 허무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이 노래를 통해 표현해 낸다.&lt;br /&gt;&lt;br /&gt;&lt;br /&gt;슬랩스틱 코미디의 대가 채플린이 그의 영화에서 언젠가 '깃발'가지고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다. 어느 자동차에서 떨어진 깃발을 주워 주려고 뛰어가는 채플린이 갑자기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인다. 그리고는 시위의 주동자로 체포되고 만다. 채플린이 우습게 표현한 '깃발'과 드림이 말한 '깃발'은 사실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 사람들이 따르고 의미를 부여함으로 무거워지는 '깃발'이란 그 뒤에 있는 허무함을 가리기 위한 커튼이 아닐는지...&lt;br /&gt;&lt;br /&gt;&lt;br /&gt;&lt;br /&gt;언젠가 라이브로 이 곡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를 위시해서 많은 이들이 이 곡을 들으며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노래가 끝날 무렵에 다시 크게 박수를 쳤다. 그때, 최성규님은 그 특유의 느리고 어눌한, 담담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이야기했다.&lt;br /&gt;&lt;br /&gt;"어째서, 박수를 치는 거죠?... 희망이 없다는데."&lt;br /&gt;&lt;br /&gt;물론, 당시의 그 썰렁함은 나름의 깊은 감동을 주었다. ^^&lt;br /&gt;&lt;br /&gt;&lt;br /&gt;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각이 없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노래가 “도둑처럼”이다.&lt;br /&gt;&lt;br /&gt;인생이 다 지나고 끝날이&lt;br /&gt;도둑처럼 내 곁에 다가와서&lt;br /&gt;웃으면서 하는 말&lt;br /&gt;너 사는 날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두 말하여 보아라&lt;br /&gt;&lt;br /&gt;착하게 살려했지만&lt;br /&gt;나는 악한이었소&lt;br /&gt;의미 없이 살다가 여기까지 왔소&lt;br /&gt;웃으면서 하는 말&lt;br /&gt;너 사는 날 동안 악하게 살은 죄 없어지지 않으리라&lt;br /&gt;&lt;br /&gt;- “도둑처럼” 전문&lt;br /&gt;&lt;br /&gt;&lt;br /&gt;이 시니컬한 가사는 그 이전, 혹은 이후의 CCM에서 비슷한 분위기조차 찾기 힘든 가사이다. 결코 듣는 이에게 친절한 가사가 아니며, 이것은 곧 이 앨범의 목적이 ‘친절하고 달콤한 음악 제공'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시켜 준다. 음악에서도 역시 그리 친절하지 않은 화성과 특이한 편곡, 약간은 암울한 분위기의 기타 연주가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진다.&lt;br /&gt;&lt;br /&gt;자, 여기서 이야기가 그냥 마무리 되면 분명히 목가적인 호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 앨범은 엄연히 CCM이기에... ^^&lt;br /&gt;&lt;br /&gt;&lt;br /&gt;“내 마음의 꽃”은 결코 영원할 수 없는 허무의 '깃발'과 쉽게 시들 수밖에 없는 꽃병 속의 '꽃'을 같은 위치에 두고, 영원히 시들지 않는 그 사랑, 바로 '하나님'을 그 맞은편에 위치시킨다. 여기서 역전이 일어난다. 암울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미래는 '하나님'을 이유로 '시들지 않는 꽃'이 될 수 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코스모스”는 “내 마음의 꽃”을 여유 있게 이어받아 이야기한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그 꽃을 기다리는 여유. 사계를 지내며 싹을 틔우고 그 줄기를 내며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그 과정을 지켜볼 여유를 이 노래에선 느낄 수 있다. 짧지 않은 그 과정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비밀이 담겨 있고, 작은 씨앗 하나에 담긴 비밀처럼 우리의 작은 인생도 바로 그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 사랑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조곤조곤 이야기 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그리고 재킷의 끝 부분에는 노래에 없는 담담한 글이 다시 적혀 있다.&lt;br /&gt;&lt;br /&gt;&lt;br /&gt;모든 것이&lt;br /&gt;우연히 되어진 것이&lt;br /&gt;아니라면&lt;br /&gt;누군가가 의도적으로&lt;br /&gt;만들었어야만 한다는&lt;br /&gt;말인데&lt;br /&gt;그 전무후무한 과학자이며&lt;br /&gt;건축가이자 미술가이고&lt;br /&gt;기술자이며 음악가인 동시에&lt;br /&gt;노동자이며...&lt;br /&gt;... 이고&lt;br /&gt;엄청난 창조자이며&lt;br /&gt;모든 것을 허둥대지 않게 하며&lt;br /&gt;모든 질문에 정답자인 그는&lt;br /&gt;누굴까?&lt;br /&gt;&lt;br /&gt;&lt;br /&gt;"영원한 분"&lt;br /&gt;.&lt;br /&gt;"하나님"&lt;br /&gt;&lt;br /&gt;&lt;br /&gt;이것이 이 앨범의 목적이다. 드림 2집 [세상에게]는 구도자를 위한 앨범인 것이다.&lt;br /&gt;그렇기 때문인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앨범 전체에 묻어있다. 물론 자연을 그 소재로 둔 것이라던지, 크리스천만의 언어를 지양한 점 등은 드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채의 일부이겠지만, [세상에게] 참된 가치인 '하나님'을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좀 더 그런 배려를 강조하게 된 것이리라.&lt;br /&gt;&lt;br /&gt;&lt;br /&gt;&lt;/font&gt;&lt;a onblur="try {parent.deselectBloggerImageGracefully();} catch(e) {}" href="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XSqMVPRI/AAAAAAAAAXw/NyJvqVMcDfI/s1600-h/b0044796_2385730.gif"&gt;&lt;img style="cursor: pointer;" src="http://1.bp.blogspot.com/_Y06C9jnSbXU/RofXSqMVPRI/AAAAAAAAAXw/NyJvqVMcDfI/s400/b0044796_2385730.gif" alt="" id="BLOGGER_PHOTO_ID_5082267420074523922" border="0"&gt;&lt;/a&gt;&lt;br /&gt;&lt;font size="2"&gt;해아래에는 새것이 없다.&lt;br /&gt;&lt;br /&gt;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티스트조차 새것에 대한 열정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아티스트만큼은 새것을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변신해야 하며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한 유별난 몸부림이 그만의 오리지널을 갖게 하고 그렇게 빚어진 오리지널들이 모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lt;br /&gt;&lt;br /&gt;드림의 색채는 유별나다.&lt;br /&gt;오보에 연주는 드림의 앨범 이전에도 많았다.&lt;br /&gt;슬라이딩 기타 연주 역시 드림의 앨범 이전에 있었던 연주 방법이다.&lt;br /&gt;플랫리스 베이스라고 다르진 않다.&lt;br /&gt;그러나 그러한 기교에 대한 고민, 구조에 대한 고민, 가사에 대한 고민들이 모여 드림의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lt;br /&gt;그래서 그들의 앨범을 '오리지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lt;br /&gt;&lt;br /&gt;고민하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크리스천들의 자기 고백 성향이 짙은 앨범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자기 고백이 카피라면, 그것이 과연 자기 고백인가?&lt;br /&gt;고민하지 않는 아티스트는 그래서 아티스트라고 말할 수 없다.&lt;br /&gt;&lt;br /&gt;사실, 아티스트가 아닌 범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오리지널'에의 열정은 필요한 것이다. 남의 흉내만 내는 삶으로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없다. 기도도 흉내 내고 QT도 흉내 내고 예배드리는 모습도 흉내 낼 수밖에 없다면, 그럼 '나 자신'의 '오리지널' 신앙은 대체 무엇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lt;br /&gt;&lt;br /&gt;나에겐 나에게만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존재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위해서도 역시 독특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존재할 것이다. 그 계획에 순응 할 것인가. 아니면 남의 신앙을 카피할 것인가.&lt;br /&gt;&lt;br /&gt;당신의 선택이 어떻건 가장 창조적인 아티스트인 하나님의 모습이 내 안에 있기에, 나는 오늘도 오리지널을 꿈꾼다.&lt;br /&gt;&lt;br /&gt;&lt;font style="font-style: italic;"&gt;* 이 글은 지난 2003년 12월 &lt;/font&gt;&lt;a style="font-style: italic;" href="http://ccm.co.kr/focus/2003_05/fame01.asp" target="_blank"&gt;CCMZINE&lt;/a&gt;&lt;font style="font-style: italic;"&gt;에 기고되었습니다.&lt;/font&gt;&lt;/font&gt;&lt;div class="blogger-post-footer"&gt;&lt;img width='1' height='1' src='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tracker/7158859-7194601070848344670?l=jieum.blogspot.com' alt='' /&gt;&lt;/div&gt;</content><link rel='replies'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jieum.blogspot.com/feeds/7194601070848344670/comments/default' title='댓글'/><link rel='replies' type='text/html' href='http://www.blogger.com/comment.g?blogID=7158859&amp;postID=7194601070848344670&amp;isPopup=true' title='0개의 덧글'/><link rel='edit'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7194601070848344670'/><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www.blogger.com/feeds/7158859/posts/default/7194601070848344670'/><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jieum.blogspot.com/2007/07/2.html' title='잠식된 오리지널과 아류의 시대 - 드림 2집 : 세상에게'/><author><name>jieum</name><uri>http://www.blogger.com/profile/06378213304879356097</uri><email>noreply@blogger.com</email><gd:image rel='http://schemas.google.com/g/2005#thumbnail' width='16' height='16' src='http://img2.blogblog.com/img/b16-rounded.gif'/></author><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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